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PD | 안녕한 당신의 천재들에게

잘 살아보고자 다짐하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살아가는 것이 살아내는 것으로 뒤바뀔 때, 잘살 수 없어지기도 한다. 정혜윤 PD는 자기 삶의 천재는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삶을 풀어가는 물음 속에 나 자체의 존재가 답이 될 때 끄덕일 수 있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강의명 ‘충만한 내 삶 살기 프로젝트’ –<사생활의 천재들> 북 콘서트
강사명 CBS 정혜윤 PD (GUEST 성기완 시인, 허클베리핀)
강의 일시 2013년 5월 9일 목요일
강의 장소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
당신의 천재는 물음표에서 탄생한다

“제가 좋아하는 후배가 있는데, 그 후배가 언젠가 고민이 있다고 했어요.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닮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게 고민이라고 고백했어요. 그래서 저는 ‘난 너를 닮고 싶다.’ 라는 대답을 했어요. 그 후배는 ‘나라도 못하겠느냐’ 식의 고통을 자기 출발점으로 삼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죠.”

미셸 푸코는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대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혜윤 PD는 변하지 않는 우리의 삶이 알리바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터득하게 되는 기술, 삶에 대한 처세술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존 버거는 만난 적 없는 나짐에게 편지를 보냈다. 감옥에 있는 나짐이 썼던 시를 읽고, 그를 친구라 부르며 나짐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너는 너의 고통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는구나.” 그리고 존 버거는 나짐에게 자동차 수리공으로 살아가지만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하며 살아가길 원하는 후안을 소개해주고 싶어했다. 나짐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죽은 친구 후안을 소개해주려고 했던 존 버거는 알게 된다. 죽은 사람에게 죽은 사람을 소개하려고 했던 것이다.

“저는 존 버거의 편지를 읽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살아있는 사람을 소개하는 우편 배달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책을 쓴 것 같고요. 성공 때문에 누굴 좋아하는 일은 애초에 떠났어요. 암환자를 취재하게 되었을 때 암환자는 행복하다고 말했어요. 아파보니까 고칠 점 많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해요. 회복기의 환자처럼 살고 싶어졌어요.”

당신의 천재는 어디서든 자란다

정혜윤 PD가 제시하는 미인상은 눈이 찢어진 사람이다. 한쪽 눈으로는 자기 자신을 보고, 다른 눈으로는 세상을 보는 사람. 그 시선 속에는 언제나 불안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취재했던 자기소개서를 33개나 쓴 취업준비생 이야기와 외로움으로 시작된 여의도 칼부림 사건, 일본 아키하바라 살인사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현대 사회의 불안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불안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노동자를 취재했을 때 놀라웠던 것은, 그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었어요. 저는 당연히 먹고사는 문제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대답은 그들은 ‘무의미’였어요.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건 무의미가 아닐까요.”

‘불안하세요?’ 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여기저기서 끄덕이는 인기척이 보였고, 대답을 쉽게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언제나 불안에 놓여 있는 사람에겐 천재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만의 처세술을 가진 사람에겐 그 천재가 무의식 속에서 답을 일러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자신의 천재를 발견하게 하는 사건이 생긴다.

당신의 천재는 변두리에 머물고 있다

정혜윤 PD의 무의미한 삶 속에 등장한 것은 평생 농사만 지었던 한충자 할머니였다. 80살 가까운 나이에 시집을 낸 할머니의 소식을 우연히 신문에서 보고, 그녀는 사랑하게 되면 단순해지는 감정으로 무작정 시골로 향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있는 시 창작 교실을 지나 할머니의 집까지 따라가게 된다.

“결혼 후 남편이 군대에 갔고 군대에서 남편이 계속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그러나 할머니는 문맹이라 글자를 읽을 수 없었죠. 70살이 넘어서야 동사무소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언젠가부터 배울 수 없게 되었답니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곳을 물었고, 누군가 ‘시 창작 교실’에 가면 배울 수 있다고 했대요. 그래서 시 창작 교실의 문턱을 넘었고 한글을 배운 뒤 가장 처음으로 한 것이 남편이 보냈던 편지에 답장을 한 일이었어요. 사랑한다고.”


정혜윤 PD는 자신의 사생활의 천재를 ‘듣는 것’이라고 했다. 라디오 PD라는 직업이 결국은 묻고 듣는 과정의 한 접합점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에 밀착해 들었던 것이 결국은 자신의 사생활을 이루게 해준 천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생활의 천재들>은 그 기록이 있는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당신의 천재를 빼앗겨도 괜찮다

게스트 성기완 시인은 정혜윤 PD와 함께 정보가 넘치지만 경험이 없는 사회에 대해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곧 일상이고 내가 나로 존재하는 시간들, 침대맡의 책들처럼 그 일상을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고백했다.

“나를 음악에 뺏기는 것이 제 사생활의 천재들인 것 같아요. 후련하게 뺏기면 원이 없는데. 내 한목숨 사는데 깔끔하게 바치면 그게 결국 다 내 것이 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스펙이라는 말이 너무 싫어요. 실력이죠. 보여주기 식의 증명이 아니라 결국 내 것으로 다 돌아와 승화되는 실력이 필요한 것이죠.”

정혜윤 PD에게는 ‘꿈의 주소들’이 있다고 한다. 닮고 싶은 사람,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바로 ‘꿈의 주소들’이다. 엄청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아닌, 한충자 할머니처럼 평범하지만 의미가 선명한 사람들.

“어느 날 새벽에 택시를 탔어요. 택시에선 제가 만든 라디오 채널이 흘러나왔어요. 재즈 프로그램이었는데, 기쁜 나머지 기사님에게 여쭤봤어요. 재즈를 좋아하시느냐고. 기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재즈는 고상하면서 잔잔하게 흘러가다가도 하고 싶은 대로, 제멋대로 애드리브를 보여주기도 한다고요. 그것이 결국 우리의 일상이 아닐까요?”


그 후, 성기완 시인은 고장 난 기타로 ‘흥얼거림’을 들려줬다. 조율될 수 없는 기타로 정해진 노래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흥얼거리고 싶은 것을 연주했다. 사람들은 그 노래에 심각해하기도 하면서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정해진 것 없이 진행되는 여정에서, 그럼에도 나를 믿고 나에 대해 충만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또 다른 물음표가 던져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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