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 지식인과 남 건축학도의 북촌 탐방기

럽젠 지식인을 담당하는 엄정식 기자와 건축학도인 남우리 기자가 북촌에 떴다. 인문학적으로 해석된 북촌을 향한 다른 시선, 다른 리뷰, 그리고 살찐 지식과 감성들.

강의명 북촌에서 만나는 인문학
강사 서현주, 정다울(인문학 박물관 연구원)
강의 일시 2011년 10월 8일 토요일 오후 2시~5시
강의 장소 인문학 박물관 -> 석정보름 우물터 -> 만해당(한용운 선생 집) -> 인촌 김성수 선생 가옥 -> 북촌 한옥센터 -> 정독 도서관

박물관은 언제나 지정된 장소에만 있어야 한다? 아니다, 박물관은 살아 있어야 한다! 국내 역사와 문화의 노다지인 북촌이 인문학 박물관에 의해 거리 속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북촌을 매번 감성 돋는 상점과 카페가 즐비한 곳으로 치부했던 청춘들에게 날린 “북촌에서 만나는 인문학” 펀치! 럽젠 지식인을 담당하고 있는 엄정식 기자와 건축을 탐닉한 건축학도 남우리 기자가 오감으로 느낀 북촌 탐방 보고서가 지금 시작된다.

*북촌은 종로구 재동, 가회동, 삼청동 등에 있던 마을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 등 지배계층이, 일제 강점기에는 지식인들이 살았던 곳으로 우리의 전근대, 근•현대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북촌 탐방 대원
북촌의 기본 정보 담당
_ 엄정식 기자

북촌은 감성 돋는 카페가 주는 나른한 감성도 좋지만, 인문학적 가치가 듬뿍 느껴지는 지적 충만감도 놓칠 수 없다. 매번 지나치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북촌의 여러 유적지의 이야기를 뿌리겠다.
북촌의 건축 정보 담당
_ 남우리 기자

역사, 문화의 농후한 매력이 짙게 배어 있는 북촌에서 건축에 탐닉한 건축학도의 시각을 보이겠다. 건축을 프레임으로 북촌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니까. .

<북촌에서 만나는 인문학의 코스!>
인문학 박물관 -> 석정보름 우물터-> 만해당(한용운 선생 집)-> 인촌 김성수 선생 가옥-> 북촌 한옥 센터 ->
정독 도서관-> 서울 교육 박물관

Course 1. 근현대사의 만물상, 인문학 박물관


엄정식 기자의 기본 정보 북촌의 역사적 흔적을 추적하기 전, 국내 근 현대사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인문학 박물관’을 먼저 들렀다. 중앙 고등학교 내부에 있는 이곳은 전근대에서 근현대로 변화되는 과정의 다양한 사회상을 총망라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산물인 철도와 백화점, 거주의 변화를 가져온 계량 한옥과 아파트, 도시화와 농촌의 변화상, 노동, 교육, 문화, 예술, 종교, 미디어, 일제 강점기 시대의 사회상 등을 간결하게 훑어볼 수 있다.

남우리 기자의 건축 정보 건축을 처음 접할 때 그 건축물의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첫 번째 포인트는 바로 재질이다. 인문학 박물관에선 초기 근현대 건축물에 주로 쓰인 다양한 재료를 동시대의 물품과 함께 전시해 당시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어 눈여겨본다면 근대 탐방의 좋은 첫걸음이 될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곳의 인테리어 역시 당시 시대의 주요 색깔만으로 연출되어 있어 한 바퀴 도는 동안 방문객은 이미 그 시대로 흠뻑 빠져버리게 된다는 사실! 문살 하나까지도 실제와 유사하게 제작된 건축 모형을 보는 재미는 덤이다.

<인문학 박물관에서 북촌의 근대 건축물 미리 엿보기>

건축물이 일본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최초의 흔적인 이층집. 부유와 권력의 상징인 이 집의 형태는,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다는 효율성 때문에 빠르게 인기를 얻었지만, 결과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우리나라의 온돌 방식 그대로를 유지한 까닭에, 층 높이와 창문 크기 등 사람이 편리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도시형 한옥’의 첫 등장이다. 북촌 내 ‘만해당’이 현재 가장 오래된 도시형 한옥이다. 넓은 마당을 포기하고 한옥 자체를 집단 주거의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보통 2~3집이 마당 하나를 공유하는 네모 자의 구조다.

 


겉보기에 비슷한 근대 시기의 한옥과 양옥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굴뚝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 굴뚝의 흔적은 사람의 식습관과 냉난방 시스템의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알려주는 단서다.

