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2010>을 통한, ‘불편한 문화’에 대한 헌사

‘자칭’에서 ‘타칭’ 영화 마니아 대열로 합류하고자 열망했던 시절, 전설의 영화 거장이라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고백하건대, 20분도 채 보지 못하고 영상을 꺼버렸다. 관객의 이해를 조금도 바라지 않는 듯한 전개와 편집, 인물의 감정 변화에 ‘어떤 의미일까?’란 의문이 산처럼 쌓여 가다가 급기야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린 것. 규칙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영화인의 존경을 받는 그의 영화를 받아들일 수 없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본에서 여러 해 동안 좋은 반응을 얻다가 한국에도 상륙한 <LOVE 2010>은 보는 내내 그 정답을 제시해주는 듯했다.
‘나는 얼마나 규격에 맞는, 이해 가능한 문화작품에만 익숙해져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것 = 불편한 것?

<LOVE 2010>은 무언극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즉 ‘사랑’에 대한 작품임에도 간간이 들리는 웃음이나 고함이 전부일 뿐 전혀 대사가 없다. 연극보다는 오히려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배경도 비현실과 현실의 공간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이 ‘무언’과 ‘시차 이동’이라는 장치 덕분에, 본 작품은 매우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오히려 관객은 좀 더 배우의 동작과 감정 표현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다. 심지어 관객은 연극의 주제를 주입 당하는 강제로부터 자연스럽게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기존의 연극이 늘 보여주던 공식 외에 낯선 극으로 진행되는 작품은 ‘예술’이라 쓰고 ‘거부감’으로 읽히는 낙인이 찍혀버린다. 그것이 비록 관객과 더 원활히 소통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주장해도 말이다.

정답을 버리는 게 정답이다

<LOVE 2010>공연이 가장 ‘불편한’ 요소는 주관적 해석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공연 중 새로운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앉아 있던 기존 인물이 예의를 차리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때마다 인물은 서로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눈치를 주기도 하고, 앉아있던 이들은 언제, 누가 먼저 일어서고 앉을지를 눈빛으로 전달하는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사가 없어서 그 어떤 해석도 정답이라 하기 어렵다. 주인공은 다양한 모습으로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이때 관객은 ‘저건 대체 뭐하는 행동이지? 연극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라는 의문 부호로 때론 불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언론인 김어준이 ‘우리나라에서는 멀고 먼 옛날 사람이 그린 모나리자에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 문화를 보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비평한 대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문화를 즐길 때는 좀 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라고 정답을 바라는 마음을 버린 채, 지금 무대 위에서 여러 장치가 만들어내는 조화를 보며 ‘감성으로 느끼는’ 포용력 말이다.


남산 예술센터 이규석 극장장,
“문화는 관객이 소비자가 아닌 후견인일 때 발전한다.”

<LOVE 2010>은 지금 ‘연극 공식’을 가진 대학로의 천편일률적인 작품을 ‘배신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극이 참여했던 공연 예술축제 <Festival 場>의 다른 작품도 그렇다. 동해안 별신굿과 미디어 아트와 현대무용이 결합한 <ONE>, 설치 예술과 공연이 함께 하는 <찰나가 부르는 시간> 등 기존의 탈을 벗어난 작품으로 가득했다. 이 축제를 기획한 남산 예술센터 이규석 극장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공연계는 이런 새로운 시도의 작품이 들어가기엔 너무 비좁다며 말문을 열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관객들이 가벼운 분위기의 공연을 원하게 되고, 공연업계 형편상 관객의 수요를 맞추려다 보니 ‘대중성이 검증된’ 작품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 예술가나 공연 단체 측에서도 복합적 요소의 공연은 재정적으로도 지원받기 어려운 구조에서 표출하고 싶은 만큼 실험적인 작품을 선뜻 내놓지 못하고 있죠.

비단 공연 문화계뿐 아니라 그 어느 문화 산업에서든 관객이 새로운 시도를 꺼린다면 문화는 그 이상의 힘을 내기 어렵다. 연극을 보는 개인적 취향 없이 모두 새로운 것만을 기대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규석 극장장은 ‘새로운 시도’란 ‘진정성’의 문제이기에 장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술은 동시대의 사회를 반추하고 일상을 반영할 수 있는 정신적 활동으로 어느 한 장르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모든 예술 장르가 안고 있는 이런 고민의 해법을 복합장르 예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욱 다양하게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을 시도하는 가운데, 진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반감으로, 소위 말하는 예술성 있는 작품,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난색을 보이는 사람을 종종 본다. 예술성을 택한 작품은 대중적 작품보다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인식에서 생긴 반감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관객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곧 진정성에서 나온다. 이규석 극장장 역시 새로운 시도라고 해도 관객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이며 시행착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관객인 우린 ‘소비자’적 마인드에서 벗어나 ‘문화후견인’적 자세로 너그러이 시도 자체를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LOVE 2010>에서 선보인 무언의 열정적 춤사위가 그 어떤 스토리보다 여전히 가슴을 일렁이는 것처럼 그 ‘새로운 감동’에는 반가워할 가치가 있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N

    @화풍병 왠걸요 요즘은 piff다 광주비엔날레다 서울사람들도 다 지방내려가던걸요^^
  • 서울특별시에 사는 사람들의 특권.. 누릴 수 있는 공간, 기회가 있다는 거 정말 부러워요.
  • 삼다

    타다 준노스케의 작년 공연 '로미오와 줄리엣' 상당히 좋았는데, 전 올해도 너무너무 좋았어요~~! ㅎㅎ '움직임' 자체는 그대로 사용하지만, 다른 맥락에서 같은 움직임을 사용하는 연출 등이 정말 큰 자극이 되는 공연~!

소챌 스토리 더보기

서울식물원

내 마음대로 게임을 시작해볼까? 커스터마이징

쌍계사 템플 스테이 체험기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한 겨울나기!

명탐정 챌록홈즈

나를 남기는 방법, 증명영상

티끌 모아 목돈

색다른게 당겨서요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