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동 l 광대의 외톨 희생

사진 _ 황경신/제16기 학생 기자(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07학번)

2012년 상반기, 이 세상 모든 여인의 가슴을 뒤흔든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바로 <내 아내의 모든 것>. 그간 인상 깊은 연기로 각인됐던 배우 류승룡(장성기 역)의 이름에 ‘섹시’를 얹힌 주인공이다. 배우 임수정을 뒤로 안으며 소의 젖을 짜는 현란한 테크닉,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를 부르며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은 어떠한 노출 없이도 짙은 에로티시즘을 내뿜었다. 이 치명적인 매력을 만든 진짜 장본인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민규동 감독이다. 이 감독, 과연 얼마나 섹시할까?

류승룡 씨를 캐스팅했을 때 여자 스태프들이 많이 반대했어요. 원빈 같은 카사노바를 생각했는데, 부르투스 같은 아저씨가 된 거에요. 그래서 전 전혀 섹시하지 않은 이 남자를 영화를 통해 정말 섹시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하비에르 바르뎀부터 양조위까지 매력적인 남자의 특성을 입히기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했어요. 장성기의 섹시함은 여자에 대한 깊숙한 이해처럼 보이지만, 그건 정말 단순한 이해거든요. 여자를 성적 대상, 정복의 대상으로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없어요. 이미 다 정복한 장성기는 보통 남자들이 볼 수 없는 면을 건드리죠.

진한 외로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의 실체는 아쉽게도 섹시하진 않았다. 그런 그가 장성기라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섹시해서가 아니라 외로워서다. 그는 연정인(여 주인공)의 고독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연정인의 외로움은 곧 그의 외로움이었으며, 연정인은 바로 민규동 감독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여주인공 연정인은 저를 닮았다고 생각해요. 외로워서요. 누군가를 늘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직업인데,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외로움 속에 살고 있죠. 그리고 한때는 매력적이었지만, 지금은 매력을 잃어버린? ‘내가 언제까지 매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 젊은 감독, 좋은 영화도 많은데 난 벌써 늙다리, 꼰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럴 때일수록 영화를 더 만들어서 욕을 먹든, 비판을 받든 계속 사람들과 만나면서 침묵하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요.

그는 참 모순된 사람이다. 외로움을 이겨내고자 끊임없이 영화를 찍는다고 했지만, 영화를 하면서 더욱 외로움이 커졌다. 이해 타산적인 영화 제작 구조의 한계로 인해 본원적으로 가진 그의 외로움은 더욱 심화하였다. 그의 영화에 유독 외로움이 가득한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를 하면서 특히 더 외로워진 것 같아요. 영화는 스태프들이 계속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끝나면 다 흩어지잖아요. 대학 시절에 공연할 땐 주제에 깊이 동의하는 친구들끼리 했는데, 영화는 각자 삶의 수단인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통해 자기의 자양분을 최대한 많이 뜯어 가려고 애쓰죠. 많이 뜯어가지 못하면 상처를 받기도 하고요. 영화가 실패하면 다 남 탓이고, 성공하면 다 자기 덕인 냥 말이에요. 여러 제작 구조 때문에 영화를 한 뒤 말수도 많이 줄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어요. 허탈감도 좀 심하고요.

그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고독을 느끼며, 영화와 모순된 자신의 삶으로 또 한 번의 고독과 마주한다. 이처럼 영화는 끊임없이 그의 삶을 메마르게 만든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영화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영화 주제가 ‘소통하자고’, ‘행복하기 위해서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선입견에 눌러 사람들을 공격하지 말라고’ 이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일상에서 제가 그렇게 살지 못할 때 가장 외로운 것 같아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죠. 언행일치가 안되는데, 얼마나 허무한 짓이에요. 실제 내가 아닌 영화로만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얘기한다는 순간이 느껴지면, 한없는 고독에 빠지게 되죠. 스스로 모순에 우울해져요.

