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 교수┃소문난 괴짜의 평범한 강의론

뜬구름 같은 소문이 표류했다. 경희대학교 경제학과에는 ‘괴짜’ 교수가 있다고. 지긋한 연세임에도 어울리지 않는 단발머리 헤어스타일과 독특한 패션 같은 외향적인 것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경제학 강의라고 하기엔 심히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것은 물론, 무감독으로 무려 3시간이나 치러지는 시험 문제는 ‘너의 뇌는 누구의 것인가?’, ‘당신은 부유한가?’ 등 학생의 혼을 쏙 빼놓는 주제들로 점철된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그를 ‘괴짜 교수’라는 낙인을 찍게 된 명백한 증거였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소문에 종지부를 찍듯 ‘평범한 나의 무엇을 기사로 쓰려고 하느냐.’라고 잘라 말했다. ‘그저 학생과 좀 더 소통하려는 교육자의 당연한 책임인데•••.’라는 그 앞에서 물어본 입이 되려 송구스러웠다.

최근 대학 시험의 문제는 점차 ‘학점의 공신력’이 중요해지면서 정답과 오답을 명확히 가릴 수 있는, 객관화된 성격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 가운데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박현 교수의 시험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그가 특이한 노선을 선택했다기보다 이런 강단의 흐름이 한몫했다. 하지만, 결정타는 무엇보다도 그가 생각한 시험의 정의다. ‘학생과 교수가 대화하는 창구’인 시험을 통해 그는 학생의 창의력과 분석력을 엿볼 수 있는 문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 그가 다른 과목에 비해 객관적이지 않은 시험 결과에 불만을 품은 학생이 찾아오면 ‘글로 자신을 설득 못했지만, 억울하다면 말로 나를 설득해봐라.’라고 자리를 권하기까지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쯤 되면 그의 강의는 학생에게 넘지 못할 허들쯤으로 간주할 법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학생은 그의 강의에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바로 학생은 지식의 ‘무조건적인 암기’보다 그가 지휘하는 ‘이성적인 이해’를 존중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강의가 특별하다.’는 말 속에 숨은 ‘강의에 정답이 있다.’라는 전제

그는 어떤 뚜렷한 신념으로 색다른 노선을 추구한 건 아니었다. 쇼맨십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그에게 시험의 의미가 중요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는 명백한 지론이었다. 한 교수당 맡게 되는 학생의 수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그에게 시험은 학생 한 명과 제재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었노라고.

학생이 각자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무엇에 관심 있는지 알게 되면 자연스레 수업의 방식도 바뀝니다. 분명히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한 부분이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커뮤니케이션’은 학생의 이해를 돕는 큰 자산입니다. 학생 역시 일반적인 암기식의 지식을 묻는 시험이 아니란 걸 알면, 수업에 임하는 태도 역시 분명히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학생들을 좀 더 이해하며 가르치고 싶다.’라는 그의 열정은 시험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그를 통해 강의 방식까지 바뀌었다. 그만의 색깔은 10년간의 내공에 의해 농도가 짙어지고, 이젠 허풍을 떠는 특이함이 아닌 그만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제 강의가 특이하다는 말을 하는데, 저는 아주 평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강의를 미국이나 유럽의 강의와 비교해도 특이하다는 말을 할까요?

우리 사회는 주입식 고등 교육이 나쁘다고 말한다. 으레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가면 진정한 지성인으로 거듭나게 할 창의적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대학생이 되고는, 어느새 스스로 자신의 머릿속에 ‘레포트 2번, 시험 2번, 조발표 1번, 팝 퀴즈 3번’ 같은 강의의 타성에 젖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정작 필요했던 창의적 강의를 가혹하게 밀어내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배우는 능력’을 가르치는 대학은, 안.될.까

그는 학생들이 강의를 통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지식 자체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살다 보면 너무나 다양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고 열변한다. 결국 대학의 과제는 지식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봅시다. 영화학도 3~4명이 모여 영화 이야기를 한다면, 예전엔 최고의 화두가 바로 지식이었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죠. 하지만 이젠 그들이 앉은 테이블에 스마트 폰 몇 개가 놓여 있다고 했을 때 정보는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점점 갈수록 다방면에서 지식보다 분석력과 핵심을 꿰뚫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인생에 필요한 지식을 모두 배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겠죠. 대학에서는 개개인이 ‘새로운 것을 능동적으로 접하는 능력’을 가르쳐야 합니다.

