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염쟁이 유씨>2┃만일 내가 ‘염’을 당한다면?

이 모든 것은 가정으로부터 시작했다. 연극 <염쟁이 유씨> 속 유씨로부터 내가 ‘염’을 당한다면?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

연극 <염쟁이 유씨>의 찬란한 브리핑
유씨는 평생을 염을 하며 살아온 ‘염쟁이’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일생의 마지막 염을 하게 되고, 자신을 취재하러 왔던 어떤 기자에게 연락한다. 유씨는 기자에게 수시, 반함, 소렴, 대렴, 입관에 이르는 염의 절차와 의미를 설명하며, 염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염쟁이로서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폭 귀신과의 일, ‘장사치’라는 장의대행업자와의 일,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가족 이야기까지 말이다. 마지막 염을 마친 후 유씨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라고 얘기하며, 연극은 끝난다.
최지원 기자(이하 최): 헉! 아저씨, 지,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염쟁이 유씨(이하 유): 아이고 깜짝아! 이봐요 아가씨, 내가 더 놀랐어.

최: 아저씨가 왜 제 몸을 만지는 거에요!!! 지금 여기가 어디죠? 어, 어•••!

유: 이제야 알겠나? 자네는 죽었어. 그래서 지금 내가 자네 몸을 염하고 있는 걸세.

최: 평생 전신 마사지도 받아본 적 없는데 죽고 나서야 호강하네요. 여기저기 잘 주물러 주세요.

유: 암, 내 자네 몸 구석구석 잘 주물러주지.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다만 젊은 나이에 이리 빨리 가다니 안타깝게 되었어. 내 아들놈 염할 때도 그랬고••• 젊은이들 염할 때는 내 마음이 참 아파. 너무 가엾고 슬프다네.

최: •••

유: 부모님이 참 많이 우셨어. 자네 어머니께선 쓰러지셨고••• 어쩌다 이렇게 큰 불효를 저질렀나.

최: 우리 엄마 많이 울었죠?

유: 숨도 못 쉬시던걸.

최: 어휴, 그럴 줄 알았어요. 우리 엄마••• 엄마는 눈물이 많아서 걱정이야. 겁도 많고 눈물도 많고. 엄마 때문에 저도 눈물이 많은가 봐요. 스무 살에 혼자 서울 올라와서 밥도 손수 해먹고 혼자 청소하고 빨래하고••• 외로울 때, 서러울 때가 많았어요. 그 때마다 우리 엄마 생각이 많이 났는데, 전화를 잘 못 했죠. 통화하기만 하면 울어버리니까.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나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어쨌든 가끔 엄마한테서 전화오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코맹맹이 소리로 ‘아~ 안 운다! 내가 왜 우노. 응, 밥은 묵으따. 엄마는?’이라고 말하곤 했죠. 그러면 전화기 저편의 엄마는 ‘우는 거 같은데? 밥은 묵나? 밥 꼬박꼬박 먹고 댕기래이~’라고 답하시곤 했어요. 엄마가 미울 때도 참~ 많았는데••• 정말 많았는데••• 엄마가 보고 싶어요. 이제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요. 시간이 가면 엄마는 절 잊겠죠? 그냥 절 가슴에 묻어 버리겠죠?

유: 아니야, 젊은이. 자네 어머니는 자넬 잊질 않을 거야. 죽음이란 건 생명이 끊어진다는 것이지, 관계가 끊어진다는 게 아니거든. 어머니는 평생 자네를 기억할걸세. 자네는 영원한 자네 어머니의 딸이야. 나도 얼마 전 새파랗게 젊은 아들 놈 하나를 잃었지. 평생 염쟁이 노릇한다고 아들 놈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번 못 먹였어. 냄새 나는 제삿밥에 냄새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을 텐데도 그저 좋다고 웃는 그 놈이 참 고마웠지. 내가 그 아일 죽음과 너무 가까이 둔 것 같아. 아니, 사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지. 삶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죽음이 되는 것이고, 결국 죽음은 삶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자네의 삶은 어땠나?

최: 후회투성이에요. 좀 더 열심히 할걸, 좀 더 착하게 살 걸, 좀 더 살갑게 대해 줄걸, 좀 더 웃을걸, 좀 더 사랑할 걸. 저는 살면서 제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어요. 죽음은 항상 멀게만 느껴졌죠. 그래서 주변 사람이나 제 자신에게 소홀히 했던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미래에 ‘언젠가는 최선을 다 할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살아왔던 거죠. 제가 이렇게 갑자기 죽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유: 그래 맞아. 내 앞에서 말하지 않았나.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그래서 자네, 자네는 자네 삶이 후회스러운가?

최: 삶 자체가 후회스러운 건 아니에요. 소중한 사람을 좀 더 소중히 대하지 못해서 그게 너무 후회돼요.

유: 누가 제일 기억에 남는가? 가족은 당연할테고.

최: 고향에 있는 친구요. 사연이 많은 친구에요. 어린 나이에 겪어도 되지 않을 일을 너무 많이 겪었죠. 그 땐 저도 어려서 그 친구한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라면을 같이 끓여 먹거나 밤 늦게까지 동네를 빙빙 돌며 얘기를 나누는 것밖에 없었어요.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는데, 더하지 못한 맘에 속상하고 미안했죠. 그렇지만 그 아이에겐 항상 진심을 다했어요. 그래도 후회가 남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유: 음••• 자네는 그 친구에게 정성을 다 했어. 자네가 진심을 다 했다면, 그 친구도 자네를 좋은 친구로 기억할거야. 내 장담하지. 자네가 정성을 다한 사람이 있다면, 자네 삶이 영 나빴다고도 할 수는 없네. 내 생각은 이렇다네. 잘 산다는 건 정성을 다해 산다는 것이고, 그것이 쌓이면 좋은 죽음이 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 하지만 사는 게 더 힘들고 어려워. 잘 살아가다 보면 잘 죽게 되어있는 걸.
난 많은 사람들의 염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지. 자네도 무서워했던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선 잘 살아야 하는 거야. 정성을 다해서 살아야 하는 거야. 비록 젊은 나이에 죽은 자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지만,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살았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었고 진심을 다한 친구가 있었다면 자네는 그래도 꽤 괜찮은 삶을 살았어. 너무 슬퍼하지 말게.

최: 고맙습니다, 아저씨. 죽음에도 좋고 나쁨이 있다는 걸 몰랐네요. 저 괜찮게 죽은 것 같아요. 다음 생에는 좋게 죽을 수 있게 아저씨 말씀대로 정성을 다해 살아야겠어요. 후아, 이제 맘이 정리가 되네요. 아저씨, 전 이제 가야겠어요. 제 몸 마무리 잘 해주세요.

유: 그려, 편히 가게나. 편히 쉬시오,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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