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경주의 깊은 꾐 3막

그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인터뷰이로 그를 섭외하기 위해 일종의 잠복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잠복하는 이가 그렇듯 흘끔흘끔 그가 있는 쪽을 향해 곁눈질하고 있었고, 이윽고 몇몇 학생들 뒤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김경주 작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려던 바로 그때, 그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인터뷰 섭외’라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음에도 화들짝 놀라버린 나는, 재빨리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마주친 그의 눈은 흡사 ‘바람’과도 같았다. 아니 바람에도 눈이 있다면, 그때 보았던 그의 눈과 같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작가 김경주와의 첫 만남이다.

김경주 작가는 지난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한국 문단에 등장했다. 2006년 첫 시집인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를 필두로 시집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와 산문집 <패스포트>, <펄프키드>를 비롯해 최근 몸에 관한 몽상집 <밀어> 등이 그의 결실이다. 현재는 시인이자 극작가, 연출가, 공연기획자 등으로 예술의 전방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어로 쓰인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평론가 권혁웅)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대산창작기금 심사평)과 같은 평을 받은 바 있는 그는 ‘문단의 괴물’ 혹은 ‘문단의 뱀파이어’라고 불리고 있다.

당신은 에테르 속에 초대되었습니다
가슴을 깊게 들이쉬고 참으세요
여기는 숨이 찬 인어(人語)들의 멀미로 울렁입니다

김경주의 <기담> 중

1막 _ ‘생존’이 아닌 ‘실존’을 고민하다

당인리 발전소 근처 이리 카페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는 경쾌한 바람처럼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현재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는데,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시 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많이 다르지 않으냐고 묻자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좋은 동료를 만들기 위한, 선배로서 가는 것이라고 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에게 ‘너희 중에 화성인이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해요. 자신을 고유하게 표현하는 화성인이 되라고요. ‘만약 화성인이 못 된다면 좋은 예술가, 좋은 예술가가 되지 못했다면 좋은 시민이 되라.’라고 이야기하죠. 많은 아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시민’이 아닌 ‘서민’이 되어 버려요. 시민은 교양과 문화의식을 가진 사람이에요. 예술을 존중하고, 예술가가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 의식을 가진 사람이 ‘시민’이지요.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시인이라고 하는 것보다 ‘시 쓰는 김경주’라고 할 때 가장 당당하
다.’라고 했다. 그의 트위터 소개 문구 중에는 ‘은하철도 공무원(비정규직)’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직업이 있다. 그냥 공무원은 직장인이지만, 은하철도 공무원인 자신은 남이 들여다보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곳에서 공무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결국 예술가를 비유한 것이다. ‘

직업이란 것은 ‘고용’의 형태가 존재해야 해요. 고용주가 나에게 월급을 주면 내가 그 월급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것처럼 고용주와 피 고용주가 형성되지요. 그러나 내가 시를 쓴다고 해서 누가 나에게 월급을 주진 않아요. 출판사도 책을 내야 돈을 주는데, 그 책은 내가 쓴 것이죠. 예술가는 서비스업이 아니라 자영업이에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놓고, 내 체계 안에, 내 질서 안으로 그들이 찾아오게끔 하는 거예요. 예술가는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고 자기가 쏟은 노동력의 가치를 환원 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 시를 쓰는 일을 하는 그런 ‘상태’라고 한 거죠.

‘이걸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졸업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어디에 취직할 수 있을까?’ 한숨이 따르는 이 고질적인 대학생의 고민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20대의 가장 큰 고민은 단연 취업이며, 예술가를 꿈꾸는 20대는 더욱 심각한 고민의 늪에 빠져 있다. 시를 쓰는 문학청년이던 시절, 20대의 김경주도 직업에 대한 ‘먹고사니즘’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요즘 20대는 삶을 목적론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20대의 잘못이 아니라 제도권 교육과 수직적인 사회가 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이죠. 그들은 한 단계를 마치면 다음 단계로 가야 하고 다음 단계로 가면 다시 그다음 단계를 가야 하는 모범답안과 정답만을 찾는 삶을 살아왔어요. ‘먹고 사는 문제’가 취업하면 끝날 것 같나요? 그걸 지키기 위해서 발버둥쳐야 하는데? 우리는 죽을 때까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예요. 그러나 예술가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내가 왜 사는가? 내가 여기에 왜 있는가? 나는 무엇으로 내 존재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그런 것을 고민하며 실존적 삶을 고민하고, 그것을 택하는 거죠. 생존 문제가 해결된 작가가 어디 있겠어요? 생존의 문제는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해요.

그리고 그는 인터뷰를 한 지 불과 16분 23초가 지났을 무렵, 그는 질문을 던졌다. “네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이 뭐냐?”라고.