실제로 그가 가르치는 과목은 경제학임에도, 그의 강의는 용어 이해와 분석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용 없이 외부 환경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물이라는 ‘외부 효과’라는 경제학 용어를 설명하던 그는 학생들에게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개인의 권리가 어디까지냐.’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는 역사적인 재미난 사실과 일상생활에서 적용해볼 만한 것을 예로 들며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자신의 강의가 특별히 철학적이거나 인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본래 경제학의 근본이 그렇다고 말했다. 어떤 학문이든 인간세계를 탐구하는 뿌리를 갖고 있다고.

‘실용 학문’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 학문의 장단점이 있지요. 하지만 법학과에서 법률 조항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법의 본질과 분석력을 키워주듯, 모든 학문의 실용성 이면에 있는 부분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에서 학생들이 회계를 할 줄 아는가를 중요하게 본다고 해서 회계를 가르치지 않는 학과가 질이 낮은 학과라는 오명을 쓰면 안된다는 지론. 그는 실력이라는 말에 취해 지식이 주는 당장 실용성만을 강조하게 된 학생을 안타까워했다.

당신을 쑤시고 찌르는 강의에 매료되라

박현 교수는 ‘괴짜’라는 말 자체를 거부하는 것보다 다른 교수와 다르다고 못 박는 대학생의 고루한 강의 습관에 슬퍼했다. 보편적 대학 강의의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저는 물론 교육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지식을 쌓은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50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용할 능력을 4년간의 대학 생활 동안 집중적으로 배운다면, 한 학기 동안 그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의 책임이 너무나도 막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는 다른 사람이 말하듯 절대로 쇼맨십이 많은 사람은 아닙니다. 단지 한 학기 학생들이 저에게 할애한 45시간에 대한 책임감을 생각하면, 좀 더 모든 학생이 뭔가를 얻어갈 수 있도록 소통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요즘 들어 자신의 강의가 혹여 고작 한 번의 자극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학생의 창의성과 분석력을 키우기 위해 마구 들쑤시고 찌르는 자극이 4년 내내 계속된다면 좋으련만, 고작 한 학기이니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투표하라.’라는 말 많이 하죠. 식상한 말 같겠지만, 투표는 정말 중요합니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그 정도의 대우 밖에 받질 못하기 때문이죠. 물론 학생들이 대외 활동이다, 공모전이다, 영어학원이다••• 바쁜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소위 ‘널널한’ 강의나 점수를 잘 주는 강의 같은 것만 계속 선택한다면, 결국 강단에 남아 있는 강의는 이런 류일 뿐일 거예요. 당신이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고작 그 정도가 되겠지요. 인생을 넓게 보고, 직접 당신에게 ‘틀렸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강의를 사랑하세요.

그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4년간의 대학 생활을 사랑했다. 그만큼 그의 강의는 우리가 스스로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한다. 이런 기본 전제하에 그는 학생과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한다.
과연 우리는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얼마나 내어 뒀을까? 만일 이런 경험이 없다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그의 말을 한번 믿어보는 건 어떨까? 만일 그 상대가 박현 교수라면, 진로나 취업에 관한 이야기보다 자신만의 재밌는 이야기 보따리는 준비하길 바란다. 그가 당신과 나누고 싶은 것은 분명히 대화일 테니까.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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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하버드대 '정의' 강연을 보는데, 재미있었던 점이 수업의 절반 이상을 학생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진행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과연 우리 대학에서 똑같은 강연을 했을 때, 똑같은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기사를 보니 박현 교수님처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시는 분들이 좀 더 많아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 N

    @mr_lee335 저도 기사 때문에 한번 강의에 참관해본거였지만, 정말 '스토리가 있는 강의'를 만나게 되니 신선했어요. 지식을 암기하는 학생을 벗어나 사유를 가진 '예비지식인'으로써 존중받는 느낌이랄까요? 본래 강의란 이런 것이어야 하는데... 학점과 시간에 쫓겨 '편한'강의만을 선택하다보면 결국 그런 강의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더 와닿았어요
  • mr_lee335

    헉... 박현교수님 얘기 경제학과 다녔던 기억이 얼핏 나네요.... ㅎㅎㅎㅎㅎ 이런분이셨구나....오성윤기자님덕분에 반갑게 기사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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