20대 시절, 나는 광대였다


아마도 그의 이런 외로움은 모두 영화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깨달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어떤 관습이나 선입견, 잘못된 정치 체제 등 우리 인생의 장애물을 뛰어넘게 도와주는 깨달음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건 현재의 어떤 불편한 진실까지도 감수하고 외칠 수 있는 용기였다. 20대 역시 그에겐 용기가 있었다. 바로 춤으로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께 거수경례를 하는 암흑기였어요. 고등학생인 전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 40분까지 학교에서 지내며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았죠. 당시 금지된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몰래 읽는 게 굉장한 저항이라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살았죠. 그러다가 대학에 와서 제 인생이 바뀌었죠. 가장 큰 계기가 바로 춤이었어요. 어느 날, 제가 속한 동아리에서 구로공단 파업 위문 공연을 가서 연설하고 구호를 외치는데 너무 형식적인 거예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가서 얘기했어요. “제가 여기서 춤을 출 테니 박수로 응답해주세요!”라고.

자, ‘신림동 황금허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문득 다른 집회에서 본 우스꽝스러운 춤이 떠오른 그는 정신없이 춤을 추었고, 일동 기립박수란 영예를 얻었다. 등줄기에 흘렀던 식은땀은 경악에서 환희를 변모했고, 그는 12월에도 반팔을 입는 뜨거운 남자가 되었다.

학교에 돌아오니 행사가 몰아치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렇게 여러 공연을 나가면서 춤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전국 대학을 돌면서 춤 잘 추는 사람을 만나 배틀하고, 그 사람을 연구하고 그랬어요. 그 이후 제게 ‘신림동 황금 허리’라는 별명이 붙었죠. 그때 제가 허리를 한번 튕기면 2백~3백명이 쓰러지고 그랬어요.(웃음) 그때 너무 열심히 해서 지금은 허리가 안 좋아요.

그때의 열정은 오래도록 그의 곁에 남아 어려움을 이겨내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그는 참 낭만적이었다. 춤을 추며 별을 보던 그때가 어쩌면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지금보다 행복했을는지도 모른다.

4학년 때 마지막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제 대학생활 은퇴 공연이었죠. 공연 전날, 교정 바닥에 다 같이 누워서 별을 보며 지금 보는 별을 기억하자고 했죠. 그때의 기억이 제겐 저도 알지 못했던 모습을 가장 많이 꺼내봤던 시절인 것 같아요. 그때의 에너지가 지금의 힘든 순간을 버티게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20대를 광대라 정의했다. 자신을 희생하며 누군가를 웃겨야 하는 광대의 소명, 그것의 실천을 위해 그는 파업에 지친 구로공단 여공 앞에서 춤을 추었다. 덧붙여 세상에 지친 사람들 앞에서 불편한 진실을 담은 자신의 영화를 선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광대처럼 누군가를 즐겁게 하는 것이 나의 소명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렇게 ‘광대’스러운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 그런 존재에 대한 소명이 있었죠. 너무 어둡고 무거운 세상이었기 때문에,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에게 20대의 남은 아쉬움은 오직 하나, 연애를 많이 못했던 거다. 당시 그에게 연애는 사치였다.

20대에는 연애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때는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죠. 다 같이 행복하고 평등한 세상이 오지 않으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미래도 너무 어두울 것이기 때문에, 그 세상을 앞당기는데 내 젊음을 완전히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사로이 연애를 즐기는 것? 중요한 의무를 반기하는 것이라 여겼죠. 지금 생각해보니 속은 것 같아요.(웃음) 불행했던 20대였어요.

그는 연애는 인생 일부이기 때문에 충분히 경험하고, 판타지를 갖고 이상향인 한 명을 향해 달려가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런 건 없다고, 지금 파트너가 내 인생의 최종적인 파트너가 아니란 비밀을 알고 나면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알 거라면서.

