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쿠바 여행법 119

글/사진_강미승(frideameetssomeone@gmail.com)

당신의 버킷 리스트에 ‘쿠바 여행하기’란 위험한 문장이 쓰였을 때 귀띔하는 비밀 누설의 순간. 푸념하거나 협박하거나 혹은 권고하거나.
* 스페인어가 능통하지 않다는 전제하에 쓰였습니다.

쿠바 한 상점의 내부 모습. 천장에 가까운 벽면으로 흰색 천에 ‘LABDELM’이라고 적혀 있다. 상점 내부는 흥정하고 사진을 찍는 외국인으로 가득하다.

쿠바를 받아들이기 위한, 전용 용어 연구실

시내 환전소에서 바꾼 쿠바 화폐의 모습. 꽃무늬 보를 깐 테이블 위에 쿠바 화폐를 나란히 펴 놓은 사진이다.CUC(세우세) vs CUP(MN: 모네다 내쇼날) : 쿠바의 바깥주인 화폐. 1CUC는 약 1.2US$의 가치로, 미국보다 우위에 군림하려는 쿠바의 발악을 대변한다. 쿠바를 벗어나면 그 어디에서도 환전할 수 없는 이 화폐를, 출국 시 200CUC 이하로 지정해두고 있다. 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이 ‘무용지물’을 가져간단 말인가! MN(모네다 내쇼날, 혹은 CUP으로 표기)이란 안주인 화폐도 있다. 1CUC는 24MN.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전혀 상관없는 고정 환율, 즉 신의 화폐다.

쿠바 길거리의 한 간판을 건물 위에서 내려찍은 모습. 흰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CASA COLONIAL’이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파란색으로 ‘T’의 형태와 비슷한 표시가 보인다. 이것이 CASA라는 암호. 까사 : ‘까사 빠띠꿀라르(Casa Prticular)’의 애칭. 한국의 민박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고급 호텔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보통 현지인 가정집의 안쪽에 방 몇 칸을 마련해두고 있다. 가격은 부르는 게 값. 보통은 20CUC를 주장하지만, 흥정에 따라 8CUC까지도 협상할 수 있다. 1인실 2명이 기본이다.

하늘에서 1천 개의 별 따기, 인터넷 접속

쿠바의 한 PC방 내부 사진. 세 대의 컴퓨터가 보이고, 한 남성이 가운데 자리에 카메라를 등지고 앉아 인터넷을 하고 있다. 남자가 바라보는 시선 위로 ‘우리의 지난 혁명을 잊지 마라.’는 뜻의 군 사진이 걸려 있다.장기 여행이 아닌 쿠바만을 꿈꾼 이라면 자신이 왜 노트북에 미련을 가졌는지, 나의 어깨를 고문할 요량이었는지 자책해야 할 것. 와이파이는 가뭄에 콩 나듯 한 데다가 발견한다고 해도 시간당 6~8CUC로, 가격이 하늘을 찌르기를 작정했다. 문제는 비싼데, 느리다. 랜선이 낡았는지 컴퓨터 사용도 마찬가지다. 생이별한 남친 소식만큼 느리다. 한 ‘인터내셔널’ 호텔에선 와이파이 사용 시간을 2시간이 기본이라 했다. 30분은 안 되느냐고 토끼 같은 눈을 하니 그녀의 현답, “알란가 모르겠네요. 뭔가를 체크하려면 이 기본 시간은 필요할 텐데요.” 쿠바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멕시코행 비행기 티켓 하나 예약하는데, 1시간 15분 32초가 걸렸다.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Emergency Solution
1. 인터넷 사용을 포기한다. 세상과의 일시적 단절이 당신의 몸과 정신 건강에 이롭다.
2. 한량 여행을 계획했더라도, 타지로 이동하는 비행기 티켓은 미리 구입하는 게 나라를 구하는 일.

사기의 알파와 오메가, 이분된 화폐

박물관 앞에 세워둔 입장료 표지판. 왼쪽에는 MN, 오른쪽에는 CUC로 화폐 표기를 달리해 두었다. 혼돈하지 않도록, 사기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아바나 오비스뽀 거리의 한 샌드위치 가게 내부 모습. 쇼케이스에 빵이 여러 개 들어 있고, 오른쪽에 제빵 모자를 쓰고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셰프의 모습이 보인다.패키지 투어가 아닌 쿠바 여행 시, 가장 세기의 혼돈을 겪는 것이 바로 화폐다. CUC와 MN, 두 가지 화폐가 능동적으로 유통된다. 1CUC가 24MN(=CUP)이란 화폐 개념이 바로 서지 않으면 사기는 오롯이 당신의 것. 화폐의 안주인은 엄연히 MN이나, 쿠바의 관광 수입이 50% 이상 차지하면서 타지 인에게 합당한(즉 높은) 가격의 CUC가 E.T처럼 출현했다.

