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염쟁이 유씨>2┃만일 내가 ‘염’을 당한다면?
유씨는 평생을 염을 하며 살아온 ‘염쟁이’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일생의 마지막 염을 하게 되고, 자신을 취재하러 왔던 어떤 기자에게 연락한다. 유씨는 기자에게 수시, 반함, 소렴, 대렴, 입관에 이르는 염의 절차와 의미를 설명하며, 염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염쟁이로서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폭 귀신과의 일, ‘장사치’라는 장의대행업자와의 일,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가족 이야기까지 말이다. 마지막 염을 마친 후 유씨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라고 얘기하며, 연극은 끝난다.
염쟁이 유씨(이하 유): 아이고 깜짝아! 이봐요 아가씨, 내가 더 놀랐어.
유: 이제야 알겠나? 자네는 죽었어. 그래서 지금 내가 자네 몸을 염하고 있는 걸세.
유: 암, 내 자네 몸 구석구석 잘 주물러주지.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다만 젊은 나이에 이리 빨리 가다니 안타깝게 되었어. 내 아들놈 염할 때도 그랬고••• 젊은이들 염할 때는 내 마음이 참 아파. 너무 가엾고 슬프다네.
유: 부모님이 참 많이 우셨어. 자네 어머니께선 쓰러지셨고••• 어쩌다 이렇게 큰 불효를 저질렀나.
유: 숨도 못 쉬시던걸.
유: 아니야, 젊은이. 자네 어머니는 자넬 잊질 않을 거야. 죽음이란 건 생명이 끊어진다는 것이지, 관계가 끊어진다는 게 아니거든. 어머니는 평생 자네를 기억할걸세. 자네는 영원한 자네 어머니의 딸이야. 나도 얼마 전 새파랗게 젊은 아들 놈 하나를 잃었지. 평생 염쟁이 노릇한다고 아들 놈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번 못 먹였어. 냄새 나는 제삿밥에 냄새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을 텐데도 그저 좋다고 웃는 그 놈이 참 고마웠지. 내가 그 아일 죽음과 너무 가까이 둔 것 같아. 아니, 사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지. 삶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죽음이 되는 것이고, 결국 죽음은 삶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자네의 삶은 어땠나?
유: 그래 맞아. 내 앞에서 말하지 않았나.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그래서 자네, 자네는 자네 삶이 후회스러운가?
유: 누가 제일 기억에 남는가? 가족은 당연할테고.
유: 음••• 자네는 그 친구에게 정성을 다 했어. 자네가 진심을 다 했다면, 그 친구도 자네를 좋은 친구로 기억할거야. 내 장담하지. 자네가 정성을 다한 사람이 있다면, 자네 삶이 영 나빴다고도 할 수는 없네. 내 생각은 이렇다네. 잘 산다는 건 정성을 다해 산다는 것이고, 그것이 쌓이면 좋은 죽음이 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 하지만 사는 게 더 힘들고 어려워. 잘 살아가다 보면 잘 죽게 되어있는 걸.
난 많은 사람들의 염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지. 자네도 무서워했던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선 잘 살아야 하는 거야. 정성을 다해서 살아야 하는 거야. 비록 젊은 나이에 죽은 자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지만,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살았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었고 진심을 다한 친구가 있었다면 자네는 그래도 꽤 괜찮은 삶을 살았어. 너무 슬퍼하지 말게.
유: 그려, 편히 가게나. 편히 쉬시오, 젊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