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원┃준비된 추진력의 힘

사진 황덕현/제17기 학생 기자(부산대학교 대기환경과학과)

일요일 저녁이면, 16년간 외길을 걸어왔다는 <달인> 코너가 인기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기 30년 동안 외길을 달려온 기업인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 TV 생산 이후 거대한 세계 시장에서 3D 기술을 주무르는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선 역사적인 순간에 이르기까지, LG전자 박석원 부사장은 꿋꿋이 세상을 밀고 나갔다.

더 큰 세상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은 법관이 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긴 때였다. 훌륭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1년 후,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그는 자신이 굳게 지켜왔던 신념 하나로 법대에 진학하길 바라던 아버지를 설득했다.

해외에서 기업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어요. 당시에는 해외로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경험도 없었지만, 더 큰 시장에서 일해보고 싶은 열망이 강렬했죠.

결국, 법학이 아닌 경제학을 택한 그는 대다수 친구가 국내 금융권이나 종합상사, 건설업 쪽으로 진로를 정할 때,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많은 직장으로 취업 기준을 세웠다. 그가 국내 기업 중 해외 생산법인을 가장 먼저 열고 가전업체 중 1등으로서 해외 수출이 활발한 LG전자(당시 금성사)를 택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24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회인이 된 그는, 수출 영업부서에서 TV, 비디오, VCR 등을 미국에 판매하는 일을 맡으면서 학창시절의 1등을 잊고 회사에서 배워야 할 점에 몰입했다.

나보다 경험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배우려는 자세로 임했습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고 해서 어깨에 힘주기보다는 옆에 있는 동료나 선배의 나은 점들을 벤치마킹하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젊은이들에게 눈높이를 높게 가지고 그에 맞는 노력을 최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thinking보다 action! 리더십

회사의 경영 환경은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 수없이 변한다. 따라서 리더의 빠른 상황 판단과 결정력이 조직의 순항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 1986년, 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 LA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 해외근무의 꿈을 본격적으로 이룬 그의 비결은, thinking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과감히 action을 한 결과였다. 비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완벽주의 성향을 과감히 버리고 우선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 실행에 집중하면서 중간에 수정하고 개선해나가야지, 완벽한 데이터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이미 버스가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항공기는 지체되거나 취소되기 십상입니다. 한번은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일정을 마치고 시카고로 이동해 미팅이 있었는데, 비행기 출발시각이 1시간이나 연기됐어요. 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1시간 뒤에도 이륙하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 들었죠. 그래서 신속히 차를 빌려서 시카고로 갔습니다. 비록 약속 시각보다 1시간 늦게 도착했지만, 재빨리 대응하지 않았더라면 아예 가지도 못할 뻔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비행기는 아예 뜨지도 못했더군요.


안 되는 일을 붙잡은 채 손가락을 물고 발을 동동 구르기보다는, 조금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대안을 고려해 재빨리 행동하는 것이 훨씬 결과가 좋다는 지론이었다. 그는 해봐도 후회하고 안 해봐도 후회할 거라면 전자를 택하는 게 낫다면서, 해본 경험이라도 얻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계획에서 실천까지의 속도를 줄인다는 것은 무작정 지르고 보자는 태도가 아니다. 신속한 판단은 신중한 준비를 함축한다. 그가 일하는 미국이라는 큰 시장은 각종 소송으로 뒤얽힌 기업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특허권, 지적재산권 등의 분쟁으로 얽히는 일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어떤 일을 추진할 때 법적인 리스크와 수반되는 여러 분쟁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는 것은 물론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출혈을 가져오기 때문에, 국가의 수장은 전쟁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입니다.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우리가 전쟁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상대가 알게 하는 거예요. 소송이나 분쟁도 마찬가지죠. 휘말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의사 결정의 단계에서부터 수반될 가능성이 있는 일을 미리 가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결국 살아남는 방법이죠.