CUC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정부 소속 패스트푸드점, 혹은 대형 마트에서 쓰이며, 보통 ‘외국인 대상이다.’ 싶은 원초적인 감이 오면 다 이를 요구한다. 반면, MN은 시장이나 길거리 상점 등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명색이 가난한 보통의 여행자가 원하는 화폐 가치다. 문제는 보통 MN 레스토랑이나 길거리 상점에선 CUP이나 MN 대신 $로 일괄 명기하는 까닭에, CUC로 내고도 속은 줄 모르는 외국인이 허다하다는 사실. 즉, 외국인에게 CUC로 잘못 냈다고 말해줄 양심은 쿠바에 없다.
박물관도 외국인과 현지인에게 CUC와 MN으로 다른 가격을 책정한다. 외국인은 현지인에 비해 24배의 가격을 헌납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성형 수술을 하지 않은 이상 어디에서든 당신에게 요구할 것이다. “닥치고, CUC로 내세요.”

쿠바 한 상점의 내부 모습. 천장에 가까운 벽면으로 흰색 천에 ‘LABDELM’이라고 적혀 있다. 상점 내부는 흥정하고 사진을 찍는 외국인으로 가득하다.
Emergency Solution
1. 가격이 없는 곳이면 애초에 포기한다. 공식 명기된 박물관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CUC로 낸다.
2. 보통 $로 표기된 가격 앞에 뻔뻔하게 MN부터 들이민다. 표정은 사뭇 진지해야 한다. 혹 그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 그때 몰랐다는 듯(외국인의 특징을 살려) CUC를 수줍게 낸다.
3. 미리 화폐 가치가 CUC인지, MN인지 귀찮게 묻는 수고를 한다.
4. 쿠바 물가에 익숙해진 상황이란 전제하에, MN 레스토랑임에도 CUC로 영수증을 가져온다면 싸움의 기술을 발휘한다. 목청껏 경찰과 까사 주인을 부르겠다고 한다. 다음 여행자를 위한 당신의 최소한의 선행이다.

친히 속은 후에 깨달은 화폐의 득도
* 거리의 상점 기준

아이템 각주 가격 유의사항
콘 아이스크림
하얀 벽에 파란 문을 한 거리를 배경으로 왼손에 아이스크림 콘을 든 모습. 갈색 아이스크림콘 과자에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아이스크림이 얹혀 있다.
화학물질을 잔뜩 그대에게. 모든 요리에 양념이 인색한 쿠바에선 아이스크림 중독 증세에 시달릴 수도! 1~5MN 1MN 짜리는 장난감 같은 맛.
망고
왼손에 든 망고 4개. 노란색 망고가 손바닥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망고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손에 가득 들어오는 망고 4개에 1MN이라는 이성적이지 않은 가격도 목격했다. 크기에 따라 개당
1~4MN
웬만하면 까사 주인과 손잡고 가서 살 것.
바게트
왼쪽으로 들고 있는 바게트 사진. 갈색의 빵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5MN 1MN 짜리는 장난감 같은 맛.
손바닥만 한 피자
흰색 종이 위에 올려 든 피자. 손바닥만 한 크기로 갖가지 토핑이 올려 있다.
기본 치즈 피자부터 햄, 파인애플 등의 주재료를 혼합한 피자까지. 기적은 맛이 똑같다는 데 있다. 10MN~12MN 점심 대체용으로 즐김. 귀국 후 피자의 ‘피’도 꼴 보기 싫은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음.
속고 또 속는 가격 위조

