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학문이 침투한 대학, 솎아내기

“위기다!” 지난해 여기저기 매체와 대자보를 물들였던 섬뜩한 표현의 주인공, 바로 인문학이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거친 땅에서 피어난 한 줄기 새싹처럼 인문학은 기초학문으로의 소양, 기술과 감성의 결합, 스토리텔링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인문학의 봄날, 과연 올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학(大學)’의 의미가 모호하다. 현재의 대학을 다양한 학문에 대한 고민과 지적 단련을 일삼는 신성한 교육의 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업화가 된 현실 가운데 돈 되는 일에만 몰두하는 대학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우리의 대학은 풀기 어려운 위기와 함께 진통을 겪고 있다.

다양성보다 효율성이 범벅된 지금의 대학

요즘 대학에서는 효율성, 실용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09년부터 ‘학과 통폐합’에 나선 중앙대학교가 대표적인 사례. 중앙대는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를 합쳐 77개였던 학과를 44개의 학과 또는 학부로 개편하는 유례없는 통폐합을 단행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같은 학과 통폐합은 두산 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박용성 두산 중공업 회장이 중앙대의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되었다. 박 이사장은 학과명만 그럴듯하게 바꾸는 신장개업식 변화를 비판하며 대학을 처음부터 백지상태에 그리겠다는 입장을 폈고, “대학경영도 기업경영과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기업에서나 일어날 법한 대대적 구조조정이 대학에서 일어나자 해당 학생들과 교수들은 학교 측의 강제적인 통폐합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통폐합에 반대한다는 대자보들이 캠퍼스 곳곳에 내걸리고 노영수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고공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앙대는 구조조정에 반대 의사를 표한 이들에게 퇴학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학교측의 조치에 반발한 이들은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4일 법원에서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편 건국대학교는 2008년 EU문화정보학과, 히브리•중동학과 등이 비인기학과라는 이유로 폐지하고, 두 학과를 문화콘텐츠 학과로 편입시킨다고 발표했다. 해당 학생들은 3천여 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통폐합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고, 학과 이름이 적힌 관을 준비하여 장례식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통폐합은 단행되었고, 학생들은 문화콘텐츠 학과로 소속 학과를 옮겨야 했다. 학교 측에서는 이들이 문화콘텐츠 학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일련의 조치를 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윤범식(건국대 문화콘텐츠 학과 10학번)은 “학과 측에서 문화콘텐츠 학과 학생들과 편입된 학생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같은 학생회실을 쓰게 하는 등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실제 교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학이 효율성만 따지며 비인기학과들을 없애면 결국 더 큰 비효율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우려의 말을 덧붙였다.

이러한 학과 통폐합은 다른 대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경원대 역시 비인기학과라는 이유로 역사•철학부를 폐지했고, 동국대의 경우 아예 과별 평가를 통해 비인기학과의 정원을 줄이고 학과 자체를 없애는 ‘플렉서블 정원제’를 실시했다. 이에 따라 동국대 독어독문학과는 2010년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기로 했다. 단국대에서도 독어독문학과가 폐지됐고, 대구 가톨릭대에서는 철학과, 불문학과, 독문학과, 이탈리어과 등 3개 인문학과의 학생 모집을 중단하기로 했다. 해당 학과 학생들의 입장에선 ‘정든 우리 과의 대가 끊긴’ 꼴이다.’

실용 위주의 대학, ‘진짜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까?

요즘 학생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학과는 단연 경영학과다. 로스쿨 설립으로 법대가 사라지면서 경영대가 인문계 간판학과로 자리 잡았다. 연세대, 고려대 등에서 경영대학이 인문계 최상위권 수험생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학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영대 선호현상은 대학 내에서도 나타난다. 2009년 6월에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포털 사이트 커리어가 복수전공을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인 9백12명의 대학생 가운데 경제ㆍ경영학 등 상경 계열을 선택한 이들이 50%를 차지했다. 상경 계열을 선택한 이유로는 취업에 유리할 것 같다는 응답이 35.5%로 가장 높았다. 현재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박준혁(경희대 언론정보학 05학번)은 “아직 구체적인 진로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진로를 결정할 때 아무래도 경영학을 전공하는 것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 선택했다.”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대학교육의 목표 중 하나가 사회를 이끌어나갈 인재양성에 있다는 점에서 실용 학문은 필요하다. 졸업 후 사회에 나가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배양하는 것은 국가적인 측면에서나 학생 개인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또한 회계, 경영과 같은 개념은 취업뿐만 아니라 향후 인생을 설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실용학문 위주의 교육을 현재 사회전반에 만연해 있는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박종남 대한상의 상무는 ‘기업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 신입사원 재교육을 하고 있지만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재교육 비용은 기업에 큰 부담일 뿐 아니라 재교육 비용의 증가는 자칫 청년취업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효율적인 인재양성을 위한 기업과 대학 간의 긴밀한 협력과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요구로 요즘 대학에서는 기업과 산∙학 협력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이에 전폭적인 지원을 쏟는 경우를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재교육이 거의 필요치 않은 ‘맞춤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홍익대 불문학과 진형준 교수는 “대학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 대학의 학과나 커리큘럼이 사회변화에 따라 즉각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대학에서는 기능 인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어떤 기능도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인력, 기능과 함께 비전을 가진 인력, 그런 인력을 동시에 키울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학이 기업을 따라가서는 인문학 또한 미래가 없다. 대학이 사회와 기업을 이끄는 형태가 되어야 진정으로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이 될 수 있다. 사회가 변화면 대학도 이에 따라 변한다는 생각 대신 대학이 변해야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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