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희┃이 편안한 소통 진동

포토그래퍼 _ 고영관(phos studio)

아나운서 시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KBS 아나운서 시절 ‘착한 척 한다.’라는 아픈 평을 들었으며, 당장 생계가 끊길 수도 있는 프리랜서의 불안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대학생과도 격 없이 친구가 되는 이금희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한 소통은 삶에 대한 진한 애정과 이해,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가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기회는 만들어가는 길이다

저의 20대 때 가장 잘한 일은 아나운서가 된 거예요.

20대의 이금희는 지금의 20대처럼 흔들리는 존재였다. 아나운서란 꿈은 있었지만, 그를 실현하기까지 생각보다 먼 길을 돌았던 것. 그녀에게 바늘구멍보다 더 들어가기 어렵다는 방송국 입사 시험이 가혹한 탓이었다. 대학교 4학년 당시 응시한 지상파 공채 아나운서 시험에서 낙방한 그녀의 첫 직장은 대기업 비서실 자리. 사회적으로 번듯하고 안정적이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꿈에 대한 갈증이 심해져 1년도 되지 않아 사표를 던졌다. 그 후 아나운서 시험에 재도전하게 되었고, 꿈의 포문은 이때부터 열리게 되었다. 왠지 비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에, 그녀는 비서로 일했던 경험이 아나운서로서의 삶에 도움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아나운서는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고, 제 적성에도 참 맞는 직업이에요. 비서 일을 하며 다른 사람의 심중을 살피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어요. 이는 방송인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 중 하나이죠.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고, 제 적성에도 맞는 아나운서의 기질을 더 발휘할 수 있게 했죠. 전혀 쓸모 없어 보이는 경험도 일단 쌓아두면, 언제든지 도움이 돼요.

20대의 무조건적인 도전과 경험을 강조하던 그녀는 지인의 일화를 소개해줬다. 방송 관련 직종에 종사하던 지인이 나이가 들어 공연 기획 분야로 이직하게 되었다. 관련 경력이 없던 그는 원하던 공연 기획사 대신 작은 소극장에 일을 얻게 되었다. 보수는 형편없었지만 단순히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최선을 다하던 찰나, 국내 제일의 공연 기획사와 함께 일할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고 그의 업무 능력을 보고 스카우트된 사연이었다. 결국, 그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이것이었다. 기회는 가만히 있을 때 찾아오는 요행이 아닌, 자신이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불안을 껴안고 인문학으로 소통하라

20대 중반 공채 아나운서 16기로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금희는 KBS의 인기 아나운서로서 자리매김했다. <사랑의 리퀘스트>, <TV는 사랑을 싣고> 와 같은 프로그램의 메인 MC 자리를 맡으며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것. 하지만 2000년 KBS를 그만둘 때까지 꼬박 5년이 넘게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다. 휴가는커녕 밥 먹고 잠잘 시간도 없이 방송하는 기계처럼 살았다. 그 가운데 많은 방송을 맡게 되고 승진이 빠른 그녀에게 색안경을 낀 시선도 많았다. 지금 그녀는 화려한 프리랜서 선언이나 그럴듯한 스카웃 제의 없이 퇴사했고, 그녀는 현재 모교인 숙명여대에서 겸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5년부터 매 학기 학생들과 일대일로 티 타임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20대가 기성세대보다 얼마나 더 불안감이 극심하고, 경제적인 안정에 대한 욕구가 강한 지 절감한다. 그 요인은 IMF에 의한 트라우마에 기인했다고 분석하며, 그녀는 자신의 불안한 기억을 떠올렸다.

저 역시 프리랜서로서 내일 방송이 끊기면 어떡하나 고민해요. 불안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음에도 제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인식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불안한 감정이 제 삶의 일부이며, 이 불안을 안고 사는 게 결국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불안감을 딛고 일어설 수 있던 비결로 ‘인문학 공부’를 꼽았다. 매주 지인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을 통해 여러 인문학 서적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히고 있다. 사람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문학이야말로 어떤 시대에서나 통용되는 ‘실용학’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요즘 20대가 겪고 있는 소통의 어려움도 인문학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어요. 인간을 통찰하는 학문을 익히는 것이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니까요.

사랑? 그저 뛰어들어라

20대의 감정 소모가 적은 ‘쿨’한 스타일의 연애관에 대해서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36.5℃ 인간 둘이 만나 73℃로 끓고도 식는 연애가 어떻게 쿨할 수 있나요? 감정적인 소모가 무서워 쿨하게 지낸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처받는다는 말과 동의어죠. 당시 입은 상처는 극복하기 힘들지만, 그 상흔들이 모여 마치 지문처럼 인생이라는 것을 구성하기 마련이에요.

