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텍스트의 힘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 새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맹가노니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는 바로 소통이었다. 문자를 통해 말이 이어지고 이야기가 흐른다. 문자는 작고, 짧다. 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크고 깊다. 이제는 문자가 가지고 있는 미적 아름다움에서 희열을 느껴볼 시간.
하늘색 배경의 이미지에 오른쪽 아랫부분에 ‘Supertext’라는 타이포가 쓰여 있다. 가운데의 t 자가 아래에서 튀어나온 뭉게구름과 같은 무언가에 의해 위로 쑥 튕겨져 나가고 있다.
문자도 그림이다. 구부러지고 쭉 뻗은 텍스트는 그 자체로 디자인이 된다. 텍스트가 담고 있는 스토리는 그림보다 덜 직접적이지만 더 명확하고 파괴적이다. 숨어 있는 의미를 이해할 때 오는 충격과 시원함은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지금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2013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서는 이처럼 간결한 텍스트로 심오한 의미를 전하는 작가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문자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 샤오마거/ 청쯔의 <씨앗>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어느 방, 연두색 창문과 바닥 위에 초록색의 동그란 무언가가 일러스트로 쌓여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오른쪽 위에는 일본어로 무언가가 쓰여져 있으며 이것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디자이너인 샤오마거와 청쯔는 언제나 클라이언트와 소비자, 예술과 메시지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깊이 있는 통찰과 해석은 필수적 요소다. 수없이 고민하고 창조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자 고통이다. 그들은 창틀과 바닥을 뒤덮은 초록의 씨앗들을 통해, 생동적이면서 치열해 보이는 자신들의 일상을 담았다. 벽을 타고 올라가는 민들레 꽃씨는 희망적이면서 힘겨워 보인다. 아이디어라는 씨앗이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순간의 안도와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문자는 화해를 낳는다 – 마리야 유자의 <발칸 샨스>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무언가 잔뜩 쓰여져 있는 포스터와 같은 이미지이다. ‘BALKANS’라는 단어가 유교 연방국가들의 여러 형태의 언어로 변화되어 쓰여 있다. 마리야 유자는 크로아티아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그는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몬테네그로 등 구 유고 연방국가들의 언어와 역사가 라틴과 키릴 문자로 설명된다고 보았다. 발칸 반도의 두 언어인 라틴과 키릴 문자는 이름과 형태만큼이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들은 한 장소에서 사용되며 여러 가지를 공유해 왔다. 한 예로, 양쪽에서 형태가 같은 자모는 긴 문자 하나로 표시되고, 형태가 다른 자모들은 작은 문자가 위아래에 공존하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마치 예루살렘을 보는 것과 같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라는 이질적인 종교의 성지로, 분열의 장소임과 동시의 통합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문자는 화해의 제스처다.

문자는 중의적이다 – 심보선, 노은유의 <둘>

왼쪽에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이미지에 ‘두 번의 시간, 두 줄기의 두 갈래의 햇빛, 두 편의 꿈, 두 돌아봄’이라는 텍스트가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여러 번 섞인 채 쓰여 있다. 아래에는 그 활자들이 자음과 모음이 번갈아가며 지워진 채로 쓰여 있다.<br /> 오른쪽에는 ‘둘’이라는 시가 쓰여 있다. ‘두 줄기의 햇빛/두 갈래의 시간/두 편의 꿈/두 번의 돌아봄/두 감정/두 사람/두 단계/두 방향/두 가지 사건만이 있다/하나는 가능성/다른 하나는 무(無)’ 라는 시이고, 가장 아래에는 [심보선, 2008]이라 쓰여 있다. 심보선과 노은유의 이번 합작 <둘>은 두 줄기의 언어, 두 갈래의 기호, 두 편의 활자극을 보여 준다. 언어가 가지는 중의성, 언어를 전달하는 매체의 속성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해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둘은 영과 무한대처럼 극과 극의 차이일 수도 있고, 동상이몽처럼 같은 종류 내에서의 차이점일 수도 있다. 문자는 가장 개방적인 매개체다. 같은 글자로도 무수한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림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다.

슈퍼텍스트의 잔치

왼쪽에는 ‘슈퍼텍스트/슈퍼해석/슈퍼쌍둥이/슈퍼활용/슈퍼희열/슈퍼순열/슈퍼몽타주/슈퍼공동체/슈퍼섄디마니아’라는 글귀가, 오른쪽에는 ‘supertext/supermontage/supermaxim/superduality/superprocess/superdialogue/superreconciliation/cuperinflection/superghost/suoersuspension of disbelief’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슈퍼텍스트, 슈퍼해석, 슈퍼희열. ‘2013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서 텍스트가 전하는 슈퍼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한낱 단어라고 무시했다면 이제는 문자를 조금은 달리 바라보자. 다양한 국적의 디자이너가 선보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각국의 이형적인 문자를 만나봄과 동시에 각각이 담고 있는 메시지 또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타이포잔치 포스터. 타이포잔치를 형상화하는 기호 아래로 T Y P O J A N C H I / ㅌ ㅏ ㅇ ㅣ ㅍ ㅗ ㅈ ㅏ ㄴ ㅊ ㅣ- International Typography Biennale’라는 타이틀이 쓰여 있다. 2013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기간 2013년 8월 30일 – 10월 11일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8월 30일은 오후 6시부터). 매주 월요일, 9월 19일(추석) 휴관
관람료 무료
장소 문화역서울 284(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번지)
문의 02-3407-3500 http://typojanchi.org/2013

2013 타이포잔치 프로그램

1. OSP 워크숍
OCR(광학 문자 인식)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문자로 정제되기 이전의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만나 볼 수 있는 시간.
일시 9월 30일 – 10월 4일
강사 사라 마냥, 피에르 하위허베르트, 뤼디빈 루아소(오픈소스 퍼블리싱)
장소 문화역서울 284

2. 한글날 전야제 : 글 이전, 말 이후
바탕체, 돋움체가 아닌 소리와 빛, 몸짓으로 표현하는 한글
일시 10월 8일 화요일 오후 7-9시
장소 문화역서울 284 RTO 공연장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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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타이포그래피 배워보고 싶어요! 정말! ㅋㅋ 저를 다시 한 번 자극해줘서 고마워요.ㅋㅋ 고은혜 기자는 정말 고으네. >ㅡ<
  • 유이정

    우와우!!! 글자가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 럽젠과 은혜기자님 덕분에 타이포그래피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염ㅋ.ㅋ 럽젠 덕에 이번 해외탐방 기간동안 런던 속 타이포그래피를 찾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고!! 곧 나올 제 타이포 관련 기사도 많이 좋아해주셨으면+_+ 흐흐 암튼 위에 나온 재미있고 신기한 타이포들을 꼭 직접 가서 보고싶네요!! 올해엔 한글날이 공휴일이라는데, 그 날 가야겠어요! 은혜 기자님, 한번 더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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