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영 | 열정적으로, 인내하며, 재미있게

사진_이미선/제19기 학생기자(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영상_전영은/제19기 학생기자(서강대학교 종교학과)

LG전자 두바이 법인 김덕영 법인장이 그의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 한 손에 펜을 쥐고 있다. 안경을 쓰고, 다소 까만 피부에 이마가 조금 벗겨져 있으며 환하게 웃는 미소가 편안해 보인다. 흰색과 푸른색의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으며, 그의 앞에는 다이어리와 노트북이 놓여 있다.

웃는 표정을 따라 패인 주름에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만날 수 있었지만,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눈동자는 영락없이 장난스런 소년의 눈이었다.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다양함만큼이나 그의 삶도 반짝반짝, 여러 색으로 빛난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시간을 버티고 인내하며, 재미있게 살아왔다는 그, 녹록지 않은 내공을 자랑하는 김덕영 LG전자 두바이 법인장을 만났다.

시간과 열정이 만들어낸 현재

그는 어린 시절을 전라도와 만나는 경상도 끝자락, 섬진강이 흐르는 하동에서 보냈다. 기차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타 봤다던, 그야말로 시골소년이었다.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김덕영 법인장은 입학하면 회사에서 장학금을 주던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LG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녔지만 공부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김덕영 법인장의 책상 위에 놓인 LG전자 캘린더와 화분 하나를 클로즈업한 사진. 인터뷰 당시던 8월의 달력이 펼쳐진 채 세워져 있고, 달력 안에는 LG전자의 어느 해외법인 간판으로 보이는 판넬이 서 있고 그 안에 LG 로고가 그려져 있다. 달력 옆에 놓인 화분은 연두색으로, 초록색과 갈색의 나뭇잎이 물을 먹지 못한 듯 시들하게 화분에 붙어 있다.

“학교는 그냥저냥 다녔어요.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때는. 그러다 졸업해서 동기 3명과 함께 LG의 같은 부서에 입사했었어요. 그 3명은 공부도 일도 굉장히 잘했는데 저는 4년간 전공 공부를 게을리했던 터라 늘 비교당했었죠. 같은 곳에서 같이 공부했는데 왜 저만 못 하는 거냐며…(웃음) 이후로 일도 열심히 하고 선배들에게 열심히 배웠어요. 그때부터 재미있게,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LG 입사 이후 그는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새벽에서야 끝나는 일과를 겪어왔다. IMF도 LG전자에서 겪어냈고, 모두가 새로운 해를 축하하는 12월 31일 밤을 7년 동안 매해 같은 구내식당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김덕영 법인장은 힘들기만 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덕영 법인장이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는 회의실 책상 앞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색 재킷을 입은 김덕영 법인장이 책상에 놓여 있는 수첩과 명함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명함을 가리키고 있다. 무언가 이야기하듯 하는 표정이다.

“재미가 없으면 못 해요. 그냥 버티는 것도 한두 해죠. 무슨 일이든 자기가 재미없으면 할 수가 없어요. 바쁘고 힘들기는 했지만 저는 참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는 당시 새벽 2, 3시에 퇴근하며 올려다보던 밤하늘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늦게까지 일하고 녹초가 될 법도 한데 차가운 밤바람과 반짝이는 별을 보면 ‘오늘도 참 열심히, 재미있게, 치열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뿌듯했던 기억은 아직까지 그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그 기억, 누구보다 바빴던 치열했던 시간들, 그만큼 컸던 성취감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김덕영 법인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LG전자와 함께 더 큰 그림을 그리다

순박한 소년의 순수한 열정은 LG에서 알차게 여물어갔다. 학부 시절 재미를 붙이지 못하던 전공과는 다르게 업무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점차 본인의 업무이던 엔지니어를 넘어 영업에도 관심이 생겼다. 스스로에게 영업이 더 잘 맞을 것 같았고 잘할 자신도 있었다. 그가 LG와 함께 그리고 싶은 그림은 조금 더 컸다. 엔지니어 5년 차, 김덕영 법인장은 승부수를 띄웠다. 영업팀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강력한 승부수였지만 김덕영 법인장에게는 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예상대로 LG는 회사에 더 큰 공헌을 하고 싶다는 그를 붙잡았다.

김덕영 법인장의 사무실 한쪽을 촬영한 사진. 서랍장 위에 김덕영 법인장이 받은 트로피들이 나열되어 있고, LG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LG의 브랜드 트리 모형, 그리고 두바이의 상장인 배와 호리병 등이 함께 놓여 있다.