사실 그렇다. 태생적으로 이기적이기 마련인 인간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녀는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역시 기적적이라며 상처받을지라도 용기를 내 그 기적의 과정에 동참할 것을 권고했다. 그것이 젊음의 특권이란 말과 함께.

그녀와의 대화는 늘 편안함을 동반했다. 아직 그녀의 가슴엔 아직 다 나눠주지 못한 애정이,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이 가득한 까닭이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칼럼니스트인 정혜신이 그녀를 ‘타인의 눈을 맞추고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의 진솔한 마음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방송인’이라고 평한 바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한 이금희식 소통, 굳이 아나운서란 직업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세상을 향한 우리 모두의 임무가 아닐까?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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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서야 이걸 봤네요 ㅠㅠ
    저는 아나운서가 꿈인 한 학생입니다
    숙대 학생들이 너무 부러워지는데요 ㅠㅠ? 일대일 티타임이라니 흑흑
    인터뷰 잘봤어요~!
  • 박상영

    저 역시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인간성에 감동하곤 한답니다ㅋ 기사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ㅋ
  • 열무씨

    언제나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이금희님. 같은 여자로써 늘 존경합니다 ^^
  • 박상영

    @남우리 기자, 남우리 기자님도 후회없이 사랑하는 젊음이 되세요 ^_^ㅋㅋㅋㅋ
  • 남우리

    박상영 기자님이 인터뷰 후 이금희님의 음성지원과 함께 저에게 들려주셨던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는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을 울릴 정도로 감동적이었답니다 ! 이런 좋은 이야기를 직접 듣고 오신 박상영 기자님이 엄청나게 부러웠는데, 이처럼 글로 럽젠 가족들에게 잘 전달해 주셨군요! 좋은 글 감사해요
  • 박상영

    @이주현 기자 감사합니다 이주현 기자님ㅋㅋ젊음의 특권을 마음껏 즐깁시다 우리!. @오메가 블라스트, 이금희 님께서 너무 주옥같은 말을 많이 해주셔서 저는 주워담기도 벅찼답니다. 개인적으로 더 잘 썼으면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되세요 모두!
  • Omega_Blast

    유명 아나운서와 교수라는 타이틀을 제외하고서라도,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20대(특히 여성들에게)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롤모델로서의 반듯한 모습을 간직하고 계신 이금희교수님!! 실제로 뵙고 얘기한 듯한 진솔한 인터뷰라 좋네요~, 기자님 완전 쨔응-! >_< ㅋㅋㅋ
  • 이주현

    목소리만큼이나 인상도 푸근하신 이금희 누님..(?!)
    마지막. 그녀의 연애관에 대한 얘기가 너무나 인상 깊네요.
    사랑하고 상처받고 또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그런거겠죠. 이금희씨의 인터뷰를 통해 또 한번 느끼고 갑니다.
    멋진 인터뷰기사입니다 :)
  • 박상영

    @김형진 기자, 우리 모두의 영원한 누님이죠! @진장훈 기자, 저도 그 대목을 들으며 가슴이 미어 차올랐던 ㅠㅠ 사랑하며 삽시다! @엄정식 기자, 이미 리더의 자질을 갖추셨군요 엄기자님! 본받아야겠슴당ㅋㅋ
  • 엄PD

    불안을 안고 사는 것이 결국 인생이고 이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금희 누님. 불안한 20대를 향해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 또한 이 불안감을 인문학 서적으로 극복하고 있어요. 미래에 대한 고민과 인간관계에 힘들어질 때 저를 지켜주는 호신술과 같죠. 상영 기자님 기사 잘 읽었어요.^^
  • 럽젠집착남

    '당시 입은 상처는 극복하기 힘들지만, 그 상흔들이 모여 마치 지문처럼 인생이라는 것을 구성하기 마련이에요.'
    이 대목 열 번은 넘게 다시 읽었습니다. 비단 사랑 뿐 아니라, 모든 곳에 적용되는 말 같아요... 명언입니다. 이금희 누님과 티 타임을 갖는 학생들이 부럽습니다.
  • 으헣

    와! 금희 누님이군요ㅎㅎㅎㅎㅎ 글 잘 보았습니다.
  • 박상영

    @황태진 기자 골드샤워한 제 기사 잘 보셨나요?ㅋ 황태진 기자님은 이미 충분히 뜨거우신 것 같습니다 ^^
  • 황태진

    금가루를 발라 놓았던 박상영 기자님, 드디어 올라왔군요 하하, 진정한 소통의 감정을 글로 잘 풀어내주셨어요 잘 읽었습니다,쿨할 수 없다 기억할게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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