2막 _ 모든 사람에게는 시심詩心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시심詩心이라는 씨앗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씨앗을 가졌다고 모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닌 법. 누군가는 시심의 싹을 틔워 시를 느끼고 즐기지만, 대부분 시심은 꽁꽁 얼어있기 때문에 시를 멀리하고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시적인 것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요. 그러나 저는 시보다는 ‘시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시적인 것’이 시의 형태로, 연극의 형태로, 영화의 형태로, 때로는 이미지의 형태로 전이되고, 확장되기 때문이죠. 시가 눈에 보이나요? ‘시’라는 것은 일종의 ‘고스트’같은 거예요. 실체는 없지만 분명한 흔적이 있는 것. 시라는 것은 이런 시적인 것에서 출발하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시적인 것에서 멀어져 간다는 건 ‘선명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지금 시대 자체가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하고, 서사적이고 스토리텔링적인 것을 강요하니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이야기를 밀어내는 시를 멀리하게 되는 것이죠.

대부분 시를 잘 읽지 않는 세상이다. 시집은 물론 잘 팔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시를 쓴다. 여러 시인도 여전히 시를 쓴다. 과연 그에게 시를 쓰는 것은 무엇일까?

제가 시를 쓰는 이유는 시적인 것이 좋아서 쓰는, 단지 그뿐이에요. 독자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시를 쓰는 동력은 나로부터 출발하죠. 더 많은 사람이 시를 외면하지 않고 시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것을 제힘으로 바꾸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저는 대중적인 시인이 아니에요. 굉장히 마니악한 시를 쓰고 있고, 전위적인 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를 쓰는 것은 굉장히 외롭고 정직한 작업이기 때문에, 그 작업에 대해 읽어주지 않는다고 큰 목소리로 떠들고 싶지 않고요. 제가 매체와 인터뷰하는 것은 시를 읽으라는 차원이 아니고 ‘이런 종류의 다양한 예술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있어야 한다.’라는 일종의 증명이에요.

사람들은 으레 ‘시’라고 하면, 제일 먼저 어렵거나 따분하다는 말을 떠올린다. 처음 시를 접할 때부터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해석하고, 암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시도 음악을 듣는 것처럼 시 자체를 느끼고 음미하면 되는 게 아닐까?

제가 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음악성’이에요. 그래서 시가 영원히 짝사랑해야 할 대상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시를 읽을 때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무언가 해석하려고 하는 순간, 시는 멀어지게 되니까요.

3막 _ 설렘에 기인한 뻔뻔함이 무기다

우리는 외적으로 자신을 가꾸는 데에는 지대한 노력을 쏟는다. 날씬해지기 위해서라면 무리한 다이어트도 서슴지 않고, 화장품과 옷에 쏟아 붓는 돈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어떠한가.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데에는 굉장히 인색하다. 아니 무지하다. 그에게 외면이 아닌 내면, 자기 안의 소울soul을 살찌우는 것에 대해 물었다.

정신을 위해선 우선 몸이 제일 중요해요. 몸이 경직되면 행동이 경직되고, 행동이 경직되면 말이나 생각도 경직되기 때문이죠.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열어두고 이 사회와 기존 세대가 만들어놓은 세계에 감염되지 않도록 해야 해요.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양식을 가꾸고, 그것을 굽히지 않는 뻔뻔함이 필요하죠. 답을 찾으려고 하면, 애쓰기보다 이미 내 안에 있는 답을 찾아 뻔뻔하게 이야기하는 게 오히려 더 필요해요.


자신의 고유한 표현양식과 뻔뻔함을 강조하는 그는 과거 독학으로 시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형식도 모르고 무작정 시를 썼다고 했다. 필사도 많이 하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미친 듯이 시를 썼다. 그의 첫 시집에 실린 ‘비정성시’는 A4 30장 정도가 실렸는데, 원래는 80장 분량의 시였다. 그 시를 썼을 당시 그는 대학 졸업을 3달 정도 앞두었던 때였고, 정신적으로 대학생활을 기리기 위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글’이었다. 그리고 그는 조그만 방 안에 틀어박혀 오랜 산고 끝에 ‘비정성시’를 탄생시켰다.

후배들에게 바깥에서 방문을 잠그라고 했어요.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에 문을 열라고 하고, 라면 한 박스만 들고 가서 한 달을 틀어박혀 썼어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형식에 얽매이지도 않고 쭉 써내려 갔어요. 그렇게 꼬박 한 달을 바쳐서 쓰고 나니, 뭔가 해낸 것 같고 뿌듯했죠. 그래서 문학 동아리에 가져가서 보여주고 합평도 했는데, 모두 ‘이게 뭐냐, 문학이냐’라며 욕했죠. 전부 그 시를 버리라고 했지만, 전 끝까지 버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아름다운 것을 몰라보다니, 너희는 가짜 문학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3개월 뒤 등단했어요. 그리고 등단하고 첫 시집을 낼 때, 그때 썼던 ‘비정성시’를 넣었죠. 출판사에서도 다 반대했지만, 저는 꼭 싣고 싶었어요. 자기 안의 확실한 용기와 고집이 있다면 쉽게 포기해선 안돼요.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하죠. ‘나한테 쓴소리 들었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라. 오히려 나를 감동시킬 오기를 가지고 와라. 네가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놈이라면, 내 글을 보고 눈물을 흘릴 거다.’ 그런 생각과 근성을 가져야 한다고요.


