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궁궐을 짓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신응수


천년 궁궐을 짓는다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신응수

 지난 2월 숭례문이 화마에 스러져갈 때 한달음에 달려와  제 살이 타는 듯한 표정으로 숭례문을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숭례문은 그가 21살 청년일 때 중건 공사에 참여하여 직접  못을 박아 올린 건물이었다.  목수의 길에 접어든지 올해로 51년, 숭례문 공사에서부터  경복궁과 불국사, 수원 장안문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고건축  문화재들이 그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 시대 유일한 궁궐 목수, 고집스레 우리나라 고건축의 맥을  잇고 있는 대목장 신응수 선생이다.

글, 사진_김수정 / 14기 학생기자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05학번

열일곱에 들어선 목수의 길

그가 처음 목수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가 갓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더 하지 못하고 집에서 소일하고 있을 때 그의 사촌 형이 찾아왔다.

서울에 오면 취직도 시켜주고 야간 학교에서 공부도 시켜주겠노라는 사촌 형의 말에 열일곱

신응수는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메주와 바가지를 어깨에 메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옥 짓는 일을 하던 사촌형을 따라 건축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목수 일을 배웠던 그는 동네 사람이
빌려준 쌀 한 가마니로 끌이며 대패를 사서 정식으로 목수 일을 시작한다.

그것이 51년 목수 생활의 시작이었다.

신응수 선생은 한국 궁궐 목수의 적통 이광규 선생과 조원재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고건축 목수 수업을 받는다. 대단한 완벽주의자였던 스승 밑에서 시집살이 하듯 매운 고생을 하며
목수 일을 그만 둘까 생각도 했지만 이때 대목장으로서의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이 일에 내 인생을 걸어보겠다는 각오와 고건축의 맥을
잇겠다는 욕심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던 두 스승 밑에서 사사 받은 것은
행운이었지만, 스승의 가르침이라면 무엇이든 군말 없이 따르는 그의 바보스러울 정도의 뚝심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가장 큰 성공비결이었다.

불국사에서 경복궁까지… 천년을 갈 건축물을 짓는다

숭례문 공사부터 시작해 불국사, 수원 장안문, 경주 안압지,

창경궁, 구인사 조사전, 경복궁, 흥례문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고건축물들이 그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1991년에는 경복궁 복원 공사의 도편수를 맡아

명실공히 궁궐 목수로서 이름을 날린 그가

조선 총독부를 헐어낸 자리 위에 흥례문을

세울 때는 난데없는 수입목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경복궁 공사 과정에서

수입목이 자그마치

30퍼센트나 사용됐다고

모 일간지가 발표한

것이다.

경복궁의 수많은 기둥 중

어느 하나 수입목으로 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육송을

고집했던 그에게는 참으로

억울한 모함이었다.

더군다나 수입목을 써도 된다는 조목이 시방서에 있었지만, 그 스스로 온갖 곤욕을 치르며 97퍼센트
가까이 우리 소나무로 지어올린 경복궁이었다. 오해는 곧 풀렸지만 흥례문을 지날 때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고.

“ 내가 두려워한 건 주위의 감독자가 아니라 먼먼 후대의 후손들이었어.

지금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천 년이 지난 후에 후손들한테 인정 받는 건축물을 짓고 싶어.”

10여 년 전부터 그는 강원도에 20여만 평 정도의 소나무 임야를 구입해 소나무를 키우고 있다.

살아 생전에는 절대 베지 않고 순전히 후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이다.

“ 내 생전에는 베지 않을 거야. 그 나무들이 커서 몇 십 년 몇 백 년 후에 나라의 큰 공사 재목감으로
필요한 곳에 쓰였으면 좋겠어.”

숭례문은 갔지만...

지난 2월 10일 밤 숭례문 화재현장에 한달음에 달려온 그는 잦아드는 불을 보고 안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쳤다. 불은 아직도 기와 지붕과 서까래 사이에 숨어있었고, 기와나 천장을 뜯어내야
숨어있는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숭례문 보수 공사에 직접 참여했기에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소방 당국과 문화재청에 알렸지만 묵살됐다. 대목장의 얼굴에 금세 그늘이 졌다.


“ 숭례문 복원을 두고 몇 년이 걸린다느니
얼마가 든다느니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최고의 장인들을 불러
모아 충분한 연구를 거쳐서 천년을 갈

숭례문을 만들어야지.

공사 현장도 개방해서 사람들이 오며 가며
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래야 국민들 한도
풀릴 수 있을 거야 ”

아직 이루지 못한 꿈과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순(耳順)의 궁궐 목수는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답했다.

“ 아직 경복궁은 반도 복원되지 못했어.

계속 복원 작업을 해서 옛 경복궁의 모습을
되찾아줘야지.

인연이 닿는다면, 고려 때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된 황룡사 9층 목탑도 복원하고 싶고.

지금은 미국 뉴욕에 전통 양식으로 사찰을
짓고 있는데, 꾸준히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인터뷰를 마친 대목장 신응수 선생의 얼굴에는 오랜 시간 안으로 견디며 자아낸 나이테처럼
고요한 주름이 번져 있었다.

글,사진_김수정/14기 학생기자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05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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