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l 잊고 싶어, 지우고 싶어! 뇌도 리셋이 되나요?

한겨레21 인터뷰 특강 최다 출연자 정재승 교수. 올해로 벌써 6번째 출연이다. 매년 출연 제의가 들어올 때마다 “이번엔 주제가 뭔가요?”라고 물으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주제였다고. 이번 강연 주제 <새로고침(F5)> 역시 그랬다. 강연을 맡은 본인조차도 ‘새로고침’이 필요했으니까.

강의명 한겨레21 인터뷰 특강 새로고침(F5) 정재승 교수 편. 뇌도 리셋이 되나요?
강사명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
강의 일시 2013년 3월 27일 수요일 오후 7시
강의 장소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 1층 컨벤션홀

우리는 종종 인생을 ‘새로고침’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새로고침’은 늘 어렵다. ‘새로고침’은 왜 어려운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인생을 ‘새로고침’ 할 수 있을까?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신경과학적인 관점에서 재미있게 설명해주었다. ‘새로고침’하고 싶은 사람들, 했던 사람들, 본의 아니게 해야 하는 사람들 모두 주목해 보자.

새해 결심은 왜 지켜지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는 매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며 새해 결심을 한다. 그리고 구정 때 한 번 더 결심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에 모든 걸 ‘새로고침’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심뿐, 언제나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올해 새해 결심에 ‘다이어트’ 혹은 ‘이성 친구 사귀기’ 등을 세웠을 것이 분명하다. 작년 리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또한 내년에도 많이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결심들을 말이다.

뇌를 생각했을 때 우리가 새해 결심을 못 지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에요. 인생을 리셋하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중추인 뇌가 리셋되어야만 해요. 뇌가 리셋돼야 비로소 우리의 삶이 리셋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그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에요. 사람들은 인생을 ‘새로고침’ 하기 위해 자신의 뇌를 쓰기보다 습관이라는 ‘안락함’을 좇기 때문이죠.

그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최근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이른바 ‘Old Boy Problem’ 실험. 영화 <올드보이>처럼 실험용 쥐들을 3개월 정도 감금시켜놓고 초콜릿, 바나나, 시나몬, 커피 이렇게 네 가지 종류의 먹이만 제공하면서 쥐들이 어떤 먹이를 고르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3개월 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것 같았는데, 그 속에는 규칙이 숨어 있었다.

“아름다운 결과였죠. (웃음) 쥐들도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먹는 거였어요. 지난 10번째 식사시간에 초콜릿을 먹었으면 그다음 11번째는 다른 걸 먹을 것 같잖아요. 하지만 놀랍게도 똑같이 초콜릿을 먹을 확률이 80%나 됩니다. 그다음은 83%, 또 그 다음은 85%…… 점점 먹었던 걸 먹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뇌는 과거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해놓은 다음, 사람들로 하여금 매번 그 음식을 찾게 만들죠.”

내 삶의 진폭은 어느 정도인가?

