럽젠톱텐 _ 시간대별 맞춤 영화 유랑 2


어딘가로 떠나는 건 꼭 몸만이 아니다. 럽젠 기자가 엄선의 엄선을 거듭한, 시간대별로 유랑하기 좋은 영화 10선

눈발 날리는 창가는 기말 고사를 치른 하굣길처럼 시립니다. 럽젠에서 추천하는 책과 음악, 영화 시리즈가 여러분의 가슴을 앗아 감성을 흔들어놓습니다. – 편집자 주



영화 <인셉션>으로 전 세계의 상상력을 불태웠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주목받지 못한 시절에 만든 영화. 알래스카의 외딴 마을에서 해가 지지 않는 백야(Midnight Sun) 기간이 계속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엮었다. 쓰레기처리장에서 17세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살인보다 완벽한 음모가 존재하고, 희뿌연 안개 속 범인은 사라지면서 숨막히는 두뇌싸움이 그려진다. 알 파치노, 로빈 윌리엄스가 펼치는 연기대결이 압권이다. 늦은 밤, 백야 속에서 몽롱한 느낌과 함께 으스스한 한기를 느껴볼 것

불면증에 걸려 종일 깨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던 상상이 영화 속에서 일어난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충격으로 잠을 못 이루다가 야간에 24시간 마트에서 일하기 시작한 주인공 벤. 그곳에서 그는 무료함을 달래는 수단으로 시간이 멈추는 상상력을 동원한다. <캐쉬백>은 시간의 흐름에 관해 다룬 영화다.
사람들은 누구나 24시간을 똑같이 살아가지만, 각자 다르게 시간을 느낀다. 대부분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해진 일과를 보내고 나면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기 마련. 하지만, 밤의 존재는 사람을 각성시키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 1분 1초 자신의 속내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이 시간, 영화 <캐쉬백>을 통해 숨겨진 진실한 감정을 꺼내보는 것이 어떨까.


겨울방학. 밤새 게임을 하고 미드를 보다가 동틀 무렵 잠들어서 일어나보니 해가 지고 있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다 저녁 같은 아침을 먹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오늘을 ‘안 씻고 안 나가는 날’로 정하고는 한없이 늘어질 생각에 흐뭇한 어느 날, 인터넷을 조금 했을 뿐인데 벌써 9시 뉴스가 시작한다. 바로 그때, 자신보다 더 ‘쩌리’ 같은 두 주인공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껴보자.
영화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는 금메달 공동수상에 분노해 싸움을 벌이다 퇴출당한 두 명의 피겨 스케이터가 우여곡절 끝에 세계 최초 남-남 페어로 재기에 도전하면서 펼쳐지는 본격 B급 스토리다. 목숨을 담보로 한 궁극(?)의 기술을 연마하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좌충우돌이 일품. 손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으면서 김연아도 보았다는 이 영화에 빠져보자. 윌 페렐의 연기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웃다 보면 또다시 새벽, 게임을 할 시간이 올 테니까.

우리는 부(富)나 노동의 즐거움, 딱 떨어지는 합리적 인간관계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부작용으로 그것이 역차별당하고 있을 뿐이지, 실상 마음의 풍요나 여유, 진실한 인간관계와는 구별되는 그만의 매력을 갖고 있다. 자수성가한 남자가 가난한 가족과 함께하는 ‘다른 인생’을 산 뒤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 뻔한 영화가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감동을 안겨주는 이유는, 영화 곳곳에서 풍기는 과장되지 않은 사람 냄새 때문이다. 가족이 없던 주인공 잭이 사랑스러운 딸과 친구같이 소탈한 아내, 허물없는 옆집 친구 등 다정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 마디마디 후끈거리는 온기를 만날 수 있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먼저 느껴지는 따뜻함이 당신의 외로운 새벽을 채워주리라 기대해도 좋다.


새벽 4시, 그저 말똥말똥 눈만 깨어 있던 기억뿐이다. 불면 속에서 인생에 대한 작은 패배감이 몸서리치는 이 시간, 영화 한 편을 감상하면서 그 모든 기억을 포맷하는 것은 어떨까.
영화 <황무지>는 조금은 꿀꿀하고 바보 같은 젊음과 똑 닮았다. 이만큼 그 어느 4시의 우울을 표방하는 작품이 있을까? 영화는 우발적으로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살해한 어린 연인이 함께 미 대륙의 끝까지 금지된 여행을 하는, 총성과 피로 점철된 스토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종일관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채색되었다. 영 기분 찝찝한 얘기만 늘어놓으면서도 한없이 서정적인 감성의 파도에 굽이치게 한다. 덕분에 정신 나갔다고 치부할 수 있는 두 주인공의 판타지적인 생각과 행동은 무조건적인 공감을 끌어내기도 한다. 두 주인공의 황폐한 영혼과 함께 새벽을 지새워보길. 마음에 축축한 감정이 이는 아침의 해를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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