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인, 미디어 라피스트 김탕을 만나다!



취재를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활짝 열린 현관문 저쪽에서 은은한 재즈 선율이 흘러나온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기에 공개하기 쉽지 않은 집이지만, 누구든지 집으로 초대하는 것을 마다 않는 그. 그의 안식처에서 미디어 라피스트 김탕과의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그의 본명은 김태황.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름의 발음이 어렵다며 김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김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가 걸어온 길은 굉장히 다채롭다. 98년, 미디어 교육 프로젝트 팀 [해모]의 설립부터 시작하여 [다음세대재단]과 [DAUM 미디어 스쿨] 슈퍼바이저(교육가)로, 문화디자인 조직 [플랜B]의 프로듀서로. 또 많은 문화 전시의 기획 작업, 다큐멘터리 촬영, 캘리그라피, 대학과 기업 혹은 단체 강의 등의 작업들 등등 다양한 방면에서 그는 소통의 작업을 거쳐 왔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작업이나 직업 명으로 자신을 규정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무슨 교육에 참가했고, 무슨 학위를 받았고, 무엇을 땄으며, 어떤 직장을 나왔는가가 나를 보여줄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늘 이력서에 ‘1987년 니콘 FM2 구입, 구입 후 첫 출사, 동아 전과 모델이 된 적 있음, 언제 드래곤 볼 독파’ 등등.. 뭐 이런 것들을 썼었어요. 지금의 김탕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그 이후의 작업들은 일종의 사회적인 일들뿐인 거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영상과 사진, 그림과 교육을 넘나드 는 지금의 그가 있게 된 걸까. 그에겐 아주 자연스러 운 일이었단다. 미술반 학생이었던 고등학생 김탕은, 정물을 그리는 계산법이 불편하다고 느꼈다. 똑같이 그릴 거면 차라리 사진을 찍으면 되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 게 사진 찍기였다. 그림을 그릴 때 번뜩이던 관찰력을 카메라에 담게 된 김탕의 관심은 자연스레 ‘이야기’의 또 다른 언어인 영상으로 넘어 갔다. 그렇게 섭렵한 그림, 사진, 영상들은 그의 대학교 시절에 YMCA에서 만났던 청소년들과의 소통 에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것이 ‘미디어 교육가’ 로서의 첫 걸음이었다.

“처음부터 난 ‘내 꿈은 이것이니 이걸 해야만 해’ 하면서 의식적으로 한 게 아니에요. 때마다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된 거죠. 누구나 이 자연스러운 흐름 같은 걸 찾았으면 해요.”

그가 말하는 자연스러움, 그건 ‘찹쌀순대’에서 시작된 ‘캘리그라피(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법)’와도 같다. 그의 집 앞 골목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찹쌀순대를 팔러 오는 노부부 상인의 손맛에 이끌려 몇 번씩 사 먹다 보니 매대에 붙여 있는 ‘찹쌀순대’라는 글씨가 맛에 비해 너무 뒤떨어져 보였단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맛있어 보이는 ‘찹쌀순대’ 단어를 써 드리고 싶어 붓글씨 강의를 듣기 시작한 것이 캘리그라피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이렇듯 그에게 있어 캘리그라피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이다.


대학 시절, 취직에 대한 걱정은 없었냐는 물음에 그는 없었다고 대답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벌어야 했는데, 운 좋게도 취직이 되어서 대학을 다니면서 직장(YMCA)를 다니게 되었다고. 하지만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한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깡이 셌던 전, 직접 어린이 캠프를 기획해 티셔츠디자인부터 프로그램까지 직접 만들어서 기획서를 YMCA총무님께 냈죠. 직접 어린이 캠프를 열어 보고 싶다고. 신기하게도 총무님은 허락해주셨고, 캠프 당일이 되었는데 캠프를 하러 온 아이가 딸랑 두 명이었어요. 그 아이들은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고,그렇게 캠프 실패로 쓴 맛을 본 저를 총무님이 취직시켜주셨죠.”

또한 김탕에게도 쓰라린 나날이 있었다. 멀쩡한 일자리를 박차고 야심 차게 떠났던 유학이 실패로 돌아간 것. 그 후 한국에서 취직을 하려고 열 달 동안 17번의 이력서 를 내 보았으나 번번히 떨어졌다. 다시는 그럴 수 없을 정도로 경제 적으로 어려워졌던 그. 또한 거절 당하는 것에 상처가 깊었던 김탕이 고민 중에 깨달은 것은, 자신을 받아 줄 단체가 이 나라엔 없겠다는 것.

“결국 방법은 내가 만드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 재단의 출연금으로 내가 직접 인천에 청소년 재단 법인을 만들 었어요. TO를 내고 내 연봉을 정해 거기 취직을 해서 2년 정도 일을 했죠. 그 당시엔 나와 팀장 하나만 일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커졌 어요. 2년 후 그곳을 나와 다른 여러 곳에서 일하게 되었죠.”

대학 시절 무턱대고 도전했던 기획의 경험들, 그 창조의 경험들이 훗날의 재단 설립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그. 이후 김탕은 유네스코 에서 운영하는 조직 ‘미지’, ‘다음세대재단’ 등을 거쳐오며, 한 조직 에만 속하지 않는 지금의 문화 작업자가 되었다.

김탕에게 성공이란, 부도 명예도 아닌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란다.

“아침에 일어나서 언제든지 산책할 수 있고,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성공의 한 형태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시간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의 즐거운 시간을 중요시하는, 그래서 그 즐거움을 민감하게 느끼고 포착해 미디어 작업에 투영하는 김탕.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느냐는 물음에, 그는 도시를 떠나 지역에 대학을 세우고 싶다고 답했다.

“흔히 말하는 대학과는 다른, 사는 지혜와, 관계, 그리고 존재 방식을 가르치는 그런 대학을 세우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내게 좀 더 지혜가 뿜어져 나와야 하는데(웃음), 아직은 덜 익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당장 오늘을 살고 싶다는 그. 지나온 직업이나 작업, 자신의 위치에 연연 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소통, 즐거운 일들을 하며 욕심 없이 살아가고 싶다는 김탕. 그의 ‘오늘’에서, 김기자도 ‘살아가는 자세’를 배운다!

글,사진_김애영/15기 학생기자
서울산업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06학번

글,사진_김은아/15기 학생기자
숭실대학교 글로벌미디어학부 07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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