이 실험을 현실에 적용해보자. 우리 뇌는 크게 ‘Goal-directed System’ 영역과 ‘Habit System’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반복적으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일 때 이 두 가지 영역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 ‘Goal-directed System’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처럼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뇌의 영역이다. 반면에 ‘Habit System’은 말 그대로 습관적인 의사 결정을 하려는 영역이다. 우리의 뇌는 전자보다 후자의 영역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짜장면과 짬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과연 인류의 영원한 숙제일까요? 이는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개개인에겐 이미 나름의 답이 정해져 있어요. 짜장면과 짬뽕, 이게 화두라면 짬짜면이 나왔을 때 바로 해결되었어야 할 문제 아닌가요? 사람들은 중국집에서 음식을 고를 때 뇌를 쓰고 싶지 않아 합니다. 이게 바로 습관의 힘이죠. 그런 의미에서 ‘배스킨라빈스 31’의 골라 먹는 재미는 사실 없는 거예요. 31가지의 종류 중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매번 4가지 정도 선에서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고 매출도 8가지 종류 안에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 대부분의 일상이 습관으로 가득 차 있는가, 아닌가를 삶의 ‘진폭’의 차이로 정의했다. 어떤 선택을 내릴 때 습관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삶의 진폭이 좁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반대로 항상 가장 좋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그만큼 삶의 진폭이 넓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작년 1년 동안 주로 누구를 만났나요? 정해진 몇몇 사람이 있지 않나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는 거죠. 옷장을 한번 열어보세요. 색깔의 진폭은 얼마나 되나요? 주로 입는 색깔만 입지 않나요? 만약 다양한 색깔의 옷이 많다면 그만큼 색깔에 대한 삶의 진폭이 넓은 거예요. ‘Habit System’보다는 ‘Goal-directed System’이 작용을 한 거죠. 자신을 한번 돌아보세요. 만나는 사람, 갖고 있는 취미, 먹는 음식의 진폭이 너무 좁은 것은 아닌지.”

우리는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습관으로 대체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뻔한 패턴으로 고착화되는 지름길이다. 이 습관들로 인해 새해 결심은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습관이 우리의 삶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고 안전하게 해주니까.

후회가 절박함을 만든다

‘새로고침’이라는 것은 나쁜 습관이나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새로고침’은 언제나 어려울 것이고 매년 똑같은 새해 결심은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로고침’을 잘할 수 있을까? 내년에는 당신에게 새해가 오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아라. 절박하지 않은가? 바로 이 ‘절박함’이 새로고침을 가능케 한다.

“새로고침에 성공하려면 ‘절박함’이 필요해요. 술, 담배를 많이 해서 암에 걸렸던 환자가 죽다 살아나면 그만큼 새로운 삶을 살잖아요. 술, 담배를 모두 끊고 매일 등산하러 다닌다든지, 유기농 음식만을 고집한다든지. 이렇게 갑자기 아팠다가 살아나서, 또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새로고침’을 할 수 있죠.”

내일은 해가 뜬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내일 해가 뜨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그 불행한 경험을 극복했을 때 우리는 ‘새로고침’에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한번 크게 아프거나 주변인이 세상을 떠나는 걸 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불행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서도 절박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후회’를 꼽았다.

“인간은 유일하게 후회를 하는 동물이에요. 후회는 신경과학자들 사이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고등한 능력으로 손꼽히죠. 후회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등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예요. 따라서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것은 이 고등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내가 만약 죽으면? 내 삶은 어떻게 되지? 내 일은? 내 재산은? 내 친구는? 이렇게 시뮬레이션 기능을 십분 활용할 줄 알아야 해요. 죽음을 염두에 두면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후회를 하게 되죠. 이 후회를 통해 절박함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탐색하는 삶 vs 학습하는 삶


그는 절박함 외에도 ‘자기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하라’고 조언했다. 습관적인 일상의 안락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이 주는 즐거움을 느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고, 그 사람들에게 자극을 많이 받아야만 새로운 습관들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인생을 새로고침하는 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탐색하는 삶(Something NEW) 또는 학습하는 삶(Same Old way)이다.

“어제 얻은 습관, 생각, 고정관념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해도 내가 오늘 선택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본 다음, 선택하고 탐색하는 삶을 살아보아야 해요. 새로운 시도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면 뜻밖의 수확도 얻을 수 있죠. 매일매일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으로 ‘새로고침’을 시도한다면 지금보다 더 유쾌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여전히 ‘새로고침’은 어렵다. 우리가 컴퓨터라면 재부팅을 하면 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인간이기에 더 어렵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선택하고 탐색하는 삶이, 새로운 시도를 갈망하는 삶이 분명 우리를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그러니 구태의연한 습관은 벗어던지고 ‘새로고침’을 향한 희망을 가져보자. 설렘 가득한 내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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