디스의 이해

‘이거 듣고 나면 대답해 개코. 지난 5년 간 회사 안에서 날 대했던 것처럼 뒤로 빼지마. 아무리 생각해도 난 다듀 군대 땜빵. 넌 절대로 날 가두지 못해. 너넨 다 사기꾼. I’m no.1.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mc로서 얘기해. 니네 누나 찾지 말고.’
힙합 뮤지션 다이나믹 듀오와 사이먼 디, 이센스 네 명의 관계를 야구 포지션에 비유하여 그린 일러스트이다. 가장 아랫쪽에는 최자가, 왼쪽에는 사이먼 디, 윗쪽에는 개코, 오른쪽에는 이센스가 그려져 있으며 이들이 서 있는 야구 타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동시에 그 위로 ‘MANRU HOMERUN’이라고 쓰여 있다.

You can’t control me

위의 한 곡에서 시작된 힙합 뮤지션들의 디스 열전은 인터넷을 휩쓸며 세간의 관심을 한데 집중시켰다. 이센스, 개코, 스윙스, 어글리덕, 테이크원, 사이먼디 등 국내 유명 힙합인들의 물고 뜯는 디스전은 단순한 흥미거리 이상으로 과열되며 연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그 중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control’일 것이다. 이센스의 ‘You can’t control me’, 개코의 ‘I can control you’, 사이먼 디의 ‘control’ 등이 그것이었다.
힙합 뮤지션 스윙스가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방송된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 2’의 무대 공연 모습이기도 하다.
여기서 디스란 disrespect의 줄임말로, 힙합에서 유래된 용어다. 다른 사람이나 팀을 깎아 내리기 위해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그런 내용의 가사를 담은 곡을 배포하는 것을 뜻한다. 사건의 발단은 미국의 유명 랩퍼인 ‘켄드릭 라마’가 Big Sean의 신곡 ‘Control’에 피처링한 곡에서 시작됐다. 이 곡에서 그는 ‘에미넴’, ‘비오비’ 등을 디스하게 되는데, 이들이 반박곡을 발표하며 디스의 양상이 과열되게 된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래퍼 스윙스가 ‘King Swings’라는 곡에서 실력 없는 일부 힙합인들을 뭉뚱그려 디스를 하게 되고, 그 대상 중 하나였던 어글리덕과 테이크원이 각각 ‘ctrl+ alt+ del *2’, ‘Recontrol’을 발표하며 국내 디스전의 열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스윙스는 곡 마지막 부분에서 이센스를 디스하게 되는데, 이센스가 ‘You can’t control me’로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를 저격하며 힙합 디스전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개코가 ‘I can control you’로 반박곡을 발표하자 이센스는 다시 ‘True Story’로 반박에 나선다. 한편, 스윙스가 ‘King Swings Part.2’에서 사이먼 디를 디스하고, 여기에 사이먼 디가 ‘Control’을 발표하면서 디스전은 최고조에 이른다.

우리는 디스의 민족?

이방원과 정몽주의 시조를 그들이 랩하는 것처럼 재미있게 그린 일러스트이다. 이방원이 마이크를 쥐고 ‘하여가’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가사를 읊자, 이에 정몽주가 마이크를 쥐고 ‘단심가’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라고 받아치고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디스는 근래 들어 새로 생겨난 개념이 아니다. 또한 힙합에만 국한되는 용어가 아니다. 우리 삶 속에서 오래 전부터 디스는 존재해 왔다. 디스가 미국에서 왔다고? 따지고 보면 진정한 디스의 민족은 바로 우리가 아니던가.

말뚝이: 쉬이. 양반 나오신다!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를 다 지낸 퇴로 재상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 소반이라는 ‘반’자를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양반들: 야아! 이놈, 뭐야아!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갔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 다 지내고 퇴로 재상으로 계신 이 생원네 삼형제분이 나오신다고 그리 하였소.

(중략)

양반들: 이놈, 너도 양반을 모시지 않고 어디로 그리 다니느냐?
말뚝이: 예에. 양반을 찾으려고 찬밥 국 말어 일조식하고, 마구간에 들어가 노새 원님을 끌어다가 등에 솔질을 솰솰 하여 말뚝이님 내가 타고 서양 영미 법덕, 동양 삼국 무른 메주 밟듯 하고, 동은 여울이요, 서는 구월이라. 동여울 서구월 남드리 북향산 방방곡곡 면면촌촌이, 바위 틈틈이, 모래 쨈쨈이, 참나무 결결이 다 찾아 다녀도 샌님 비뚝한 놈도 없습디다.

– 봉산탈춤 제 6장 양반춤 中
봉산탈춤의 한 장면. 왼쪽에는 말뚝이가 포졸로 보이는 행색의 차림으로 피리를 든 채 어깨춤을 추려 하고, 오른쪽에는 양반 세 명이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위엄있는 자세로 걸어나오고 있다. 모두 얼굴에는 제각각의 가면을 쓰고 있다.

