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알리바이를 가진 인라이너 건국대 섬유공학과 3학년 이지하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이지하(27)는 울상이었다.
“화요일에 동기들 졸업식 다녀왔어요. 친구들은 다 빵빵하거든요. 삼성, 롯데 들어간 친구는 목에 힘 팍 들어갔던대요. 게다가 먼 일 같았던 동생 제대가 다음 주래요.”
스물 일곱에 군대 미필. 5년째 건국대 섬유공학과 3학년 휴학 중. 기자는 별 감흥이 없는데 이지하는 심란한가 보다.
카페에 들어가 마주보고 앉았다. 앉자마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인터뷰가 실렸다는 총천연색 잡지와 신문 조각이다. “자랑하려고 가져왔어요” 씩 웃는 얼굴이 해맑다. 2001년 것부터 2004년 것까지, 남성지부터 스포츠지까지 다양하다. 그에게는 청춘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꽤 근사했다.
조금 처진 이지하의 어깨는 겨울 탓일지 모른다.
그는 유명한 인라인 스케이트 선수다. 각종 인라인 마라톤 대회를 휩쓸고 강사로 일한다. 레이싱 지원 업체 ‘벨로티’의 지원을 받고 데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아마추어 출신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여기까지는 다른 인라인 선수들과 비슷하다.
“그냥 뒤로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존경하는 선수 에디 메츠거에게 물어봤는데 자기도 뒤로 타본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작년 5월 2일 KBS 광주 대회 21Km를 51분만에 돌파했어요. 올해 5월 인천 대회를 기다려요. 새로운 목표가 생긴 거죠”
모두들 속도를 견주며 앞으로 달릴 때 뒤로 가면서 전화 통화까지 하는 이지하의 모습은 남다르다. 그것은 경쟁이 아니다. 즐김이다. 이지하는 ‘프리 스케이팅’을 한다.
‘뒤로 타기’로 관객들 혼을 빼놓은 이지하는 어느새 무대 위에 있다. 정적. 음악이 나오고 그가 정신없이 몸을 흔든다. 경기하느라 힘도 다 빠졌을 텐데 남은 힘이 또 있나 싶다. 사람들은 ‘아~ 쟤가 이지하야?’ 하며 지나간다. 이지하는 “신나잖아요” 소리 높인다. 이지하가 경기 날 아침 꿀물을 마신다는 소문이 돌자 인라인 즐김이들은 꿀물을 찾기 시작했다. 이지하 세상이다.
중학교 때까지 소위 ‘롤라장’을 다녔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인라인을 시작했다. 친구 거 빌려서 타기 시작한 인라인은 ‘고3’이란 단어를 무색케 했다. 독서실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늘 인라인과 함께 였다. 땀을 흠뻑 흘리고 집에 오면 찬물 샤워도 너끈했다. 대학에 와서는 아예 인라인을 신고 등교했다. 수업 이동에, 심부름 중에, 내리막길에 인라인은 유효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다른 학교에서 ‘건대의 명물’로 취재를 오기도 했다. 그가 신입생이던 98년은 인라인이 보기 드문 때였다.



인터뷰가 길어졌다. 이지하는 탁자 위에 놓인 각설탕 그릇을 앞에다 끌어 놓았다. 한 주먹 손에 쥐더니 입에 털어넣는다. 와그작 와그작 오드득 오드득.
이지하는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오죽하면 자기 이름 이지하를 ‘이 놈은 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풀이했을까. 98년부터 99년까지 쌈지 스포츠 모델을 했다. 건국대 방송국 아나운서도 맡았다. 학교 홍보 도우미 ‘건우’ 1기로 활동했다. 99년에는 m.net VJ 공채에서 8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기도 했다. 이지하의 좌우명은 ‘경험이 지혜를 만든다’ 이다. 이지하는 아직도 욕심이 많다.
그러나 꽃만 볼 셈인가. 우리는 옹이도 보아야 한다.
이지하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IMF가 터졌다. 아버지가 경영하시던 장갑 공장이 어려워졌다. 결국 공장은 문을 닫았고 천오백만원에 팔 수 있던 기계들이 이백만원에 팔려 나갔다. 이지하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건대 방송국에 들어갔다. 3학기를 장학금 받고 학교 다녔다. 모자란 학비는 스스로 벌었다. 캠프가 가고 싶어서 공짜인 캠프에는 무조건 부딪쳐 보았다. 이지하는 자기 또래 중 생활력이 강한 편일 거라고 장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1년 폐암으로 투병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천붕(天崩)이라고 하죠.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해치(hatch:배의 갑판에 있는 구멍)가 열렸다고 해야 할까. 아니 해치가 없어졌다고 하는 게 낫겠다”
얼마나 곱씹었던 걸까. 고르고 고르며 머리에 담아 두었을 생경한 단어들이 터져 나온다. 2000원짜리 정종 파는 집을 찾으니 약주 즐기시던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났다는 그다. 많은 경험 중 사람 보내는 경험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은 퍽 깊었다.


이지하의 직업은 여러 가지다. 학생, 인라인 선수, 인라인 강사로 불리지만 이제는 디자이너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는 최근에 스키와 스노우보드에 관한 디자인으로 두 개의 특허를 받았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결국은 다 디자인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유럽 여행을 할 때도 디자인 전시회가 열리는 도시를 위주로 다녔어요. 지금은 스포츠 용품 위주로 생각하고 있지만 멀리는 디자인 전반까지도 다루고 싶어요”
스물 일곱이 대수랴. 대학원도 갈 거고 유학도 갈 거란다. 독일로 유학 갈 생각에 독일어까지 배우고 있다는 그를 누가 철없다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꿈이 뭔가요?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어요. 목욕탕 주인이 되는 건데요. 구체적인 계획까지 다 세웠어요. 영등포, 서울역 앞에 두 개의 목욕탕을 지어요. 주 6일로 일하고 나머지 하루는 프리 데이예요. 인근의 노숙자들을 모두 불러모아 공짜로 목욕시켜 드리는 거죠. 제 나이 오십에 이룰 꿈이에요”
이지하는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아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리저리 청춘을 시추(試錐)해보는 이지하에게 겨울은 없다.
이제 봄이다. 인라인을 타며 목욕탕 주인을 하고 있을 쉰 살의 이지하와 다시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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