 
Course 2. 민족의 뜨거운 피가 샘솟는 중앙 고등학교


엄정식 기자의 기본 정보 인문학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온 뒤의 중앙 고등학교. 이곳은 3∙1운동의 태동지로 그 역사적 의의가 깊다. 1919년 1월, 동경 유학생이었던 송계백은 당시 중앙고보(중앙고교) 숙직실로 교사 현상윤, 교장 송진우에게 동경 유학생들의 거사 계획을 알리고,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하였다. 뒤이어 송계백은 유학생의 독립선언문을 손병희에게 전달한 후, 이때부터 천도교가 중심이 된 3∙1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또 3∙1운동 이후 대중적 반일 투쟁 운동이었던 6.10 만세운동에도 중앙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 1926년 마지막 황제인 융희황제(순종)의 인산일인 6월 10일 단성사 앞에서 중앙고보생 수십 명의 학생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빼앗긴 주권을 찾기 위해 절규하였다. 가혹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에 맞선 반일투쟁에, 학생의 신분으로 당당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던 그들이 놀랍고 자랑스럽다.

남우리 기자의 건축 정보 중앙 고등학교가 어디에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다면? 그곳은 바로 고려대학교다. 고려대학교와 중앙 고등학교는 모두 건축가 박동진에 의해 지어진 고딕식 건축물로, 석고와 콘크리트로 지어진 뾰족한 첨탑이 특징이다. 일제 강점기에 최초로 민족 자본으로 지어진 학교 건물이라니, 이를 세울 당시의 노력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일본보다는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 디자인되어, 전통 한옥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지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자부심을 주는 건물이기도 하다.

Course 3. 님에 대한 한이 서린, 한용운 선생집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엄정식 기자의 기본 정보 조국으로 상징되는 ‘님’. 그가 열망했던 ‘님’과의 만남 즉, 조국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한 구절이 애절하게 다가온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고 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의 깨달음을 통해 조국은 일제 통치에 있지만 국권 회복을 열망한다는 뜨거운 마음을 내비쳤다. 역설과 상징, 은유가 적절히 녹아든 위대한 작품을 통해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는 그의 또 다른 흔적을 이 만해당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한용운 선생은 이곳에서 지난 1918년 4월부터 1919년 2월까지 거주했고, 그 기간 불교 월간지 <유심>을 발간하며 3∙1운동에 불교계의 참여를 결정했다. 문화재청은 2003년도에야 비로소 이곳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했고, 현재 종로 일대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우리 고유의 생활 풍습과 문화를 익히는데 도움을 주는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고 있다.

남우리 기자의 건축 정보 만해당은 앞서 말한 ‘도시형 한옥’의 대표적인 예다.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된다니, 어찌 보면 제 역할을 찾은 셈. 하나의 대문과 하나의 마당을 공유한 상태로 2~3집이 함께 쓰는 구조인데, 그 쓰임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도시형 한옥이 생긴 유래에 맞게 공간의 효율성을 위해 서민들이 함께 쓰거나 양반이 거대한 식솔과 하인과 함께 사는 용이다. 두 가옥은 대문으로 분류할 수 있다. 화려한 금속 장식은 만해당이 단순한 도시형 한옥은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인다.

 
Course 4. 유서 깊은 가옥, 인촌 김성수 선생의 옛집

엄정식 기자의 기본 정보 잔디밭이 드넓은, 드라마에나 등장할법한 재벌가의 한옥을 직접 눈으로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은 바로 인촌 김성수 선생의 옛집으로, 재단법인 인촌 기념회에서 2,975㎡(약 900평) 부지의 생가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 김성수(1891~1955) 선생은 중앙고보의 주인이며, 경성방직과 동아일보, 그리고 고려대학교를 세운 인물이다. 그의 거처는 3∙1운동을 위해 기독교, 천도교계, 불교계가 규합을 합의했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김성수 선생의 옛집에는 김성수 부자가 살았던 옛 모습이 사진으로 간직되어 있는데, 넓은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고양이와 토끼, 닭 등을 볼 수 있다.

남우리 기자의 건축 정보 예부터 관직이 높으면 위에 있어야 직성이 풀렸나 보다. 현재 부자들이 넓은 집에 비싼 가구를 들이듯 당시엔 높은 단 위에 집을 지음으로써 부를 과시했다. 사극에서도 언제나 왕은 높디높은 계단에서 내려와 예쁜 궁녀를 보기 위해 마실을 나가지 않던가?


층높이가 높을수록 겨울에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기 어려운 법. 불을 때는 곳과 방바닥 높이의 차가 커서 그만큼 나무를 더 많이 넣어야 한다. 비싼 집이 유지비 역시 비싼 지금과 비슷한 논리다. 곧 근대 문물이 점차 들어오면서 문화의 충돌이 일어난 모습도 많이 보이는데, 계단 위 사자 상이나 집 옆 잔디밭 등이 그 단적인 예다.

Course 5. 북촌 여행의 기본기, 북촌문화센터

엄정식 기자의 기본 정보 일반적인 북촌 여행을 계획했을 때 가정 먼저 들려야 할 북촌 문화 센터. 이곳에선 북촌에 관련된 배경 지식과 함께 한옥의 아름다움을 맛볼 기회가 있다. 북촌의 역사적 가치, 북촌의 풍수지리, 한옥을 짓는 과정과 한옥의 구조 등 한옥에 대한 지식과 북촌 600년 세월의 발자취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본래 조서 말기 세도가였던 ‘민재무관댁’이었던 이곳은 ‘계동마님댁’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남우리 기자의 건축 정보 북촌 문화 센터는 한옥의 ‘정석’을 보여주는 선물이다. 근대의 흐름에서 벗어나 잠시 전통의 품에 안겨보는 것은 어떨지. 전통 가옥에서 흔히 보이는 층높이 낮은 계단과 좁은 간격의 창틀, 나무로 만들어진 네모난 기둥이 한눈에 보인다. 남녀의 공간을 엄격히 구별해 놓았던 만큼 들어서자마자 입구는 사랑채, 내부는 안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사이의 훼방(!) 주인공은 일반 남성의 키보다 작은 담이다.