김덕영 법인장은 엔지니어를 거쳐 해외 영업팀, 해외 주재원, 그리고 현재 법인장까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나아가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그가 바라보고 달려온 비전은 무엇일까? 김덕영 법인장은 처음부터 하나의 비전만을 정한 것은 아니며 5년 단위로 계획과 목표를 세운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눈앞에 잡힐 듯한, 예측할 수 있는 미래의 비전이 끊임없는 자극이 되었고 그것이 그를 이끌었던 것이다.

“20년 후의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있을까요? 너무 멀어서 다가오지 않지요. 그런데 5년 단위의 계획을 세우면 1~2년 정도의 오차범위는 생겨도 결국 목표했던 곳에 가 있어요. 5년 정도는 지금 나의 능력, 나의 상태를 고려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두바이에 오게 된 것도 5년 계획의 한 부분이었죠.”

김덕영 법인장은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 5년씩 더해 지금 LG전자 두바이 법인장의 자리까지 왔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기회의 땅 두바이에서 여전히 순수한 열정을 계속해서 쌓아가며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LG전자 두바이 법인의 대표로서, 그리고 김덕영, 스스로의 끊임없는 도전으로.

Why 두바이? How 두바이?

그가 법인장직을 맡게 된 곳은 기회의 땅 두바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글로벌 기업들이 모여 경쟁하는 신흥 시장이다. 그러나 지금의 도시가 들어서기 전 이곳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었고, 그 역사도 실로 매우 짧다. 그런 두바이가 갑자기 신흥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덕영 법인장이 그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세계 지도를 보며 무언가를 설명하듯 지도 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지도는 오른쪽 위에 LG 로고가 새겨져 있고, 대륙 부분이 분홍색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각 나라를 표시하듯 나라 이름이 검은색으로 쓰여 있다.

“무언가 역사적인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천, 지, 인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합니다. 천운, 지리적 요건, 강력한 리더가 그것이죠.”

김덕영 법인장은 두바이의 성공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두바이는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중동의 중심부에 위치해 물류 이동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천운도 따랐다. 뛰어난 지도자, 알 막툼 가문을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두바이는 알 막툼 가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수도인 아부다비와는 다르게 두바이는 모든 면에서 자원이 부족한 도시였다. 당시 지도자였던 라시드 알 막툼은 두바이를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인프라를 확충하고, 대대적인 확장공사와 토목공사를 통해 ‘사막의 기적’이라 불리는 두바이 개발을 성공시켰다. 이후 알 막툼 가문은 대를 이어 두바이의 개혁을 이끌며 최첨단의 도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김덕영 법인장의 손을 클로즈업한 사진. 인터뷰 회의실에서 책상 앞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법인장의 모습이 보이고, 사진 중앙에는 그가 손을 펴고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살짝 오므린 모습이 보인다.

“알 막툼 가문은 가장 먼저 국민이 잘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좋은 리더란 바로 이와 같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국민의 고통을 돌아보고 불만을 최소화하며 비전을 제시하는 국왕과 마찬가지로, 리더는 팀원을 보살피고 그들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그에 따른 원대한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이죠.”

그러나 두바이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기에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발전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두바이 프리존(Free zone, 경제자유지역)에서는 해외기업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자국의 국민들에게 제품을 팔 때는 반드시 현지인 유통업자를 거쳐야 한다. 즉 라시드는 국민들이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자국민을 보호하고, 성공적으로 외국 자본을 들여올 수 있었다. 덕분에 두바이는 글로벌 기업들을 빠르게 끌어 모았고 지금과 같은 고도의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쉽지만은 않았던 두바이 도전기

LG전자 두바이 법인에 있는 한 LG로고를 클로즈업한 사진이다. 흰색 선반으로 보이는 판에 LG 로고가 새겨져 있다.

LG전자는 두바이에 진출한 첫 국내 기업이다. 불모의 땅이었기에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김덕영 법인장은 말한다. 한국 기업과 한국 제품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때문이다. 하지만 LG전자의 목표는 명확했다.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에 공급해 소비자들의 삶이 더욱 풍족해지도록 하는 것. 따라서 소비자들이 LG전자의 제품과 서비스의 우수성을 알아줄 때까지 좌절하지 않고 더 채찍질을 가했다. 마치 연애를 하듯, 순간의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인 미래를 기대하면서.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계속하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바늘로도 코끼리를 죽일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못하게 되면 다음 사람이 하면 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진심은 통하게 마련입니다. 또한 사람은 조직으로 있을 때 그 능력이 무한해집니다. 바늘 한 개보다 바늘 두 개, 열 개, 백 개가 더 강력한 법이죠. 두바이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팀이 있어 함께 배워 나가며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김덕영 법인장의 모습. 인터뷰가 이루어지고 있는 회의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김덕영 법인장이 보이고, 진지한 이야기 도중이었던 듯 두 손을 맞잡은 채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국내든 해외든 마케팅은 늘 어려운 것이다. 특히 두바이처럼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LG전자는 얼마 전 두바이에서 LG전자의 광파 오븐을 이용한 세계요리대회를 성공시키는 등 소비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덕분에 지금은 대부분의 고객들이 LG전자의 제품이라면 신뢰할 만큼 입지를 넓힐 수 있었다.