규모가 큰 회사의 수장인 그가 생각하는 리더의 모습은 군대로 치면 정규군이 아닌 특수전 부대의 대장이다. 정규군은 장교가 아닌 사병들에게까지 작전 목표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채, 다만 하루의 일을 할당할 뿐이다. 그들은 삽으로 구덩이를 왜 파는지, 삽질 말고 다른 옵션이 있는지를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특수전 부대원들은 최종 목표를 공유하고, 각각의 구성원에게 명확히 주어진 과업이 있다. 그는 리더란, 목표인식을 심어주고 대략적인 지침만 제시해 부하들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역지사지로, 오류를 벗어라

박석원 부사장이 걸어온 발자취는 늘 LG전자의 역사와 함께였다. 그가 처음에 회사에 들어왔을 때 ‘Gold Star’라고 하면 콧방귀를 뀌던 미국인들이 세월이 지난 지금 ‘LG Electronics’에 엄지손을 치켜드는 모습을 볼 때면 큰 보람을 느꼈다. 처음엔 심드렁하던 외국인을 상대로 협상을 따내는 것이 해외 영업의 매력 중 하나라는 그는 오랫동안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철학이 있었다.

사람을 대하고, 고객을 만날 때 늘 상대의 입장에서부터 출발해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무엇을 원할까’를 고민하면 혼자의 생각에 갇혀서 풀지 못한 많은 문제와 고민이 해결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자기중심적인 판단으로 오류를 범할 때가 잦거든요.

인간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실은 철저하게 감성적인 동물이라는 결론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그는 사람들이 합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판단을 하는, 단적인 예를 하나 들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실험했어요. 길거리를 지나가는 두 사람에게 제안을 하는 겁니다. 내가 A에게 1천 불을 주는 대신 B가 이에 동의해야 한다는 전제를 주는 거죠. 그렇다면 A가 얼마를 줘야 B가 동의할까요?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B가 한 푼을 받지 못해도 굳이 A가 받는 1천 불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A가 10불을 주겠다고 제안하면, B의 반응이 어떤 줄 아세요? “내가 미쳤나? 그깟 10불 받고 그 짓을 하게?” 하더라는 겁니다. 10달러라는 순이익이 생겨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것은 인간이 감정적이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소비자에게 자사의 제품을 어필할 때도 “우리 제품은 굉장히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우리 제품을 쓰면 당신이 달라 보입니다.”와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부딪히고, 부딪히고, 또 부딪혀라

그가 자식뻘인 20대의 아들딸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힘든 일은 나중에 다 도움이 되니 뭐든 경험하라는 것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2년 남짓의 군 생활을 마친 그는 당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사회생활에서 얻기 힘든 몇 배의 값어치 있는 경험을 했다고 회상했다. 살아온 배경과 성격, 학력, 지역 등이 다른 이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것. 바로 사회에 나와서 겪을 많은 일의 예행연습인 셈이었다.

범죄같이 나쁜 일만 아니라면, 20대에게 뭐든 다 경험하고 부딪히라고 말하고 싶어요. 책상 앞에서 공부도 열심히 해보고, 여행도 가보고, 때로는 신나게 놀기도 하고, 연애도 열심히 하고요.

하지만, 요즘 캠퍼스는 취업 전쟁 앞에서 친구마저 경쟁자로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오늘날 대학생이 느낄 무거운 어깨를 이해한다는 그는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전수해줬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겁니다. 몸과 마음 중의 하나만 편하고 다른 하나가 피곤하면 꼭 탈이 나요. 근데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는 건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땐 몸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거예요. 숨이 헐떡거리도록 뛰기도 하고 목이 터지라 노래라도 부르세요. 힘들다고 방 안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다고요? 절대 말리고 싶어요.

현재 그는 북미 지역의 대표와 LG전자 법인장을 겸하고 있다. 북미 시장에서 3D TV를 어떻게 1등으로 만들까에 대한 고민과 인스토어 매니지먼트In-store Management 및 공급망 관리SCM(Supply Chain Management)의 올바른 운영이 최대 이슈다. 앞으로도 자신의 사명이 다할 때까지 부심해 해외 시장에서 LG의 가치를 드높여 국위선양하고 싶다는 그는, 은퇴 후 사람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 작년에는 MBA를 취득하기도 했다. 본인이 원하는 일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추진력의 바탕에는, 모든 대안과 오차마저 낱낱이 준비하는 그의 날 선 뒷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