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훈┃ 책과 세상, 그리고 글과 삶에 대한 ‘김훈’법

강의명 김훈 작가와 함께하는 ‘내 젊은 날의 숲’
강사명 김훈
강의 일시 2011년 1월 27일
강의 장소 국립 수목원 강당

두꺼운 점퍼와 장갑을 비웃기라도 하듯 칼바람이 파고들던 어느 날. 40여 명의 사람을 태운 버스는 국립 수목원으로 향했다. 그 추운 날에 이처럼 북쪽으로 간 까닭은 겨울의 정취를 말없이 간직하고 있는 숲과 꽃, 그리고 작가 김훈 때문이었다.

지난 1월, 김훈은 그의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 출간을 기념해 그 소설의 바탕이 된 국립 수목원을 독자와 함께 탐방했다. 일정상 30분으로 예정되어 있던 강연회는 어느새 훌쩍 한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그를 궁금해하는 독자의 다각적인 질문공세와 이에 맞서는 그의 진중한 태도 때문이었다. 오고 가는 공방 속에 그의 책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가 쏟아졌고, 덕분에 귀한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었다. 책과 세상, 그리고 글과 삶에 대한 3가지 ‘김훈’법, 지금 시작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법 _ 과학적인 태도로 본질을 직시한다

흔히 김훈의 문장을 일컬어, ‘미문(美文)’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미사여구나 화려한 수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는 주어와 서술어로, 툭툭 던질 뿐이다. 이런 간결함은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한 그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습관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에 가까웠다.

저는 우리나라 젊은이가 자기 현실과 인생, 사회를 보는 태도가 좀 더 과학적이기를 바랍니다. 이념이나 정서, 혹은 감성, 미의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죠.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왜 이런가, 이것과 저것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이런 것에 질문을 제기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단순히 ‘이것이 내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가, 추한가.’ 이는 정서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죠

그는 정서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태도에 는 달랐다. 그는 나지막하지만, 분명히 말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그만 거두라고

정치적으로 보는 것은 다릅니다. ‘이 사람은 내 편인가, 내 적인가.’ 그것은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왜곡된 것이죠. 우리는 숲이나 곤충을 볼 때에도 그 본연의 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이야기 했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었다.

책과 마주하는 법 _ 답은 그 안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책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는다. 연초면 ‘올해 읽어야 할 책 50권’, ‘죽기 전에 읽어야 할 문학 100선’ 등의 문구가 서점에 나붙고, 연말이면 각 도서관에서 올해의 우수 독서상을 뽑아 도서 상품권을 수여하기도 한다. 독서의 가치와 효용성은 만고의 진리가 되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의문을 던진다. 누구보다 지독하게 책을 읽었고, 책으로 ‘밥벌이’를 하는 그가 말이다.

저는 책을 아주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랬음에도,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책을 읽는다고 인격이 완성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만 지식이 조금 늘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지금의 젊은이가 어떤 책을 읽느냐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 친구의 얼굴을 봤을 때 그 친구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스스로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무 하나를 봤을 때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른 나무와 어떻게 다른지, 그 나무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가진 것인지를 아는 사람. 책을 읽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책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그는 책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에서 찾은 가치를 진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에 읽은 유희(柳僖) 선생의 글에서 말하길, 공자의 책을 읽고서 그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인간이 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저를 보고 하는 이야기 같았어요.(웃음) 저는 공자의 책을 평생 읽어도, 읽기 전과 똑같아요. 실천이 없으면 책을 읽어도 별 도리가 없죠.

글과 삶에 대처하는 법 _ 끝없는 ‘답답함’으로 치열하게 응시한다

일상적인 사건을 생경하게 풀어내는 그의 문장은 특유의 문체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한 꺼풀 벗겨내면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가 뒷받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작가 지망생은 김훈에게 묻는다. 사물을 보거나 글을 쓸 때 어디에서 영감을 얻느냐고.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에게 영감 같은 것은 없었다.”

나무나 자연을 보면 어떤 느낌이 있는데 그것이 영감은 아닐 거에요. 그 느낌이 뭐냐고 묻는다면, ‘답답함’이죠. 저것이 무엇인지 내가 모르고, 저것의 내면을 내가 모른다는 그 답답함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꾸 들여다보고, 책도 보는 거죠. 그것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노동에 의해 써요. 소설을 쓴다는 나의 한없이 잔혹한 노동. 어떤 영감에 의해 쓰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이들은 사물과 삶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에 대해 ‘허무주의’라고 말한다. 그는 인정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허무주의’라고 밖에 규정할 수 없는 사회, 너는 어느 쪽이냐고 끝없이 묻는 사회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의 정돈된 시선과 논리의 틀로 들여다보잖아요. 그리고 해석해 내잖아요. 평가하고. 각자 나름대로 정돈된 틀이 있어요. 인간은 그 틀에 의해서 진보나 보수가 되고, 허무주의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념의 틀이 있으니까. 그런데 잘 정돈된 틀로 이 세상을 해석하고 들여다보는 것은, 저는 인류의 오래된 질병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에는 약이 없어요. 거기서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저는 이 세상은 정돈된 하나의 틀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물 하나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고, 그것을 치열하게 글로 표현하는 작가 김훈. 일상에 대한 끝없는 답답함이 그의 문장을 만들었듯 우리도 어떤 벽에 부딪혔을 때, 그 답답함을 피해 돌아가기보다는 똑바로 마주해보자. 유려한 문장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찾는 답에 대한 실마리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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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진 기자. 그래서인지 김훈 작가는 수목원의 홍보대사이기도 하지요.
  • 으헣

    아직도 손글씨를 고집하신다는 김훈 선생님, 왠지 수목원의 이미지와 잘 맞는 느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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