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진보의 희망을 쏜다 국회의원 강기갑


대한민국 진보의 희망을 쏜다 국회의원 강기갑

간단한 퀴즈로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그는 농민이자 몇 안 되는 진보계열의 국회의원이다.  이번 18대 총선에서 접전 끝에 재선에 성공했으며, 지난 17대  국회 임기 동안 6번의 단식을 감행했다. 그리고 양복차림의  국회에서 유일하게 두루마기를 고집하고 있다. 덥수룩한 수염 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로부터 우리 식탁을 지켜내고자 고군분투 하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글_이재욱 / 14기 학생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05학번

사진_정승호 / 14기 학생기자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04학번

발로 뛰어 이뤄낸 성과

벌써 누군지 예상한 독자 분들께서도 계시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바로 미래의 얼굴 6월호 성공라이
프의 주인공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다. 그를 만나러 여의도에 위치한 의원회관 227호를 찾아
갔을 때, 강의원은 이미 우리 보다 먼저 스케줄이 잡힌 타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오늘만 벌써 4번째 인터뷰였다.

2008년 4월 9일.

18대 총선에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이자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던 실세중의 실세

이방호 의원을 상대로 178표라는 간발의 차

이로 신승을 거두었다. 주요 언론매체에선

‘계란으로 바위치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라고 까지 평가하던 승부에서, 더군다나

‘진보의 불모지’라고 불리는 영남(경남 사천

시)에서 일궈낸 승리라 기쁨은 두 배였다.

“모든 사람들이 버거운 싸움이라 예상했는데,

선거막바지에 이르자 들고 일어서는 민심을

감지했습니다. 막상 당선이 확정되고 나서는 연이어 금배지를 단다는 기쁨보다 고난의 여정을 또
한번 걸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마음이 비장해지고 어깨가 무거워지더군요.” 그는 당시의 소회를 이
렇게 밝힌다.

그의 승리는 분명 18대 총선 최대 이변이기는 했으나, 넝쿨째로 굴러온 기적만은 아니었다. 그는 작
년부터 지역구에 내려가 꾸준히 의정보고회를 개최했다. 더 많은 유권자들을 만나기 위해 발로 뛰며
마을 곳곳을 찾아갔다. 가끔은 스무 명 남짓의 청중 앞에서 의정보고를 할 때도 있었지만 결코 실망
치 않고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이 이뤄낸 성과를 설명했다.

농민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다

일찍이 농사꾼이 되리라는 청운을 품던 소년 강기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험한 산지를 직접 일궈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손수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많은 부조리를 경험했다.


농민을 위해 봉사하려 있는 줄 알았던 공무원들은

되려 농업을 천시하고, 편의주의적 행정을 펼쳤다.

그는 문득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국가톨릭농민회에 입회, 본격적인 농민

운동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국민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농민들이 가난하고,

정치적으로는 이용만 당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농민운동을 하지 않으면 농촌이 변화하기 힘들고,

잘 살기 힘들겠다는 자각에서 동료들과 함께 농민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농민운동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주장하

는 바는 정부에 번번히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로 인해 농민운동의 방향에 대해 회의를 품기도 했고, 내적으로 치열한 고민도 했다. 그 와중에
종교에 심취하여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도자의 길을 걷기도 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구속받기 싫어했던 그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던 수도원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기
에 이른다.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80년대 말, 농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농사짓는 총각들이 장가를 못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농촌총각 결혼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게 되고, 성과를 내기 전까지
머리칼과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그의 심볼이 된 수염을 기르게 된 계
기가 되었다.

온 몸을 내던지는 열정과 용기

처음 정치에 입문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지만, 강의원은 농민을 위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농업, 농촌, 농민문제에 특히 열의를 불태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농민들에게 그래도 우리를 위하는 국회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구나 하는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습니
다. 그렇기에 힘든 단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5년에 쌀 수입개방에 반대하며 29일간을 단식해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단식할 때마다 겁이 난단다. 하지만 최근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단식
을 감행했다. 한우농가의 생존문제가 달린, 나아가 국민들의 생존문제가 달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저지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것이다. 또한, 쇠고기 청문회를 통해 ‘강달프’, ‘호통기갑’ 등의 별명을
얻으며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흙은 아직도 저에게 돌아오라며 손짓합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 받고, 버림받는 사람들을

끌어안는 정치가 펼쳐진다면야 당장이라도 그럴 테

지만…”

사천의 본가에 내려가면 아직도 농사일을 도와준다

는 그는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뼛속까지 농사꾼이었

다.

미국인들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대
통령으로 링컨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존경 받는 대통령 링컨은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설립 기념식 연설에서 “국민에 의한, 국민
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세기의 명언을 남겼다. 강의원은
인터뷰하는 중에 링컨이 말했던 ‘국민에 의한, 국민
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자주 거론했다. 그는 더 이
상 언어적 수사에 그치지 않는, 진정으로 국민이 주
인 되는 대한민국을 꿈꾸었다.

성공라이프 코너에 실린 그는 겸손하게 “아직 저는 성공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성
공은 단순히 재선에 성공한 ‘국회의원 강기갑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농민들이 더 이상 홀대 받지
않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되는 그날이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꿈은 아직 목적
지에 다다르지 않았다. 이제 막 출발지에서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이다.

글_이재욱/14기 학생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05학번

사진_정승호/14기 학생기자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0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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