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와 청국장-그 모순에 대한 ‘다정’한 답변




일요일 아침 9시, 긴 장마 끝에 나온 맑은 햇살과 파란 하늘의 환영을 받으며
덕성여대 정문 앞에 섰다. MT때나 와봤던 우이동에 다다르기 직전, 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이곳에는 산자락에
둘러싸인 예쁜 캠퍼스가 있었다. 그리고 미녀는 잠꾸러기라는 공식을 깨고, 인적 없는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다정 씨. 보기 드문 장신에도 불구하고, 동그란 얼굴 때문에 귀여움과 앳됨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녀가 첫인사를
건냈다.

“오랜만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 하늘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즐거운 아침이에요.”
전라남도 광양이 고향인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보고 자랐다.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따라 통학하고, 비가 오면 운동장에 게가 기어 다니던 학교를 다녔다.

“사람들이 전라도에서 왔다고 하면 소가 지나다니는 시골 출신인줄 아는데,
광양은 거대한 제철소가 있는 도시랍니다.”

고향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이다정 씨는 시시각각 변신하는 바다를 보고자라 색채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어렸을 때부터 ‘색칠공부’에 열광하던 그녀는 초등학교 때 미술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중, 고등학교 때에도 꾸준히 한길만을 걸었다.

입시준비에 시달리던 고등학교 때는 미술을 제대로 공부할 여건을 갖추지 못한 광양을 원망하기도 했다. 방학 때마다
서울의 학원에 등록해 홀로 고시원에서 지내던 시절의 어려움을 논하던 그녀는
“어쩌면 지방에서 공부했던 것이 창조력 계발에는 도움이 됐을지도 몰라요. 입시학원에서 가장 놀란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을 공식처럼 가르치는 거였거든요”
라며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덕성여대 서양화과 01학번인 이다정 양은 학내외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대생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미술의 기원에 대해 좀더 깊이 알기 위해 인류학을 복수전공 하고, 학내
통역 자원봉사 동아리와 교회 청년부 일에도 적극적
이다. 또한 다정 양의 미적 감각은 패션감각으로도
이어져, 잡지 키키의 뷰티테스터 활동을 통해서도 발휘되고
있다.

게다가 3년째 자취생활에 접어드는 그녀의 취미이자 특기는 요리. 언젠가는 미술
실력을 발휘해 보기에도 아름다운 밥상을 차리는 것이 목표이지만, 현실에서는 청국장을 즐겨먹는 살림꾼이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속 여인처럼, 차갑고 신비롭게 느껴졌던 것과 달리 이 씨는 이름처럼 다정한
말솜씨를 지녔다.

학교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에도 안 내려간다는 그녀는
“알아갈수록 좋은 학교”
라며 학교사랑도 대단했다. 학교 홍보책자에 당당한 모습이 실리기도 했던
다정 양이 꼽는 가장 큰 장점은 한 학년에 20명밖에 되지 않아서 동기들끼리는 물론, 교수님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넓은 화실도 쓸 수 있다는 것.

특히 지난 월드컵 때, 비무장지대 미술운동을 하고 계신 이반 교수님을 도와 벽화작업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다정 양은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생각과 경험이 많아야
한다”
는 이 교수님의 조언에 따르기 위해,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꼬박꼬박
올리고 있다. “미술을 하다 보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기 쉬운데,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즐거워요”
라는 활발한 다정 양의 모습은, 그녀의 소망인 미술교사에
‘딱’어울린다.

나아가 그녀는 작년 겨울, 세계와 소통하는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다.
교회에서 탄자니아로 한달 동안 자원봉사를 떠난 것. 해마다 아프리카로 떠나는 이 봉사프로그램은 내전으로 얼룩진
아프리카의 상황과 질병 때문에 ‘죽을 각오’를 하고 떠나야 하는 강행군이다.
떠나기 전 한달 간
언어를 배우는 철저한 사전 준비 후 도착한 그곳은 열대 우림 지역의 푸르른 해안가였고, 너무나 순수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즐거워 그녀에게 고생이 아닌 너무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돌아온 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바스키아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던 6살 베다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특별히 한 피사체를 그리는 것보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구성화를 좋아한다는 다정 양.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물을 그리다가, 유에서 무를 창조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라며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또 뮤지컬 ‘시카고’를 보고 그 감정을 표현하던
수업이 너무 좋았다는 그녀는, 이렇게 차근히 그리고 꾸준히 외모만큼 멋진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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