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 | 실패는 달고 인생은 길다

우리는 항상 고민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강연회에서는 무엇을 할지, 그리고 왜 하는지 매 순간 고민하는 한 남자의 진솔한 38년 인생 이야기가 펼쳐졌다. 한 남자, 나영석 PD였다.

강의명 나영석 PD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강사명 나영석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 시즌 1 PD
강의 일시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강의 장소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3층
주최 알라딘
쭈뼛쭈뼛 남학생, 연극부원이 되다

나영석 PD는 언론고시를 단 한 번에 합격하고 KBS <1박2일>을 통해 인기 PD로 떠올랐으며, 단시간 내 KBS 예능국 차장으로 파격 승진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대학시절 폐인의 경험이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대학만 가면 무조건 될 줄 알았는데, 입학하고 보니 막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간판만 보고 들어간 대학의 전공 공부는 재미가 없었고, 수업은 빠지기 일쑤였다. 하숙방에서 만화책 보기가 그의 일상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도대체 뭘 원하지?’, ‘나는 뭘 좋아하지?’ 이런 질문을 처음으로 하게 된 게 참 창피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와서였어요. 그런데 이런 질문을 다들 예상외로 자주 던지지 않아요. 하루하루에 휩쓸려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죠. 저 역시 그랬고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는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방법은 독서였다. 단기간 내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나름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을 겪을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인생과 역사가 한 권으로 축약된 책 속에서라면 가능했다. 그는 일주일에 2~3권씩 책을 읽었다. 소설, 만화 등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두 번째는 연극 동아리 가입이었다. 20세의 나영석은 ‘동아리 방문을 못 두드릴 정도로’ 낯을 심하게 가리고 쑥스러움을 심하게 탔다. 그래서 ‘자신과 안 맞는’ 연극 동아리에 가입했다. 큰 동아리는 아니었다. 학내 중앙동아리도 아니었고, 단과대학 내 가장 작은 소규모 연극 동아리였다.

그러나 그 덕에 그는 소품, 조명, 조연, 연출, 극작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았고, 그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재미를 발견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 그는 함께하는 그 분위기와 과정에 쉽게 매료됐다. 3달간의 땀방울이 단 4일 만의 3번의 공연으로 끝나기 때문에 허탈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즐거웠다. 전공도 듣지 않고 대책 없이 교양만 19학점을 채운 적도 있었지만, 그냥 재미있었다. 그렇게 그는 대학 내내 연극에 미쳐 있었다.

실패를 달게 받고 현실을 인정하라

이 시대의 성공한 유명인사는 청중에게, 특히 20대에게 ‘꿈이 있으면 못할 게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자신의 심장을 믿고 뛰어가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은 막상 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법.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세상 모든 일이 쉽게 풀렸다면, 도전이라는 단어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영석 PD는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끝나면, 진보가 없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심장을 믿고 뛰어가면, 큰일이 난다.”라며 말이다. 그는 왜 좋아하는지를 스스로 자세히 물어봐야 하며,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미로만 좋아하는 것인지, 자신의 마음을 울리기 때문에 좋아하는지, 그냥 좋아하는지, 재능은 있는지, 그리고 평생 이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는지 말이다. 덧붙여 그는 실패의 책임도 자신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항상 여러분 말고, 또 다른 자아가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그리고 그 또 다른 자아는 계속 ‘나’를 내려다보고 있고, 일일이 판단을 내려줘야 합니다. ‘엇, 너는 이렇게 행동하는 걸 보니까, 넌 ~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식이죠. 제가 연극에 미쳐 있었을 땐 그런 폭발력이 좋았어요. 친한 사람들과 한팀이 되어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낸다는 그 성취감, 이 과정이 좋았어요.


실패 후 수습의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스스로 묻곤 한다. 꿈을 접을 만큼 이 결과가 가혹한지 말이다. 붙을 거라 자신만만했던 대본 공모전에서 여러 번 떨어졌을 때도, 4달간 열심히 일한 영화사가 갑자기 망해서 취업 재수생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네 꿈,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포기할 정도로 지금 이 실패가 가혹한 거니?” 그에 대답은 ‘아니오.’였고, 그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엎어지거나 실패하더라도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이 길에서 오는 재미가 엎어졌을 때의 아픔을 뒤엎고 남을 정도인가 확신해야 하고요. 쉽게 말하면 이거예요. 내가 연극을 하다가 굶어 죽거나 망해도, 나중에 ‘아, 그래도 즐거웠어.’라고 생각하며 죽을 수 있느냐를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그런데 답이 잘 안 나와요. (경험도) 안 해 봤는데 어떻게 대답이 나오겠어요? 그런데 그때, 한발 내디딜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전 여기서 내딛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패도 제 책임이고, 그 책임에서 오는 멍에나 벌칙은 난 달게 받겠다고 생각했어요.

망할지도 모르지만, 재미있어서 하는 거야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시즌 1의 인기는 대단했다. 시청률 30~40%는 예삿일도 아니었다. 50%는 넘어줘야 회식을 했다. 생방송 사고를 한 번 크게 친 이래, ‘최소한 한 사람의 몫을 해, 월급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려온 그가 보상받을 만한 결과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1박2일> 멤버이자 ‘국민 엄마’로 떠오른 김C가 갑자기 하차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자신에게 예능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찾기 위한’ 베를린으로의 음악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예능국은 난리가 났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을) 알고 싶다.”란 김C. 마음속 이야기를 돌려 말하지 않는 그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 PD는 처음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김C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내일모레 마흔이야. 난 원래 음악을 하던 사람인데, 국민 예능이라 불리는 이걸 하고 있지만, 나랑 맞는지 모르겠어.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만약 아니라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더 늦기 전에 알고 싶어.

<1박2일>로 유명해진 이우정 예능 작가가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대본을 쓴다고 했을 때도 나영석 PD는 만류했다. “그 드라마 재미없을 것 같고, 예능 작가로의 커리어를 생각하며 정신 차려. 너 프로야. 망하면 어쩌려고 그래!” 나 PD의 현실적인 질타가 이어졌지만, 이우정 작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왜? 재미있을 것 같은데? 드라마 써 보니까 재미있어. 그런데 망할지도 몰라~.”
이들의 대답을 듣고, 나영석 PD는 자신과 다시 마주하기 시작했다. <1박2일>의 후광을 입은 자신은 과거와 달리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는 ‘기본적인 것도 할 줄 모른다.’는 자기반성에서 시작해 성공만 생각하며 레이스를 달려왔다. 그러나 손에 많은 것이 주어진 이후, 그는 재미로 일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다른 기준으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깨달은 그는 레이스를 달리던 경주마의 고삐를 느슨하게 내려놓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같이 가슴 뛰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 같이 일하고 있어요. 즐거워요. 망할지도 몰라요. 망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망하는 것만을 두려워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아요. 그리고 여러분, 저 망할 때 됐어요.(웃음) 어차피 레이스는 길어요. 다음에 성공하면 돼요. 나와 잘 맞고 즐거운 파트너만 있다면, 언제든 성공할 수 있어요. 내가 즐겁고 가슴 뛰는 일이라면, 언제든 성공할 수 있어요. 지금 한순간 망하고 성공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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