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드라마의 비상구, 이제부터 ‘케드생활’

케이블 드라마가 뜨고 있다. 소재의 다양성과 실험정신으로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이른바 ‘케드(Cable drama)’ 열풍. 뻔한 드라마의 비상구가 되어주며 젊은 시청자들을 많이 유입했다. 그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구식 수동 텔레비전을 합성해 만든 표지 사진. 은색 텔레비전의 초록색 화면 안에 기사 제목 ‘뻔한 드라마의 비상구 이제부터 ‘케드생활’이 적혀 있다. 왼쪽 상단에는 비상구 표시의 그래픽 이미지로 재미를 주었다.

신선한 소재의 입구, 세대 아이돌 vs 시간 여행 vs 재난

위부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나인:아홉 번의 시간 여행’과 OCN 드라마 ‘더 바이러스’의 메인 포스터 이미지 사진. ‘응답하라 1997’은 가운데 큰 제목을 두고 6명의 주인공이 교복을 입은 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나인:아홉 번의 시간 여행’ 이미지는 남녀 주인공이 각각 ‘나인’이라는 제목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더 바이러스’는 주인공의 얼굴 클로즈업 사진이 왼쪽에 있고, 오른쪽으로 제목이 적혀있다.지난해, 1세대 아이돌 스타에 대한 추억, 그리고 우정과 사랑을 오가는 오묘한 청춘을 다루며 ‘대박 행진’을 이어갔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케이블 드라마의 전성기를 열었다. ‘오빠 부대’에서 ‘빠순이’로 이어지는 청춘의 한 코드를 집요하고 세밀하게 다룬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또한,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tvn 드라마 ‘나인:아홉 번의 시간 여행’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었던, 어쩌면 처음이었던 파격적인 소재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OCN에서 방영했던 ‘더 바이러스’는 국가 재난이라는 영화에서나 볼법한 소재를 가져오면서 영화 같은 드라마의 스케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모든 드라마의 소재는 케이블 드라마의 특징에 기인한다. 바로 신선하고 실험정신 투철한 소재라는 점, 기존 공중파 드라마가 가지고 있던 흥행공식을 빗겨갔다는 점이다. 출생의 비밀, 불륜, 남녀 간의 사랑으로 국한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새로운 소재를 호명하면서 케이블 드라마라는 장르의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졌다.

미국 드라마, 영국 드라마 등과 같이 해외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다양하고 참신한 소재를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드라마의 장르 역시 다양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가를 막론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젊은 시청자가 케이블 드라마에 유입되는 이유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개성파 캐릭터라는 통로, 영애씨 VS 최병장 VS 깨금이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씨는 리얼 다큐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주인공이다. 노처녀의 페르소나로 11시즌을 이끌어온 그녀는 시대의 한 표상이 되었다. 미지근한 연애와 잘될 일이 없는 사회생활, 외모로 보나 조건으로 보나 그저 그런 ‘미온’의 여성이자 미혼의 여성 영애씨. 영애씨에게 이입할 수 있었던 수많은 시청자들은 ‘드라마틱’한 드라마가 아니라, 생활에 밀착한 ‘개연성’이라는 형식에 푹 빠졌다.
왼쪽부터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푸른 거탑’, ‘이웃집 꽃미남’의 자료 화면. 왼쪽 사진은 영애씨가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패러디하여 하얀 원피스에 빨간 케이크를 들고 서 있다. 가운데 사진은 군복을 입고 연기하는 주인공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남녀 주인공이 포즈를 취하는 드라마 포스터이다.
남자들의 경험으로 국한되었던 군대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며 호평받은, tvN 군디컬 드라마 ‘푸른 거탑’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말년 최병장’은 전두엽까지 파고드는 말년의 고루한 일상을 섬세하고 코믹하게 풀어냈다. 남자들만 끄덕일 줄 알았던 이야기에 다양한 시청자도 공감하고 즐거워하면서 ‘군대’라는 특수한 소재를 대중적으로 만들었다.

tvN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에 나오는 엔리케 금은, 이른바 ‘깨금이’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스페인에서 온 천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엉뚱하지만 첫사랑을 찾아가는 순정파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깨금이와 러브라인을 형성했던 고독미 역시 이름처럼 ‘고독’했지만 이웃집에 들어선 꽃미남 깨금이를 통해 얼어있던 감정을 녹이기도 했다.