 
Course 6. 굶주린 자의 지식감성 충천소, 정독 도서관


엄정식 기자의 기본 정보 정독도서관의 하얀 벽은 마치 그리스 산토리노의 건물을 연상시킨다. 하얀 도서관 외벽에 기대에 하얀 책장을 넘기면, 저절로 책 속 세상에 빠져들 것만 같다. 연인의 데이트 장소이자 지식 감성 충전소로 사랑받는 정독 도서관은 원래 경기고등학교 건물이었다. 이후 경기 고등학교의 운명은 강남으로 넘어가게 된다. 지난 1970년대 서울의 다핵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강남이 개발되면서, 강북에 편재된 학교를 강남으로 이전시키겠다는 정부 계획하에 경기 고등학교가 강남의 삼성동으로 이전하게 된 것. 하지만 서울시는 이 교사를 허물지 않고 개수하여 지금의 정독 도서관을 만들었다. 1977년 1월에 문을 연 정독 도서관은 50만여 권의 장서와 1만 7천여 점의 자료를 소장한 시립 공공 도서관으로, 매달 서너 차례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 및 영화 상영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 중 상당수가 노년층이기 때문에 연령대를 고려해 족보의 종류와 족보를 보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족보실도 운영하고 있다.
남우리 기자의 건축 정보 화동 구 경기고등학교로서 당시 최신식 장비로 만들어진 학교 건물이지만, 중앙 고등학교나 고려 대학교의 화려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장식적인 요소가 최대한 배제된 까닭은, 일본 건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 일본 건축은 1950년도부터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였다.

 
Course7 왕가의 종친 관계 일을 맡았던,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엄정식 기자의 기본 정보 실제로 무슨 용도의 건물이었을지 궁금한, 정독 도서관 옆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이곳은 왕가의 종친 관계 일을 맡던 조선 시대 관청 중 하나다. 국왕의 족보와 초상화,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는 일도 담당했다. 왕가, 종실, 제군의 계급과 벼슬을 주는 인사 문제 및 서로의 실랑이 등에 대한 문제를 의논하고 처리하는 일도 했다. 여기서 종친은 임금의 정식 부인에게서 난 자손을 4대손까지, 후궁에게서 난 자손은 3대손까지 종친으로 대우하였다.
고종 때 중건된 종친부 건물은 종로구 소격동 기무사 터 뒤편에 경근당과 옥첩당 등이 남아 있었으나 1981년 신군부 집권 당시 보안사가 테니스장을 닦는 과정에서 정독도서관 구내로 철거 이전했다. 이후 소격동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세우게 된 것. 건립에 앞서 시행된 발굴조사에서 종친부의 기단석, 석열, 적심석 등의 유구가 거의 원형대로 발굴됨에 따라 종친부 건물의 원형 이전 복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국립 현대 미술관의 건립과 종친부 복원으로 현대와 근대, 전통이 조화되는 공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남우리 기자의 건축 정보 경근당과 옥첩당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곡선과 직선의 조화다. 이는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데, 기와의 곡선과 기둥의 직선이 충돌 없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사실 이 조화의 비결은 기둥의 디자인. 가까이 다가가서 관찰하면 기둥이 일자가 아닌 가운데가 살짝 볼록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착시현상 때문에 멀리서 볼 때 가운데가 잘록해 보이는 현상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한 것. 대부분 거대한 전통 한옥은 기둥이 이런 방법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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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기자, 황태진 정말 감사해요^^ 북촌은 정말 매력적인 곳 같아요 ㅋ
    @ 똘끼충만 이번년도에 언제 열릴지 모르니 인문학 박물관에 한번 문의해보세요^^
    @ 감사해요^ㅇ^ 좋은 기사로 좋은 정보 많이 전달할께요~
  • 으와!! 이런기사 정말 좋아요^^
  • 우왕~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네요.
  • 황태진

    건축에 대한 궁금증과 상식을 재미나게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원래 저거 저도 갔어야 하는데 통 아무도 절 불러주지 않더군요 ,, 흑흑 정독도서관 가보고 싶어요 ! 두기자님 수고하셨어요 헤헤
  • 남우리

    다니는 동안 급격한 더움과 배고픔(!)으로 몸을 끌고 다니긴 했지만 정말 유익한 강의였습니다! ^^ 겨울에는 추워서 진행이 되지 않지만 매년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니, 관심있으신 분은 꼭 한번 다녀오세요 ^^ 두 시간 조금 넘게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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