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l 온 몸으로 시를 쓰며 삶을 짓는


우리 생을 위로하는 시인 도종환이 이번에 시 뒤에 숨어 있던 자신을 발가벗겼다. 그의 젊음의 꽃은 젖어도, 청춘의 향기는 젖지 않았다.

* 도종환 시인의 시에 대한 저작권은 각 출판사와 시인에게 있습니다. 아래에 인용한 시의 전문과 해제들은 도종환 시인의 홈페이지 ‘구구산방’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의명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도종환 시인 북 콘서트
강사명 도종환(게스트 : 가수 백자, 조성진 마이미스트, 김재욱)
강의 일시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강의 장소 웰콤 씨어터
좌절이 이끈 문학 인생

지난 해 출판계는 오랜만의 호황을 누렸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대중에게 다가섰다. <스티브잡스> 자서전, <닥치고 정치> 등은 근래 볼 수 없던 판매부수를 올리기도 했다. 문학계의 도약도 이런 열풍의 한 축을 차지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모르는 여인들>이나 드라마로 재구성되어 인기를 누린 <뿌리깊은 나무> 등이 있었고 시 부문에서는 특별한 베스트셀러가 없었으나 연말에 발간된 도종환 시인의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는 많은 이들에게 애잔함을 남겼다. 그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는 그가 지은 시의 한 구절을 그대로 따 온 제목이다.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20대에서부터 지금까지를 아우르는 이 책의 제목은 곧 그의 인생을 포괄하고 있다.

제 문학을 이끌고 나가는 힘은 좌절입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포기와 시련은 저를 좌절하게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배고픔에, 청소년기에는 그림공부에 대해서, 대학을 다니는 청년기에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의한, 그리고 그 후에는 가족과 제 자신에 대한 그것이 저를 글 쓰게 한 것 같습니다.

그는 삶의 순간 순간에 알맞게 기록해온 시들로 퍼즐을 맞춰 그의 인생을 기록한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없이도 그의 인생은 그간의 시집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이 수필집 또한 그의 시 세계를 알 수 있는 증거이자 연장선이다.

생이 저물어도 시는 끝끝내 남더라

도종환 시인은 지난 해 말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을 발간한 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심사위원단은 수상작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 혹은 생이 아닌 ‘다른 시간’의 겸허한 수락에 대한 경지를 발견했다.'”라며 축하했다. 시집이 팔리기 어려운 시대, 겨우 수천부 팔려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이때, 수 백만 부의 누적판매고를 이루고 평단의 호평까지 받는 그는 “덤덤하지만 온 삶으로 시를 썼고 또한 쓰겠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늦은 오후 인생이 저무는 노년 시인의 삶에 대한 덤덤한 고백의 시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는 그의 역사가 총알총알 막혀 있었다.

시는 머리로도, 손끝으로도, 가슴으로도 쓸 수 있어요. 그게 그릇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은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가면서 시를 써라.’고 말했죠. 저도 그러려고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인생의 다섯시(가장 높은 해가 뜬 쨍쨍한 날이 지나 저무는 시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가끔은 너무 솔직하게 써서 발가벗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생을 다 던져서 쓰는 시가 아니고서야 저를 오롯이 드러내기 어렵다고 생각되어서 저를 그렇게 기록해나가려고 합니다.

시를 향한 입성기, 그 어린 기억의 조각

도종환 시인은 어린 시절 생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밥벌이를 하는 아버지와 어머지를 가장의 역할을 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몇 안된다고 말했다. 그 중 가장 또렷한 것은 꽃밭 소풍이다.