그를 보며 견고하게 지어진 성을 떠올렸다. ‘자기 믿음’이라는 벽돌로 지어진 그 성은 워낙 촘촘하고 단단하게 지어졌기에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그에게 ‘자기 믿음’의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여러 형태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자존감’의 다른 말이겠죠. 자신을 긍정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세계와 맞서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누구나 외롭고 힘든 시간을 버티며 지내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있는 그 시절을 저도 보냈죠. 서울로 상경했을 적에 월세가 없어서 건물 옥상에서 텐트를 치고 살았는데, 그때 제 곁에는 함께 견뎌줬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들과 독립영화도 만들고, 연극도 만들었죠. 그들과 버틴 그 시절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아요.

친구와 함께 만든 영화는 모두 실패하고 넘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일어나 또 다음 영화를 만들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그의 영화는 실패했을 지라도, 그의 기준으로는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을 위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설레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었다. 흔들리지 않는 그의 자기 믿음은 이 두근거리는 설렘에서 기인한 게 분명했다.

우리는 조금씩 혁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안에 있으면서 자신만의 조그만 혁명을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게 필요해요. 내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 모두가 옳지 않다고 해도 두렵지 않아야 해요. 다른 사람이 내게 수갑을 채우고, 돌멩이를 던지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는 도덕적 가치나 기준은 사회가 아닌 자기 자신이 만들어가는 거라고 했다. 설령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자일지라도, 세상 모든 사람이 내 아버지에게 돌을 던지더라도 나는 그 돌멩이를 막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내 안의 윤리이자 도덕이라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반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이라고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연민하는 것, 그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저의 모든 책에는 ‘연민’이 담겨져 있어요. 또 나와 함께 살아온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희망’은 자신의 삶에 예의를 갖추는 거예요.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대단한 놈인가요? 우리는 그러한 삶을 무시하거나 장악하려 해서는 안되죠.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삶에 예의를 갖추는 거예요. 그러한 희망이 우리의 문학이 되었으면 좋겠고, 누군가에겐 사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되었으면 해요.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응시하는 그런 느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열한 모든 것이 결국 ‘희망은 삶에 대한 예의’라는 또 다른 말이 되는 거겠죠. 우리 모두 삶의 연민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서, 생의 연민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 김경주. 견고한 자기 믿음으로 빚어진 그를 보면 우주의 어딘가의 박혀있는 단단한 광물 같기도 하다. 그러나 도무지 종잡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그를 보면 세상 끝에서 불어오는 이름 모를 바람 같기도 하다. ‘김경주’라는 바람이 머물렀던 그 짧은 시간은 ‘설렘’이라는 향기와 ‘연민’ 이라는 음악으로 오래도록 그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전생에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은 그때 나를 작곡한 그 남자다 그는 현세에 음악으로 환생한 것이다 까닭에 나는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전생을 거듭 살고 있는 것이며 나의 현생은 전생과 같다 나는 다시 서서히 음악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간직한다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비정성시’ 중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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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콧털은 의외로 빨리 자랍니다..ㅎㅎㅎ 그의 분위기와는 좀 반전이 있는듯?
  • 이채원

    너무 좋은 인터뷰에요ㅠㅠ 방학도 되었는데 시집도 읽고 내면을 살찌워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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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윤 기자

    @읽어줘서 고마워요 채원기자 : ) 채 기자에게는 특별히 김수영 시전집을 추천하고 싶어요 :-)

  • 키맹

    좋아서 미치겠어요. 말들이 강해서 인터뷰가 힘들었을 거 같다는 예상...하지만
    날카로운데 그 안이 또 따뜻해서 변태적으로 느끼고(?)있어요.. 조만간 찾아와서 또 읽을래요 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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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윤 기자

    제가 기사쓰다가 힘들 때 키맹님의 이 댓글을 보며 힘을 내곤 한답니다.
    변태적으로 느끼고(?) 있어요.... ㅋ_ㅋ 고맙습니다 :-))))))) 조만간 찾아와서 또 읽을거예요 이 댓글,

  • 화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나만의 글을 쓰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좋은 말이 잔뜩인 인터뷰 잘봤어요 ^^ 김경주님 정말 미남이시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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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윤 기자

    암요~화성인 될 수 있죠! 안 될 거 뭐 있겠습니까! 그치만 나만의 글쓰기는 역시 어려운 것 같아요! 동감이요오오!!!!! 김경주님의 시 또한 미남이랍니다 ㅎㅎ!

  • 박상영

    아...ㅠㅠ 인터뷰 되게 좋네요.... 마지막 싸인도 저한테 해주시는 말씀 같아요... 콧털이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원. 김소윤 기자 인터뷰이 섭외능력 부러워서 미칠것같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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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윤 기자

    으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마지막 싸인에서 퓔을 좀 느끼셨나요?
    역시 센스만점 박슨배님...!!!!!김훈 선생님도 섭외하겠습니다 ㅋ_ㅋ 氣 좀 주th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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