위는 봉산탈춤 제 6장 ‘양반춤’ 중 일부로 말뚝이가 양반을 앞에 두고 조롱하는 장면이다. 신분을 내세워 똑똑하고 고고한 척 하는 양반의 허구를 노비인 화자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야기 속 화자는 실제 계급사회 속 약자들을 대변하며 구조의 불합리함을 통쾌하게 비웃는다. 이야말로 신랄한 디스가 아닌가.

이외에도 한국문학들은 기본적으로 디스에 기초하고 있다. <배비장전>은 입으로는 금욕과 절제를 말하면서도 남몰래 기생과 놀아나는 선비의 위선을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 자체를 허풍으로 가득 찬 모자란 인물로 설정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을 느끼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풍자이다.
영화 ‘왕의 남자’의 한 장면. 광대 장생이 화려한 궁궐 안 터에서 가면을 머리 위에 쓰고 한 손에는 꽹과리를 들고 재주를 부리고 있다. 장생의 나머지 무리들은 그 옆에 납작 엎드려 왕을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이쯤 되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거침없이 양반들을 농락하던 그들은 목숨이 열 개라도 되었던 것일까? 영화 <왕의 남자>에서도 이러한 장면을 살펴볼 수 있다. 저잣거리의 광대들은 직접 임금 앞에서 왕의 추잡함을 폭로하는 연극을 선보인다. 그러나 웬걸, 목이 잘리기는커녕 오히려 궁 안에 기거하며 ‘왕실 전문 광대’로 대우받는다. 실제로 그 당시 풍습을 살펴 보면, 심지어 양반들도 나들이나 명절날 봉산탈춤을 관람하곤 했다고 한다. 그들의 관대함, 혹 그 이면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디스는 SNS를 타고

진중권의 트위터 일부를 캡쳐한 모습. 가장 위쪽에 있는 트위터는 ‘이석기 문제가 통진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칼럼. 저 멘탈리티 좀 구경해 보세요.’라는 코멘트와 함께 기사 링크가 걸려 있다. 이 외에도 신랄하게 누군가를 디스하는 듯한 코멘트로 가득한 모습이다. 예전에는 소통을 위한 통로가 거의 부재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불만이 쌓이고, 그것이 터지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농민들이 마을 관아를 습격한다거나 노비들이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주인을 살육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그래서 지배층은 피지배층이 나름대로 불만을 건강하게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하층민의 ‘디스’를 일정 부분 눈감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다양한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가 되었다. 너도 나도 자유롭게 무언가를 비판하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댓글을 쓴다. 개인뿐만이 아니다. 정치적 다툼, 경제적 이권싸움 등 사회의 전반적인 부조리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전면적인 디스를 시작했다. 이러한 대규모의 디스는 선거 등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지난 대선을 이후로 디스의 절대강자로 급부상한 진중권을 들 수 있다. 진중권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정치권을 향한 가열찬 디스를 퍼부었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캡쳐되고 퍼 날라져 연일 이슈가 되었다.

디스, 또 다른 이름의 마녀사냥

누군가의 페이스북 페이지로 수많은 ‘좋아요’ 엄지손가락이 빽빽히 가득 들어차 있다. 우리는 왜 디스를 하는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디스는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이다. 부조리한 것에 침묵하지 못하고, 선입견에 사로잡혀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를 표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쯤에서 궁금한 것은, 개인 간의 디스 혹은 사소한 디스마저 왜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느냐는 점이다.

디스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불만을 드러내기 위함만은 아닐 것이다. 한 쪽 편에 서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반대편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소속감을 얻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무언가 부당한 일을 겪거나 하소연하고 싶을 때 우리는 각종 SNS에 억울한 나의 상황과 심경을 올린다. 이는 곧 ‘좋아요’와 ‘리트윗’을 타고 불특정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자연히 나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편을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틀로 단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control이 필요해

Control이라는 글자가 붉은 색으로 쓰여 있다.
그러나 디스가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이센스는 디스곡을 통해 대중이 모르고 있던 소속사와 자신의 갈등을 폭로했다. 개코 또한 그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며 우리가 몰랐던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있다. 양반의 부조리를 탓하며 시대를 디스해 온 우리의 조상들은 물론이거니와, 자유민주주의가 도래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디스는 당연한 역사적 현상이자 우리의 기본 권리이다. 디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보호해주기에 의미 있는 것이다. 세상이 만장일치로만 돌아간다면 디스가 판치는 지금보다 더 무서운 세상이 될 것이다. 아무도 다른 소리를 내지 않는 세상은 화음 없는 단성음악과 같이 지루하고 재미없을 테니까.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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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컨트롤 비트로 유행하고 있는 '디스'를 우리 고전문학인 봉산탈춤과 연관지으시다니 놀라워요! 기자님 전공이 궁금해지네요.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지 놀랍습니다! 기사 잘 읽었습니다.
  • 이미선