이들 드라마는 톱스타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수 있다. 배우 이름값으로 드라마를 수식하던 지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인지도는 조금 낮지만 더 다양한 배우를 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케이블 드라마의 매력적 요소인 것이다.

제작 방식과 연출이라는 출구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시즌 12 포스터. 노란색 바탕에 “다시 돌아온” 막돼먹은 영애씨라는 메인 타이틀이 보이고, 그 아래로 ‘레전드급 변화에 휘말린 영애의 진격이 시작된다!’라는 예고 문구가 적혀있다.

위부터 tvN 드라마 ‘몬스타’, ‘나인’, ‘제3병원’의 메인 화면. 각각의 제목이 크게 쓰여 있다.케이블 드라마가 단순히 소재 측면에서만 각광받은 것은 아니다. 공중파에선 볼 수 없었던 ‘시즌제 도입’을 통해, 종영 후 드라마에 대해 아쉬움을 가진 시청자를 달랬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지난 7월 18일 시즌 12 방영을 시작했다. 시즌이 길어지다 보면 드라마 흐름이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느슨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첫 시리즈 드라마로 그 영광을 누리고 있다.

2011년 호평 속에 종영되었던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역시 ‘로맨스가 필요해 2012’로 시즌2를 제작했다. 또한 지난해 화제를 낳았던 ‘응답하라 1997’의 후속작 ‘응답하라 1994’의 제작이 확정되면서 시즌 2 격의 새로운 드라마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1세대 아이돌 세대를 지나 서태지, 농구대잔치 등의 소재를 다룰 예정.

케이블 드라마는 쪽대본이 성행하는 공중파 드라마와 달리 드라마 분량의 ‘절반’ 정도를 사전 제작하여, 사전 제작 드라마가 가졌던 단점과 ‘쪽대본’의 단점을 감추기도 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뮤직드라마 ‘몬스타’가 그의 한 예다. OCN의 수사물 ‘TEN’ 역시 시즌2 마지막까지 제작, 촬영에 총 2년이라는 시간이 들어갔다. 물리적인 요소들로부터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제작 환경이었다. 방영 시간과 일정에 쫓겨 부랴부랴 찍어야만 하던 것과는 다른 제작 방법으로 진행된 것. 케이블 드라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미드처럼, 케드처럼

미국 드라마 ‘CSI’와 ‘두 남자와 이 분의 일’의 메인 이미지. 각각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메인 타이틀이 가운데 적혀 있다. 이들 모두 시즌 10을 넘긴 장수 드라마.종합편성 채널이 편성되면서 종편 드라마도 가세했다. 국내에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더욱 다양해진 것이다. 장르물에 대한 부담감 없이, 그리고 소재에 대한 걱정 없이,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이 비상구를 통해 드라마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는 듯하다.

국내의 드라마를 두고 ‘미드’에 열광했던 시청자들이, ‘케드’에 유입된 것은, 어쩌면 위험한 시도를 거듭했던 기획과 제작에 있을 수 있다. 그 실험을 통해 드라마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의미까진 아직 다 잡지 못했다.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케드가 가진 실험성과 조금 다르다. 때문에 두고 가야 할 것과 새롭게 가져가야 할 것에 대해 케드의 고민은 계속되어 간다.

케이블 드라마를 비상구로 표현한 것은, TV 속 드라마라는 매체를 통해 일상의 지루함을 잠시 잊게 해준다는 의미였다. 했던 말 또 하듯, 기존 국내 드라마가 가지고 있던 진부함은 시청률에만 목적을 두고 있던 흥행 공식이 되어버렸다. 케이블 드라마의 새로운 시도는 이 공식에 대한 돌파이며 동시에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파편들 속에서 더욱 다양해질 케드생활로 잠시 일상을 덮어두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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