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l 줄리아드에 선 작은 거인

까무잡잡한 피부와 작은 키를 보았다. ‘남아프리카 땅콩’이 학창시절 별명이었던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지만, 상상 외로 거대한 거인을 마주한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이올린을 놓고, 악보와 펜을 들게 되다

“이대로 가다간 팔을 영영 못 쓸지도 몰라요. 그만두세요.”

바이올린을 켜던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향했다. 그녀에게도 음악인의 꿈인 줄리아드 스쿨이 삶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인지, 운명인지 미국에서의 첫 레슨을 마친 날 찾아온 목 디스크는 그녀의 삶, 바이올린을 놓게 하였다.

집에 돌아와 연습하려는데 팔이 안 들리는 거예요. 하루아침에 내가 좋아했고, 내겐 인생이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니까 미칠 것 같았어요. 너무 아프고 참기 어려워서 악기를 붙잡고 종일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뉴욕에 존재하는 병원이란 병원은 다 돌아다녔고, 기 치료나 미신 치료 등 온갖 수단을 다 써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머리도 못 묶고 밥도 못 먹을 정도의 심각한 디스크. 급기야 극도의 스트레스와 함께 찾아온 사춘기로 조화롭던 그녀의 음악 인생은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내 길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도 끝까지 음악을 안 하면 평생 후회하겠다 싶어 작곡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고2 때 전과한 셈인데, 말처럼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작곡가의 관점으로 다시 배웠어요. 처음 기본부터 다시.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바이올리니스트’에서 본인을 통해야만 빛날 수 있던 ‘작곡가’로 전향한 그녀는 처음엔 견딜 수 없이 싫고 창피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드레스와 바이올린이 아닌 악보와 펜을 든 박선영 씨. 하지만, 그녀가 먹은 것은 겨자가 아니라 보약이었다.

춤추는 오선지, 음악 인생의 제2막

고3 되기 마지막 여름, 이렇게 미친 듯이 인생을 걸고 열심히 했던 적은 없었어요.

누가 봐도 무리였다. 늦게 시작한 작곡이었다. 배우고 쓰기에도 바쁜데 세계 최고의 음악대학에 들어갈 3개 작품을 현대 음악으로 풀어내야 할 미션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작곡, 도시락으로 때운 점심과 함께 작곡, 밤늦게 작곡하다가 잠드는 그녀의 3개월은 지겨운 반복의 연속이었다.

연줄도, ‘빽’도 없이 혼자서 다 해야 했어요. 줄리아드 스쿨의 웹 사이트를 뒤져서 나오는 강사와 교수님에게 모조리 메일을 보냈죠. 제가 실제로 레슨을 받을 수 있는 분을 찾은 거죠. 한 중국 선생님으로부터 답신이 왔고, 제가 제대로 배울 분이었죠. 그때부터 이를 악물었어요. 한국 음대가 가능성을 보고 사람을 뽑는다면, 미국의 그중에서도 줄리아드 스쿨은 기성 작곡가, 이미 음악인으로서 완성된 사람을 뽑아요. 즉 현대 음악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을 뽑죠.


한여름에도 이가 시릴 정도의 노력으로, 그녀는 짧은 작곡 인생의 첫 세 작품을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처녀작들이 바로 줄리아드 입학에 지원할 세 작품이 되었던 셈. 도박처럼 6개 학교에 지원한 끝에, 한 학교를 제외하고 모두 합격했다. 고민의 여지 없이 줄리아드 스쿨을 택한 그녀, 음악 인생의 제2막이 펼쳐졌다.

치열하게 들어간 줄리아드 스쿨에서도, 그녀에겐 남모를 고충이 있었다. 한국의 음대 교수인 아버지로 인한 곱지 않았던 주변의 시선이 그것. ‘빽’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냐, 뒤늦게 시작했음에도 명문대에 입학한 것이 이상하다는 식의 수군거림이었다.

미국은 ‘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물론 돈을 주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수백억이 장난인가요?(웃음) 문제는 그보다 입학 후 드러난 제 바닥이었어요. 남들은 몇 십 년 해서 쌓아온 기초를 전 2년 만에 뚝딱 지었으니 탄탄할 리 없었죠. 그때부터 전 수영장 물에 던져진 셈이었어요. 살려고 헤엄을 치다 배우게 된 거죠.


지원자 3백 명,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줄리아드 스쿨에 선 그녀가 작곡을 좋아하게 된 것은 불과 2년이 채 안됐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바이올린 연주를 해봤던 경험이 작곡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기가 되었던 것, 이론과 실무가 갖춰진 그녀의 실력은 지도 교수가 조언을 구할 정도다.

바이올린을 했던 것이 이렇게까지 플러스 알파가 될지 몰랐네요. 싫어하는 것이었지만, 계속하다 보면 그것만의 장점과 매력을 찾으면서 좋아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시작이었지만, 제게 필연이 된 거죠.

올해 줄리아드 대학원 입학 허가를 받아낸 그녀는, 기라성 같은 작곡가와 떳떳하게 실력으로 겨뤄 들어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내년 4월엔, 링컨센터의 앨리스 튤리 홀에서 그녀의 손으로 빚어낸 초연을 가진다. 뉴욕타임스의 리뷰가 있을 예정인, 첫 오케스트라 편성의 큰 무대에 서는 기분은 어떨까?

남들이 얻지 못하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해요. 입학한 지 4년 만에 드디어 좋은 일이 생기려고 하는 것 같고요(웃음). 지금 당장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꾸준함만 있다면 언제든 결과는 나오지 않을까요?

교수와 음악PD가 최종 목적지라는 그녀는 최근 좋은 기회가 닿아 아리랑 라디오의 <클래식 오디세이> 코너의 DJ를 맡기도 했다. 진정 꿈을 향해 오르는 계단을 밟을 줄 아는 박선영 씨,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우와 엄친딸이네요 ㅎㅎ
  • 주전자안의녹차

    레이디 가가 라이브를 보면서 너무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음악 PD가 된 박선영씨의 추천곡을 라디오나 TV를 통해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 남우리

    같은 나이라니 놀라울뿐 우왕 멋져요
  • 럽젠집착남

    선영 씨와의 인터뷰 당시 태진기자와 동행했었는데요. 당시에 느꼈던 자극의 진동이 무뎌질만한 요즘, 기사를 읽으며 다시금 그녀가 제 옆구리를 콕 찌르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드네요. 학생기자로 활동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는 건 참 행복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배울 점이 많은 인터뷰이었고, 기사도 훌륭한데요.

소챌 스토리 더보기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한 겨울나기!

명탐정 챌록홈즈

나를 남기는 방법, 증명영상

티끌 모아 목돈

색다른게 당겨서요

땡그랑 한푼~ 동전 없는 사회

조금 씁-쓸한 이야기

본능적으로 술잔 소장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