어머니께서 꽃밭에 저를 데리고 갔어요. 아마 세네 살 무렵이었죠. 꽃은 누굴 해치거나 어지럽히지 않았고 그 빛깔과 향기가 너무 고와서, 지금까지 그때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가장 어릴 때의 순수함에서 예술에 대한 감각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날은 조성진 마이미스트가 직접 준비한 무대와 공연과 더불어 도종환 시인이 ‘꽃밭’을 낭송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청년기에 대한 기억은 암흑이었다. 하지만, 어지러운 70년대 중반에 그는 내적 성숙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다른 시인은 늦어도 학창 시절에 백일장을 나가는 등 두각을 나타내는데 비해 저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별다른 발표도 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컸죠.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이나 노력보다 “내가 대학을 다닐만한 사람인가?”나 “나는 어떤 사람인가?”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오래했습니다. 등단도 늦었던 게 글쓰기를 늦게 시작한 까닭도 있지만, 처음에 시인이 된다는 생각은 꿈도 안 꿨거든요.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소주를 마셨으며 술에 취해 길가에서 잠을 자던 것이 일상이었던 도종환 시인. 그를 눈여겨 본 한 선배가 ‘예술가의 기질’을 찾아 시문학회에 끌고 들어간 것이 시를 향한 첫 입성이었다. 그러나 입회 몇 년 동안 그는 시 쓰는 것에 대한 이론이나 방법을 전혀 배울 수 없었다.

무조건 많이 읽으라는 거였어요. 먹은 것이 있어야 똥도 나오는 법인데, 여태껏 읽은 시가 없으니 읽고 따라 써보고 느끼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남에게 보여줄 만한 시가 나왔을 때 그제서야 ‘아, 시인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죠.

세 편의 시, 그 아픔과 깨달음

인생의 큰 파도는 알 수 없게 온다고 했지만, 그의 나이 서른 둘은 그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너무나 사랑해 하루도 떨어질 수 없었던 아내를 가슴에 묻은 것이다. 게다가 얼마 있지 않아 학교개혁운동으로 수감된 그는 두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이순인 지금까지의 한탄이라 했다.

국어 선생이었던 도종환 시인은 두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칠 새도 없이 수감되었다. 모든 아이의 교육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에게는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던 그. 어디선가 한글을 배워 “아빠, 보세요.”라며 아이가 보낸 편지를 받은 그는 몇 날 며칠을 울면서 지냈다고 한다. 뾰족한 돌멩이를 주워 감방 벽에 십자가를 긋고 신에게 기도하며 썼다는 시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놓고’는 그 한을 말해주고 있다.

1987년 1백만 부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담긴 그의 시집 <접시꽃 당신>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가슴이 절절한 ‘접시꽃 당신’이나 ‘암병동’ 같은 시는 전국민을 울렸지만 평단에서는 상반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아내의 죽음을 팔아 시를 썼다.’, ‘이건 시가 아니다.’, ‘시 이전의 시다.’, 별별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시인은 시를 쓸 뿐, 평단에서의 이야기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기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거기서 더 말해봤자 이슈 밖에 안되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디에서든 ‘접시꽃 당신’을 낭송한 적이 없어요. 끝까지 제대로 읽을 자신도 없지만 ‘죽음을 팔았다.’는 말을 듣는 게 편하진 않으니까요.

그는 끝끝내 ‘접시꽃 당신’을 낭독하지 못했다. 그리고 ‘섬’을 읽었다. 그마저도 힘겨워 눈시울을 붉혔다.

사회를 본 김재욱은 콘서트 말미에 ‘담쟁이’에 대해 언급했다. 직장인 3백만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위로 받고 싶은 시 1위에 뽑힌 ‘담쟁이’는 삶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이 담겨있었다.

오랫동안 해오던 교육운동의 해결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포기할까 생각하며 회의 도중 창 밖을 무심히 쳐다봤어요. 학교 옆 건물이 상당히 높았는데 담쟁이 덩굴이 그 높은 곳을 뒤덮고 출렁거리고 있는 거예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우리네 현실과 너무 비슷하더라고요.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 말이에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면, 원하고 바라던 일이 언젠가 기적처럼 이뤄지겠죠.


가수 백자가 곡을 붙여 부른 시가詩歌 ‘담쟁이’처럼 도종환 시인은 누군가의 형, 아버지, 선생님처럼 모두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는 큰 담쟁이 손 같았다. 아, 이제야 알겠다. 왜 우리가 마냥 외롭지만은 않은지. 이런 시인이 있기에 오늘의 귀갓길도 참 따뜻하다.

* 도종환 시인의 북 콘서트 뒷 이야기는 황덕현 기자의 블로그(http://bloglike.me/78)에서 이어집니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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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을 보니 진짜 저 곳에 같이 가 있는 기분이 드네요. 훈훈합니다 ^ㅇ^
  • 이런 기사가 있기에 오늘의 저녁 어스름도 참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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