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은 말과 글 미술평론가 반이정


‘초딩’ 필독서라고는 믿기 힘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반이정 씨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일단
외모부터. 부분 염색머리와 노란 아디다스 트랙탑, 무지개떡

빛깔
티셔츠를 받쳐 입은 그의 비주얼은 개성 넘치는 홍대 젊은이

들의 뺨을
후려 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전혀 학구적이지 않은

외모와 달리
그의 직업은 고상한 미술 평론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기둥 칸에도
올라있는<새빨간 미술의 고백>의 저자이자, 한겨레,

씨네21 등 각종
매체를 종횡무진하며 기고하는 전천후 글쟁이다.

황우석 사태가 세상을
뒤집어놓았을 때 홀로 PD수첩 폐지 반대
일인

시위를 하던 젊은이도 그였다.

사실 그는 영문학도였다.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뜻하지 않게 영문과에 들어가 거기서 조형대학

수업을 들었다. 학부를 마치고 군대에 다녀와서는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 입학했다가 1년 만에 서울대학교로 적을 옮겨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그 즈음 그의 나이는 서른을 바라보고 있었고, 집안 사정도 어려워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절박했다. 절박함이 삶의 동력이었다. “학교에서 정말 많이 잤어요. 용돈도 얼마 없었 고, 차비하며 식대가 용돈으로 감당이 안 되니까.책 사는 건 엄두도 못 내고 과에서 제본 하자고 그러면 저 혼자 빠지고, 학교에서 책 빌려다가 줄도 긋고 메모도 하면서 공부했죠.” 사실 그가 기억하는 대학 생활은 팔 할이 ‘열공의 추억’이다. 늘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집에 돌아갔고, 스팀이 들어오지 않는 한겨울 학교에서 스티로폼으로 접이식 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 이불을 덮고 자기도 했다. 그렇게 징그럽게 2년을 공부하고 졸업을 했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2006년 출간한 미술에세이

<새빨간미술의 고백>을 통해서였다.

‘작품의 미학적 성과를 호들갑스레 상찬해 독자를 기죽이지 말 것’,

‘현대 미술의 가장 최신 경향이 반영된 동시대 작품을 소개할 것’,

이 두 가지 다짐으로 쓴 글이 해설가의 난해함에 지치고 동시대 미술에

목말랐던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예술의 진화 속도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따라가지 못해요.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훈련

과 교양이 필요한데, 전문가 그룹은 일반 관객과 현대미술과의 간극을

좁히는 대중적 작업에 확실히 소홀한 경향이 있어요. 오히려 그런 작업을

폄하하기도 하죠.” 그는 일반 관객이 막연하게 품고 있는 예술에 대한

환상이 대개 미디어가 유포한 과장보도와 반복 노출의 결과라고 믿는다.

그런 입에 발린 간교에서 벗어나 독자들이 주눅 들지 않고 ‘사물로서의 작품’을 냉담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그는 오늘도 노란 염색머리가 늘어진 왼쪽 머리를 긁으며 고민 중이다.

‘‘반이정’이라는 이름은 미술전문지 뿐 아니라 신문이나 시사
주간지 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 예술계에 몸담고 있지만 항상 사회에 대한 예민한 관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미술 비평은 사회와 유리될 가능성이 매우 커요.사회현상 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미술에만 매몰돼있을 때 빠질 수 있는 거대한 매너리즘에서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이 었던 거죠.” 그는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길들여지지 않는 시선으로 현상을 보고 매콤하게 쏘아붙인다.

그룹 ‘소녀시대’ 를, “작위적 청순미와 키치적 섹스 상술이 혼재” 돼 있다고 분석하며 (<한겨레> 2008년 10월 21일자 ‘소희, 윤아, 연아’) , 예비 공익수행자인 “고시생의 책상 앞에 곧잘 붙어있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거나,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자’ 따위의 표어” 에서 “사치스럽고 수치스런 사익을 채우려는 이기심” 을 본다. (<한겨레> 2008년 7월 29일자 ‘고시 패션의 악순환’ ) 진보논객 진중권의 전투적 글쓰기와 사뭇 닮아있는 글쓰기에서 그의 정치적 성향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지만, 그는 진보라는 말보다 ‘상식’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그는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를 보혁 갈등이 아니라 다수의 몰상식과 소수의 상식과의 싸움이라고 본다. (물론 이를 몰상식=보수, 상식=진보라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그의 삶을 온전히 지탱 하고 있는 말과 글을 무기 삼아 상식의 편에서 외롭게 싸운다.

반이정 씨는 대학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친다. 요즘 대학생들의 생태를 잘 알고 있으니 해주고 싶은

말도 많다.

“한국 사회가 유포하는 가치관들은 삶을 기형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경제 살리기’ 캐치프레이즈로 정당화 되는 배금주의는 젊은이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물론 돈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죠. 하지만 기본 생계 이상으로 ‘더 잘 살기 위해서’ 삶의 순간적인

재미들을 소외시키는 건 어리석은 거예요.” 그는 대학생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재밌게

살라’고 주문한다. 그러다 보면 생계에 대한 부분은 반드시, 어떻게든 해결이 되기 마련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사람들은 20대에게 ‘88만원 세대’라는 잔인한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그는 우리 세대가 88만원을 받으며 생활하는 것보다 밥그릇과 교환되는 꿈의 안위를 걱정해준다.

아, 진짜 우리 세대가 듣고 싶었던 인문학적 위로다.

글,사진_김수정/14기 학생기자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05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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