    저 '컨트롤'이 뭔지 힙합쪽에 도통 관심이 없던터라 대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기사를 보고 겨우 알게되었어요 :) 사실 힙합의 디스는 너무 비속어가 많이 사용되고 직설적이라 좋아하지 않는데ㅠ.ㅠ 이 기사를 보고나니 왠지 순서대로 다 듣고싶어졌어요ㅋㅋ 우리는 디스의 민족이라는 해석도 재미있게 보고 갑니당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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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혜

    외설적이고 거친 표현들 때문에 저도 사실 힙합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들이 리듬과 멜로디를 통해 예술로 승화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ㅎㅎ Yo 우리도 이제 힙합 좀 들어Yo

  • 김경현

    디스에 관한 글이어서 이번에 이슈가 되었던 힙합 디스전에 관한 글인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던 봉산탈춤부터 정몽주와 이방원까지... 디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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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혜

    감사합니다ㅎㅎ 저도 디스에 대해 공부하며 그동안 생소했던 힙합에 대해 알게 되고 또 많이 들어보면서 관심 없던 장르에 눈을 뜨게 되어 기쁘답니다!^_^ 경현기자도 저 과외 좀..ㅋ 야구학 과외 좀...ㅋㅋㅋ 야구를 바라보는 그대의 신선하고 뜨거운 시선이 참으로 인상적이랍니다?ㅋㅋㅋ

  • 민성근

    독특한 시선이네요. 역시 문화예술은 고은혜 기자의 시선을 따라갈 수 없는듯. 언제 과외한번좀.. 은 농담이구요. ㅋㅋ 정말 본문에 나온 말대로 디스가 우리 가진 권리이자 자유가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역사적 혁명과 같은 사건도 작은 불만이 '디스'를 거쳐 일어난게 아닐까 생각드네요. 재밌게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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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혜

    그 권리를 잘 행사하기 위해 그만큼의 책임감도 느껴야 할 것 같아요ㅎ 감정적 디스가 아닌 이성적이고 냉철한 디스가 필요하기도 한 것 같구요! 그런 의미에서 저야말로 성근기자님께 책임감 과외를...ㅋㅋㅋ

  • 위풍당당원이

    랩하는 정몽주와 이방원의 그림을 보면서 웃다가 점점 집중해서 봤네요.. 풍자와 해학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디스였군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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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혜

    우리 조상님들은 디스도 격조 높게ㅋㅋ 우리도 디스를 할 때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면서 정확히 팩트를 집어내는 품격있는 디스인(!)들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댓글 감사드리옵니다

  •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 봉산탈춤의 양반춤 부분을 아주 자세히 읽었습니다. 속에 있는 말들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어쩌면 조금 과감하게 내뱉으면서 거기에 멜로디까지 붙이니 왠지 듣는 사람도 동조할 수 있게끔 신명나게 만드는 것 같아요. (힙합 디스전도, 양반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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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혜

    매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나 봐요.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풀어나가고 어떻게 표출하느냐가, 갈등을 심화시킬 수도, 해결시킬 수도 있는 것 같아요ㅎㅎ 봉산탈춤은 지금 봐도 신명나기 그지 없는 듯!ㅋ 댓글 감사드립니다^^

  • 유이정

    Yo 고기자! 기사 멋져YO!ㅋㅋㅋㅋ 최근 가장 이슈가 됐던 사회현상을 아주 재밌게 풀어내주셨군요 *_*! 우선 현동기자님의 '표절의 역습'에 이어 '디스의 이해'라는 제목 임팩트 있어용~_~ 또 처음 리드글에 진짜 랩을 써주셔서 흥미가 확- 생겼어요ㅎㅎ (나 왜 여기서 평가를..ㅋㅋㅋㅋ) 무엇보다 디스전에 대해 여러가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접근해보니 몰랐던 것도 알게되고 고딩 때 봉산탈춤 공부했던 기억도 나네요! 상대방에 대한 단순 비난 아닌 비판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고 볼 수 있겠죠? 물론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해서는 안되겠죠! 정당한 비판을 넘어 진흙탕 싸움이 되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MIND CONTROL하는 것도 필요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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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혜

    특히 디스에 있어서 컨트롤은 정말 중요한 미덕인 것 같아요ㅎ 디스의 범위도, 특정 개인 혹은 단체의 인격이나 성향을 저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전하고자 하는 팩트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절제해야겠구요ㅎ 뒤늦은 답글 송구하오나 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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