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배우는 마음으로 그립니다” 만화가 하일권


늘 배우는 마음으로 그립니다. 만화가 하일권

‘2008 대한민국 만화대상’에서 <삼봉이발소>로 신인상을 받은 하일권을 만나기로 한 금요일 오전 10시, 그 날 그 시각엔 한창 그가 현재 네이버에 연재하고 있는 <3단합체 김창남>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소탈하고 순박한 매력이 폴폴 풍기는 그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진솔함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이다. ‘부천만화산업종합지원센터’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화가 하일권을 만났다.

외모는 더 이상 타고 난 것이 아니다. 누가 당신의 못생긴 외모를 지적했다면, 그렇게 낳아주신 부모님을 원망할 수만은 없다.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던 당신의 탓이고, 적당히 고치지 못했던 당신의 잘못이다. 외모는 경쟁력이다. 얼굴이 예뻐야 당신은 승리할 수 있고, 최후에 웃을 수 있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모두 미인을 강요하는, 미인이 되려 하는 사회.

만화 ‘삼봉이발소’에서 전국은 ‘외모바이러스’에 시름을 앓고 있다.

외모에 대한 극심한 콤플렉스가 트라우마가 돼 미쳐버리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이 없다는

것. 그냥 그렇게 발작을 일으키다 죽게 된다. 주인공 ‘김삼봉’은

그런 외모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역할을 한다. 환자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끄집어 내고, 외모가

아닌 본연의 아름다움을 환자에게 보여주어 치료한다. 어쩌면

‘왕자가 공주를 괴롭히는 악당을 물리치고 그녀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잘산다’는 류의 너무나 뻔한 이야기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전 뻔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어쩌면 제 만화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모든

이야기들은 뻔합니다. 대중들은 손사래를 치지만 사실 그들은

뻔한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단지 저는 그 뻔한 이야기를 저만의

색깔이 묻어나게 그려보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특이한 소재의 뻔한 이야기’랄까. 그런 만화를 그리려 노력합니다. 주인공 삼봉이의 직업을 이발사로 택한 것도 그 때문이죠.”

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이 웹툰은 1,000만 이상의 조회수를 올리며 네티즌을 열광시켰고, 책으로 발간됐다. 그리고 곧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삼봉이발소’는 ‘외모지상주의’, ‘미인 권하는 사회’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하일권 자신은 그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했던 것은 아니다.

“예쁜 사람이면 예쁜 사람대로, 못생긴 사람은 못생긴

사람대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가슴 속에 꼭꼭 눌러와 서로 모른

것이죠. 그냥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근데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방향으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았던 거죠. 독자들께서

그렇게 봐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문화포럼에서 일본의 중견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는 “작가는 이제 존경 받는 지식인으로부터 사랑 받는 캐릭터로 변했다”고 말했다. 대중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작가보다, 독자와 같이 호흡하며 가는 작가를 더 선호하는 요즘의 경향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일권도 작품을 연재하고 나서 그 아래 달리는 댓글들, 자신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독자들의 피드백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림을 그리다 가끔 그만두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지만, 응원의 메시지는 그를 다시 붙들어 주는 힘이 되고 있다. 물론 악성댓글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들을 통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반성하기도 하고, 숨을 고르는 기제로 삼고 있단다. “매화 5천 개가 넘는 댓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어본다”는 그의 대답은, 대중의 반응에 대한 그의 민감도를 더할 나위 없이 보여준다.

“요즘 들어 악성댓글이 더욱 늘어난 듯 합니다. 가끔 작품보다 단지 저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는 댓글들을 볼 때면 기분이 유쾌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 생각하며 달게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 아주 긴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이 특히 기억나는데요. 제 만화에 선정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며, 조목조목 비판하셨는데 그 후로 그림 그릴 때 더욱 조심스럽게, 깊이 생각하며 그리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

엄청 심각한 문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혹은, 심각하게

평생을 걱정하던 고민거리가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다.” – <삼봉이발소> 中

<삼봉이발소>, <보스의 순정>, <3단합체 김창남> 등 그의 작품 중에는 대목마다 주인공들의 주옥 같은 대사,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멘트가 녹아 들어있다.

“특별히 작품을 위해서, 명언이나

멋진 말들을 찾아보거나

기록해두지는 않아요. 그냥

들어봤던 얘기들을 기억 속에서 잘 뒤적거려 작품 중간중간 적절하게 꺼내놓아요.”

가벼우면서도 마냥 가볍지 않은 것은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깊은 내공과 삶의 철학이 그의 작품에 담겨있다. 대중들이 그의 작품을 ‘웰메이드’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 못 읽어본 독자들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처녀작인 <삼봉이발소>에서 홈런을 친 하일권. 하지만, 그는 “홈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담될 것도 없죠.”라고 이야기한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쭉 하는 것 뿐”이라면서.

그는 솔직하다. 그래서 <삼봉이발소>가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다면 만화를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코 경솔하지 않다. 자기 자랑을 조금해도 될 텐데 어쩌면 지루하게(?) 느끼리만치 그는 시종일관 겸손한 대답을 이어간다.

“이제 데뷔 3년 차, 풋내기 만화가 입니다. 그래서 작품을 마치고 나면 늘 작품의 허술함이 보이곤 합니다. 그래서 항상 배우는 자세로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펜대를 놓는 그 날까지도 배우는 마음가짐으로 만화를 그릴 것입니다.”

“하늘은 저렇게 푸른데, 왜 내 인생은 다 타버린 재처럼, 무채색일까?”, “내 인생이 무채색이었던 건, 내가 색칠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라. 예쁜 봄빛 물감으로 색칠을 하면 내 인생도 조금은…. 밝아질 수 있을까?” – 삼봉이발소 中

어려운 만화 계의 현실 속에서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는 모든 만화가들을 존경한다는 하일권. 늘 배우는 마음으로 만화를 그리겠다는 그는 느리지만 꾸준한 손길로 무채색 세상을 예쁜 봄빛 물감으로 덧입히고 있다.

글_이재욱/14기 학생기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05학번

사진_서은홍/14기 학생기자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06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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