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연극<잠 못 드는 밤은 없다>의 뒷무대

연극 <잠 못드는 밤은 없다>는 일본의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2008년도 작품으로,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풀어나간다. 히라타 오리자는 담담한 어조로 일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며, 인간의 외로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특히 말레이시아라는 이질적인 공간에 놓인 다양한 일본인의 군상을 보여줌으로써, 소통의 단절과 인간 사이의 고독을 잘 그려내고 있다. 덕분에 작년에 초연한 후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으면서, 2010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것은 물론 2010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기도 했다.

종로에 있는 두산아트센터 건물 지하에 들어서자, 엄숙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검게 칠해진 공간. 바닥엔 동선을 구성하는 형형색색의 테이프가 붙어 있고, 벽면에 둘린 책상엔 대본과 연극 소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자칫 산만해 보이던 연습장은 이내 정리된다. 연습하는 배우가 뿜어내는 엄청난 기(氣)때문에, 시선이 그들에게 정리되었으니.

배우들은 저마다 편안한 복장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가운데에서도 동료 배우가 연습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이혼 여행’을 떠난 부부 연기를 맡은 배우 김주헌의 모습이다. ‘이혼을 기약하는 여행’을 떠나서야
비로소 사이가 좋아지는 캐릭터다. 이처럼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에는 모순된 캐릭터들이 가득하며, 이들이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연극계의 잔뼈가 굵은 중견배우들이 모인 이곳엔 순도 100%의 연기가 펼쳐졌다. 이에 안주하지 못하겠다는 듯 연출가 박근형은 대사의 톤부터 서 있는 포즈까지 디테일한 부분 모두 디렉팅하며 완벽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대본 분석에 한창인 배우들. 좌측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히카루 역의 김동희, 마유미 역의 유나미, 마치다 역의 이호열이다.


배우들의 손을 떠나지 않는 대본. 깨알 같은 메모가 가득하고, 많이 해졌다. 노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배우 정희정 배우과 배우 이영숙의 발. 배우라면 으레 화려한 스타일링을 했을 거란 선입견과 달리 연습장에서의 그들은 맨발이거나 수면양말을 신는 등 오로지 연습에 집중하기 위한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웃도어 열풍은 배우들에게도 불었다. 연습실 한 켠엔 안전모와 등산용 백팩 등이 놓여 있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두산아트센터의 연습장은, 업계에서 가장 쾌적한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연습장엔 샤워실과 탈의실마저 마련되어 있었다. 간단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은 물론 커피 메이커 등도 마련되어 있어, 배우들이 갈증을 느끼지 않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목소리로 소통하는 직업이기 때문일까? 배우들은 실내임에도 저마다 목을 보호하는 듯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으며, 시종일관 음료를 마시며 목소리를 가다듬곤 했다.

2인의 중견배우에게 듣는 <당신의 잠 못드는 밤>

배우 이영숙(치즈코 역)
치즈코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듯 차분하면서 감성적인 목소리로 말한 그녀.

럽젠Q : 맡은 배역에 대해 설명해준다면요?

학창시절엔 왕따 피해자이자, 떠밀려오듯 말레이시아에 오게 되어서 갈등의 단초가 되는 역할이에요. 연기하기에 쉽지 않은 캐릭터죠.

럽젠Q : 이토록 입체적이고 독특한 캐릭터와 어떻게 개인적인 접점을 찾았죠?

어렸을 적엔 몰랐던 소외감과 고독 같은 감정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배우로서 오랜 시간을 살면서, 극 속 캐릭터로 사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현실의 나와 세상 사이가 점점 동떨어지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현실과 역할의 괴리감, 일상의 소외 같은 감정이 정확히 치즈코의 감정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제 속에 깊이 캐릭터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배우 최용민(아키라 역)
수십년 간 연극과 영화계에서 정평나 배우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그.

럽젠Q : <잠 못드는 밤은 없다>라는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원작자인 히라타 오리자 씨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의 작품을 항상 좋아해 왔습니다. 담담하게, 그러나 적확하게 일상을 그려내고 있거든요. 가장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에서 서늘한 ‘진실’을 뽑아내는 탁월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죠.

럽젠Q : 배우 최용민의 삶에서 ‘잠 못드는 밤’으로 점철됐던 시간을 꼽자면 언제인가요?

아주 젊었을 때를 빼고, 대부분 삶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릴 때야 친구들이랑 놀러다니고 속 편하게 살 수 있어서 잠을 잘 잤죠. 배우로 데뷔하고 나서는 항상 고민으로, 잠 못드는 밤의 연속이었죠, 뭐.(웃음)

럽젠Q : 끝으로 럽젠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책을 많이 읽으세요. 어른이라서 그럴듯하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오로지 책 속에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지 정확히 바라보는 젊음이 되어야 합니다!


3시간여의 연습이 끝난 후, 배우와 연출자가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그들은 레드 와인을 나눠 마시며 극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기된 대화 속에 진정성이 담뿍 묻어난다. 기묘하게도 평화로운 열정이었다.

Event
이 뜨거운 안녕인 연습실 기사 때문에 연극 <잠 못드는 밤은 없다>에 귀가 홀깃해진다고요? 요즘 당신이 잠 못드는 이유에 대해 딱 한 가지만 절절하게 써주세요. 잠 못드는 당신에게 왜 연극에서 ‘잠 못드는 밤은 없다.’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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