또한 한국, 한국인에 대한 현지인의 인식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국제품에 대한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했고, ‘한국’이라고 하면 일단 신뢰를 보낸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다고 말하는 김덕영 법인장. 그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지금처럼 높아진 것은 선배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덕영 법인장이 인터뷰 도중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수첩이 놓여 있는데 이는 반듯하게 접은 상태이고, 법인장이 두 손을 수첩 위에 둔 채 두 손을 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제가 생각할 때 한국인이라는 것은 엄청난 프리미엄입니다. 국가가 힘이 없어 국민들이 온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줍니다. 이러한 ‘코리안 프리미엄’을 여러분이 더 발전시켜서 다음 세대는 더욱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의 꿈, 그리고 청춘에게 고하는 한 마디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김덕영 법인장은 주저 없이 ‘두바이에서 LG전자를 더욱 성공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개인적인 목표를 묻는 질문에는 지금보다 더 큰 사업을 운영하고 싶다고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 차곡차곡 경험을 쌓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가능한 날이 오리라 믿는다고 말하는 김덕영 법인장.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온 만큼 남은 인생의 절반은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노력하며 이뤄나가고 싶다고 했다.

김덕영 법인장의 사무실, 그리고 그의 집무 모습. 푸른색과 흰색의 줄무늬 셔츠를 입은 그가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쥐고 수첩을 편 상태로 있다. 노트북과 수첩이 그의 가슴 앞쪽에 있고, 그의 왼편 책상에는 가죽 케이스에 덮인 스마트폰, 펜, 그리고 폰보다 조금 더 큰 수첩이 놓여 있다.

“여러분, ‘Passion’이라는 단어 아십니까? 열정을 뜻하는 passion이 아닌 고유명사 Passion 말입니다. 바로 ‘고통’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통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심적, 육체적 고통을 포함한 것입니다. 고통의 총체지요. 그 정도로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은 젊습니다. 고통스러울 만큼 꿈을 향해 passion을 가지고 Passion을 참아내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김덕영 법인장이 인터뷰 도중 누군가를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턱을 살짝 잡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덧붙여 김덕영 법인장은 ‘compassion’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접두사 ‘com’은 ‘함께’라는 의미, 즉 compassion은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는 것,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함을 가지길 당부했다. ‘Passion(고통)을 극복하고 compassion(협력)하며 passion(열정)을 다해 노력하라’는 그의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정확했다.

세계 각국의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출하는 21C 신흥시장 두바이. 온통 사막뿐이던 두바이가 ‘사막의 기적’을 일으키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듯, LG전자도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불어 멀지 않은 미래에 김덕영 법인장의 꿈과 비전이 두바이의 사막을 촉촉하게 적시길 기대해 본다.

| 두바이에서 만난 LG전자 두바이 법인, 그리고 김덕영 법인장님의 인터뷰 현장을 영상으로 담아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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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내내 재치 있고 편안하게, 그러나 동시에 진지하게 대답해주신 김덕영 법인장님, 기사로 다시 보니 너무 반갑고 멋있으세요! *_* 인터뷰 당일이 2013년 8월 13일이었는데, 김덕영 법인장님께서 오늘은 2013.8.13, 나의 2018.8.13은? 그 날은 뭘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5년 후 지금을 상상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5년 단위 계획 세우기를 통해 목표했던 곳에 꼭 도달하고 싶어요. 성공할 때까지 하면 결국은 성공! 우이공산을 마음 깊이 새길게요! passion과 Passion의 뜻, 절대 못잊을 것 같아요. 두바이 프리미엄 코리안 드림의 산증인! 저와 개그코드도 통했던(DYDY..ㅎㅎ) 멋진 김덕영 법인장님의 인터뷰 잘 봤습니다 :)
  • 꿈꾸는소년

    정말 좋은 기사 잘읽었습니다. 메시지가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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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혜

    그렇죠? 특히 Passion과 Compassion이라는 단어에서 저렇게 많은 의미를 배울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에요. 꿈꾸는소년님도 Passion을 가지고 꿈을 꾸고 이뤄나가시길 바랄게요ㅎ 감사합니다 꿈꾸는소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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