쿠바 현지인은 특별한 계산법을 한다. 지상이 아닌 화성에서 배운 산수 실력을 갖고 있다. 영수증에 1CUC(잊지 마라. 이 돈으로 2개의 피자와 1개의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따위는 개밥처럼 가뿐하게 얹어준다. 메뉴명을 바꿔치기해 가격을 높이 책정하는 것도 허다하며, 메뉴에 적힌 g 수보다 많은 양을 줬다고도 우긴다. CUC나 MN 레스토랑이든 대형 슈퍼마켓이든 같은 레퍼토리다. MN 레스토랑이 외국인 앞에서는 졸지에 CUC 레스토랑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있던 메뉴판도 실종됐다. 어쩌면 늘 따져야만 하는 현실이 측은해져 알면서도 웃돈을 주는 상황에 부닥칠 지 모른다. 나의 이야기다.
아바나의 고급 레스토랑 내부 모습. 빈티지한 인테리어로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까만색이며, 매장 한가운데 빨간색 클래식 자동차가 놓여 있다. 벽면은 노란색 벽지에 까만색 테두리의 액자가 나란히 정렬돼 있다.
계산서 사진. 주문된 각각의 메뉴 옆에 4.85, 8.50, 4.00, 2.00라고 적혀 있고, 하단에 총 금액이 20.35로 표시돼 있다.
Emergency Solution
1. 고급 호텔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긴장을 늦추지 말 것. 그들이 책정한 ‘고급’은 대접의 강도일 뿐, 계산 능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2. “La cuenta, por favor(라 꾸엔따, 포 빠보르).” 영수증을 요청하는, 당신의 서바이벌 문장.
3. 자신이 주문한 메뉴 가격을 초인적으로 기억하고, 영수증에 적힌 항목과 동일한지 치밀하게 따진다. 틀리면 따져라. 상상하는 총격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외 쿠바의 요주의 전문 사기단
에메랄드색 이층 건물 앞에 서 있는 택시의 옆모습. 측면에 문 2개가 보이는 자동차가 아닌, 리무진처럼 3개의 문이 보이는 자동차다. 전체적으로 노란색 바탕에 문만 까만색으로 책해져 있다.
택시 : 까사 주인은 그나마 우군에 속한다. 그들에게 미리 행선지와 가격을 물어라. 외국인에겐 기본요금 1CUC에, 1km당 1CUC를 요청하는 편. 그 이상은 부인한다. 아바나의 현지인 버스 터미널에서 공식 택시 가격이 0~10km당 10MN이라는 믿기지 않은 숫자를 목격한 적이 있다. 물론 우리에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콜렉티보 택시 : 먼 거리 행선지를 이동 시 버스 외 여러 명이 합승해 가는 택시. 터미널에 당도하면, 이의 호객꾼을 운명처럼 만난다. 버스보다 낮은 가격이면 감사해 하고, 대부분 버스와 같은 가격을 주장할 것. 이보다 높으면 가차 없이 돌아서라. 당신을 불러 세우는 기사가 분명 있을 테니.
먼저 접근하는 행인 : 눈물 나는 이야기지만, 먼저 말 거는 쿠바인에겐 약간의 경계 태세를 취하는 게 좋다. 비싼 레스토랑으로 인도하는 ‘삐끼’이거나 사진 촬영료를 요구할 관광 상품이거나, 자신의 자식과 어미가 아픈 신종 비렁뱅이거나 당신을 놓아줄 생각 없는 시가 장수이거나. 아니라면 당신의 천운이다.
까사 주인의 식사 요청

꽃무늬 식탁보 위에 깔린 2인상 요리. 흰색 개인 접시가 각 자리에 놓여 있고, 치킨, 채소 따위의 음식이 차려져 있다.
대부분 까사에선 숙박 외 아침과 저녁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유료다. 주인은 묵는 숙박객의 여권과 투어리스트 카드를 회수해 정부에 무조건 보고해야 하는데(우리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정부는 알고 있다), 그 항목 중 식사는 제외된다. 세금을 내지 않는, 주 수입원이란 이야기다. 그들의 생계인 까닭에, 자연스러운 설득 조 협박으로 점철되기 마련. 직업병인지, 까사 주인은 식사를 거부하면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하는 표정을 특기로 내세운다.
보통 아침 식사는 4CUC, 저녁 식사는 5~10CUC 정도를 평균적으로 주장한다. 비냘레스의 한 까사에선 널리고 싼 치킨 한 접시에 8CUC를 책정하는 호기를 부렸던 적이 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언성을 높였지만, 까사 주인은 전기세 영수증까지 친히 선보이며(가격 단위는 MN, 그들은 CUC라 주장했다.) 물러서지 않았다.

Emergency Solution
1. 가격을 미리 묻는다. 그들의 인심만 믿고 덥석 수락했다간 나중에 가격의 뒤통수를 맞는다.
2. 비싸다고 생각할 경우 외면하라. 유죄 아니다.
3. 좋은 핑계로는, 외국인 여행자와 오늘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침은 먹지 않는 습관을 지녔다고 한다. 구차한가?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쿠바 여행을 뜯어말리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나라 같은 환영을 불어넣어 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언제나 나쁜 것에 끌리는 법. 그렇다면 다음 여행자를 위해, 더는 일그러진 쿠바가 되지 않기 위해 조금은 완강한 여행자가 되길. 건투를 빈다.

info
좀 더 처절한 쿠바 여행담을 마주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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