그러고 보니 당시엔 꿈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거죠. 공연을 하나하나 만드는 것 자체에 온 에너지를 다 썼고 거기에 스스로 감동하였어요. 당시 러시아 소설을 많이 읽고, 프랑스 혁명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죠. 지금 생각하면 참 로맨틱한데, 당시 전 혁명을 꿈꿨어요. 우리 사회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혁명의 작은 톱니바퀴가 될 수 있을지∙∙∙ 그런 근원적인 고민을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이타 정신

활활 타오르던 그의 20대에도 군대라는 암흑이 찾아왔다. 이상과 예술을 공유하던 친구들과의 단절, 폭력으로 도배된 군대의 어둠 속에서 그는 운명적으로 히치콕 감독을 만났고, 그를 통해 영화라는 새로운 빛을 발견했다. 현재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히치콕이다.

부산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근처에 조그마한 시네마테크가 있었어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히치콕 감독을 만났죠. <새>라는 영화를 보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데이트하기 위해 보는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다양한 장르의 영화, 깊이 있는 영화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은 그의 첫 작품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실상 첫 작품은 한겨레문화예술센터의 졸업작품 <Herstory>이다. 시작부터 그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이야기를 조금씩 건드리기 시작했다.

서동진 씨라는 커밍아웃한 분이 논문을 썼는데, 그걸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게이의 삶이 어떤지, 우리의 인식에 숨어있는 선입견, 편견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게 되었어요. 미지의 영역인 이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어서 <Herstory>를 찍게 되었죠. 만드는 사람들조차 선입견에 많이 사로잡혀 있었어요. 이성과 본능 사이에 갈등이 많았기 때문에 찍으면서도 스스로 느끼고,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 것을 경험하게 되었죠. 그 이야기를 확장해서 데뷔작인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어요.

영화를 시작하면서 품었던 목표의식은 그의 첫 영화 <Herstory>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를 억압하는 관습을 뒤집고자 했던 그의 영화. 당시 상당히 파격적이었던 동성애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 수 있던 것은 그가 세상을 대면하는 자세 때문이다. ‘지금 믿고 있는 진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가 있다.’라는 것. 곧 영화를 통해 그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와 선생님이 잤는데 아이가 사랑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구속하지 말라고 했어요. 엄청난 비난이 있었죠. ‘자면 왜 안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거에는 13세 여자가 시집가는 일이 보통이었는데, 50년 만에 너무나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죠. 이런 윤리적 기준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자들이 만든 질서인데 우리가 많이 속고 있어요. ‘속지 말아야 한다’ ‘절대적인 진리에 관해서 계속해서 질문해야 한다.’라는 태도로 살고 있고,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불편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감독이 된 지금, 그에겐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움을 경험하는 영화의 매력 때문에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

월급이 없다, 연금이 없다, 퇴직금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이 가난∙∙∙(웃음) 그 대신 어디에도 매여있지 않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많은 사람을 동시에 만날 수 있잖아요. 그런 게 매력인 것 같아요.

그는 정녕 이타적이었다. 20대의 삶을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희생으로 보냈으며, 영화감독이 된 후에도 타인의 행복을 위해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다. ‘남의 인생을 방해하지 않는 영화를 끊임없이 만들고 싶다.’ 꿈마저도 이타적인 영화감독 민규동이었다.

가치 있는 화두를 다루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너무 많은 영화가 쏟아지잖아요. 잘못하면 공해가 될 수 있어요. 남의 인생을 방해하는 허튼 영화라면 나쁜 짓이니까,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저는 그냥 건강하게 계속 다산의 작가? 아이를 쑥쑥 잘 낳는 그런 감독이 되고 싶어요. 나이 들어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막상 인터뷰가 끝나고 그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섹시했다. 심지어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카사노바 장성기보다도.

민규동 감독과의 인연은 <제1회 한겨레문화예술제 한터드림>
제1회 한겨레문화예술제 <한터드림>는 영화지망생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대중들과 함께 소통하는 자리였다. 특히 세션1 ‘멘토를 만나다’에서는 한겨레문화예술센터 영화를 처음 시작한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의 특강을 비롯하여 <커피프린스>, <골든타임>의 MBC 이윤정PD, <오디션>, <드레스코드>의 천계영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세션1을 통해 노련한 문화예술인의 경험담을 들어볼 수 있었다면, 세션2에서는 시네키드의 열정이 담긴 한겨레영상아카데미 졸업영상을 보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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