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슴에 희망의 불을 지핍니다 – 서진규 박사


당신의 가슴에 희망의 불을 지핍니다. 서진규박사

“For those who want to live, the sky is the limit.  Give life to your dream. It will give you a wond- erful life.” (진정으로 살고자 하는 이, 우주를 비상하리!  당신의 꿈에 생명을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멋진 삶을 얻을  것입니다.) 가발공장의 여공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지난 2006년 59세의 나이로 하버드 박사학위를 취득한  서진규 박사.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그녀에게 좌우명을  물었을 때, 담담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글_이재욱 / 14기 학생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05학번

사진_정승호 / 14기 학생기자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04학번

가발공장 여공에서 하버드 박사까지

난세에는 영웅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시절이 어려울수록 대중은 영웅을 찾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등장했다.
그 후 삼국시대에는 우리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에서 접했듯 많은 전쟁영웅들이 탄생했다. 미국에서도 1930년대 대공황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침체됐을 때,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어떤

기제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각종 맨(?)’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당시 미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힘을 주게 된 동시에 시간이 흘러 ‘슈퍼 아메리카’

상징하게 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국내 역시 예외는 아니다.

1997년의 IMF의 ‘구제금융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국민들은 자신감

을 상실했다. 경제구조를 갱생하는 과정에서 곳곳에 스며든

신자유주의로 경제는 양적 성장에는 성공했으나 질적 성장

에는 실패했다. 또, 이로 인한 소득양극화로 계층간의 격

차만 커지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무력감은 커져만 갔다.

우리 국민들 역시 이 험난한 세태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줄 영웅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혹자는 과거 산업화를 이끌

며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느

꼈다. 또한 작년 겨울, 자수성가의 성공신화를 일궈낸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국민들은 삶에 있어 무언가 큰

변화를 기대했다.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 서진규 박사. 그녀는 경

남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나 가발공장 여공,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식모살이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미 육군에 자원 입대한 후 소령으로 예편했으며, 세계 유수의 인재들이 모여 공부하는 하버드에서 당당히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던 이들, 그리고 미래의 자아가 불투명한 사람들에게 그녀는 역할 모델(role model)이 되기에 충분하다.

농민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희망’ 등 그녀의 저서에는 항상

‘희망’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됐다.

“희망은 등대 같은 것입니다. 나의 앞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매개체죠. 그리고 그 빛을 따라, 그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죠. 희망은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못생겼거나, 예쁘거나, 영특하거나 아니면 좀 우둔하거니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을 현실로 이뤄내는 가능성은 모두 본인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있답니다.”

대중에게 희망을 이야기 하고 가능성만을 이야기하는 그녀

역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형편이 어렵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핀잔을

들으며 자랐고, 도미(渡美)를 결심했을 때도 ‘매춘부’

팔려나갈 위험을 무릅썼다. 결혼을 해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으며, 입양한 딸과

재혼한 남편 사이의 불륜도 목격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제 좀 이루었다’ 생각했을 때엔 자신이

간암으로 번질 수 있다는 ‘C형간염보균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 가끔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었을 때로 분명 있을 테다.

“물론이죠, 포기하고 싶을 때도, 그냥 죽어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죠. 하지만 용기가 없었습니다. 죽을 용기 말이죠.

역설적이게도 그런 용기 없는 제 자신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죠. 또, 시간이 약이더라구요. 당시에는 넘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산들이, 나중에 돌이키면 다 추억이 되고…”

그녀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가 된 계기는 그녀의 인생만큼이나 다이내믹했다.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국내 방송사 직원들이 하버드로 공부하러 왔단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마다
“대히트를 칠 것이다”라고 얘기 했다. 더구나 당시 대한민국은 IMF사태를 맞아 절망의 나락에
허덕이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런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맨 처음, MBC ‘성공시대’에서 촬영섭외가 들어왔지만, 예산문제로 무산되고야 말았다.
그 후 그녀의 딸이 이화여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경향신문의 섹션지 매거진X에 소개된다.
그녀 역시 하버드 재학 중에 이대로 유학을 왔기 때문에, ‘하버드생 모녀’라는 소재는 언론에
충분히 구미를 당기게 했을 터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를 계기로 여러 언론매체에서 다루며
확산되었고, 이윽고 ‘KBS 일요스페셜’에서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을 방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IMF라는 시대적 분위기와 맞닿아 그녀의 이야기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리라는 평소 신념을 가지고 있던 찰나,
때마침 출판사의 권유가 있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라는 첫 저서를 집필했다.

나의 희망, 아직 끝나지 않은..

그녀는 지난 2006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내에 귀국한 이 후, ‘희망전령사’를 자처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많은 강연을 하고 있다. 자신의 강연을 듣고, 혹은 저서를 읽고 보내준 대중들의 피드백은 더 없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또한, 국내에 출판된 그녀의 저서를 영문으로 재번역해 미국으로 출판할 예정이란다. 미국에서 책이

출판되고 난 후에는 그 유명한 ‘오프라 윈프리쇼’에도

출연할 계획이 잡혀있고, 2011년에는 자신의 이야기

가 영화로도 제작된단다. 이쯤 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에 되려 그녀는 진지하게

말을 받는다.

“이제 국내를 넘어서 전세계인에게 제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또한 10년 안에

미국의 국무장관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벨 평화상 규모의 ‘세계평등상’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이 희망이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아니 이룰 것입니다.”

그녀의 희망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했다.

글_이재욱/14기 학생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05학번

사진_정승호/14기 학생기자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04학번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