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늪에 빠진 이에게, 변종모 ‘손, 건네다’


막무가내다. 그는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그는 그 만큼 열정적이었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그는 벌써 이만큼 가까이와 있었다. 열심히 살지 말란다. 무던히도, 간곡하게도 그는 열심히 살지 말라고 하였다. 2006년 11월, <짝사랑도 병이다>라는 인도 여행 수필집에 이어 금년 6월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의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누구보다 많은 나라와 지역을 발을 디디고 훑고 다닌 그지만, ‘여행’보다는 ‘자신’에게 더욱 관심이 많아 보였다.

카페에 몸을 비비다가, 훌쩍 여행을 떠났다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돌아와서는 불러주는 곳에 가서 방송하고, 강연도 한다. 나이 사십의 변종모 씨 모습이다. 이십 대 초반부터 여러 광고 대행사의 AD(Art Director)로 일해왔지만, 그는 2년에 한 번 꼴로 사표를 쓰고 나왔다. 이번이 일곱 번째 사표라고 했다. 일이 천성에 맞지 않냐는 질문에 그건 아니라고 한다. 도대체 그럼 왜 자꾸 뛰쳐나오는가?

“일이라는 건, 계속하다 보면 일이 아니라 짐이 돼요. 집단, 단체 속에서 하다 보면 말이죠. 그리고 여러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명 무리하게 되고, 가끔은 억지를 부려야 하죠. 저는 분명 제 일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집단과 단체는 분명 개개인을 무리하게 강요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것을 즐기면 모를까, 그런데 의문이 들어요. 우리는 참으로 많이 열심히 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또한 그것이 엄청나게 숭고한 것처럼 말하죠. 수많은 회사, 집단에서 그 숭고한 행위를 강요하는데, 우리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숭고한’ 일을 하고 있나요?”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이야기에 대학생 입장에서 대학생에 대해 물었다. 참고 견디며 취업을 위해 부단하게 단련해야 하는 현 우리시대 대학생에 대해 말이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저도 젊었을 때 그랬습니다. 많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게 행동하려 애쓰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계획을 꼼꼼히 짜고 부단히 해도, 그 계획은 줄지 않습니다. 무한히 생겨나죠. 이것이 끝나면, 저것이 생깁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끝이 없는 거죠. 그런데 그런 시간 동안 여러분의 과거, 기억들은 그 만큼 빠르게 사라져갑니다”

작가 변종모 씨는 여행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과거의, 자신을 돌아본다고 한다.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자세히 다시 되돌려 본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잊혀져 가던 자신에 대한 많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아주 조금씩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가 없다고. 왜냐하면 그건 그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성을 상실한 채, 수많은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회사’에 달려드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했다. 그런데 따끔한 일침도 이어진다.

“사회구조의 문제이지만, 여러분은 그럼 왜 그 쳇바퀴에서 뛰고 있습니까? 저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잠시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가 여행에 대해 내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켜 줄 거란 상상은 지극히 환상이며, 그곳은 신기한 곳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도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마을에, 그 집안에 들어 가듯이 매무새를 단장해야 한다고 한다.

“여행하다 보면 대학생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사실 화가 날 때가 많아요. 미국에서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나 시켜 받을 때도 굽실굽실 대단한 것 받는 것처럼 땡큐를 연발하면서, 인도에서는 릭샤(인도의 인력거)꾼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면서 툭툭 어깨를 치고, 주인 행세를 하죠. 릭샤꾼은 연령층이 다양하지만 60대 할아버지까지 있습니다. 비단 학생뿐만은 아니지만, 제가 릭샤꾼이었으면 뺨을 한대 후려 갈기고 싶더군요(변종모 씨는 속어를 속어답게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인도에서 8개월 간 살다 온 필자는 듣는 내내, 예전의 모습에 부끄러웠다. 고개를 끄떡이며 듣고 있었지만 송곳같이 마음속에 파고 들었다.

팔판동 카페에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진들은 그곳 현지 사람들의 얼굴이나 생활의 단면을 보이고 있다.

“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그곳의 생활상이나 사람들에게 들이대어 묻지도 않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이 많아요. 분명 그 사람들은 그런 짓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사진을 공부하거나 전공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 전에, 카메라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전에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그 사람과의 인사, 그리고 대화입니다. 사실 그래야 좋은 사진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굳어있는 동상을 찍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작가 변종모 씨는 단호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상식이란 것이었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설레고 낯선 행위를 통해서 나 자신을 탈피하고 또 다른 사람이 되어 행하는 그 모든 것들이 참으로 비상식적이라는 말이었다.

‘여행’이란 단어는 참으로 진부하지만, 언제나 설렌다. 그 단어에 대한 정의도, 의미도 스스로 만들어갈 일이다. 작가 변종모 씨도 그렇다. 그는 정말이지 ‘스스로’ 삶 속에서 피어나는 여러 단어에 의미와 색깔과 가치를 입히고 있었다. 여기 나이 사십에 그렁그렁 잘 살아가는 역마살 낀 히피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무엇을 계획하고 있다.

글/사진_허정준/15기 학생기자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0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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