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호 | 관조하는 방랑 청춘

길가에 피어있는 들꽃과 잡초를 보는 셰프 임지호의 눈이 빛난다. 상처가 가지 않게 세심하면서도 날렵한 손길로 들꽃과 잡초를 한 움큼 집어낸다. 이름 없어 보이는 들꽃과 잡초들은 오늘 밤 누군가의 힐링 푸드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될 것이다.

굳은 주름은 원래 그곳에 있던 것 같았다. 마디 굵은 두 손, 백발이 성성한 머리, 주름살이 층층이 패인 얼굴∙∙∙ 그의 첫인상은 ‘요리사’라기 보다는 ‘기인’에 가까웠다. 열한 살 가출 소년에서 중동 건설현장의 총 주방장이라는 이색적인 이력을 지나,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세계 최대 요리 페스티벌인 <마드리드 퓨전>에 참가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드물고 그래서 특출했다.

가출 소년의 긍정적 치열함

1955년 출생, 경북 안동 태생의 그는 열한 살 때 집을 나왔다. 헤어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그의 발걸음을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세상 속으로 향하게 하였다. 그 후로 약 40년간 이어질 방랑은 시작했다. 방랑식객 ‘임지호’의 탄생이다. 집 나온 어린 소년은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배웠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요리’라는 학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집 주방에서부터 한식집 주방까지, 설거지하고 재료를 다듬으면서 그는 요리라는 학문을 배웠고, 임지호 ‘요리’의 실험을 시작했다. 그에게 ‘요리’는 하드보일드한 세상에서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통로였다.

돌아보면 글쎄∙∙∙ 나의 10대 후반, 20대 초반은 굉장히 치열했던 것 같아.


정규 교육과정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그렇기에 다른 그의 또래 친구가 가질 수 없는 절박함이 심연에 늘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저 아이들은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는 무엇인가? 나는 좀 더 치열해야 하지 않을까?

입시생들이 ‘삼당사락’이라는 말을 새기며 공부하고 있을 무렵, 그는 새벽잠을 쫓으며 그만의 요리법을 연구하며 나약한 자신을 채찍질했다. 가끔 이유 없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냉수마찰로 누르며, 그는 스스로 다스렸다. 돌이켜 보면, 그 이유 모를 분노가 삶을 지탱하는 열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 그래야 후회 없어

머리로 가는 것은 후회를 동반하지만, 가슴으로 가는 것은 후회를 동반하지 않거든.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문득 머리와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방랑과 떠돌이 생활에 대한 질문에 대한 현답이었다. 가슴으로 사는 것은 심장의 울림을 듣는 것이며, 그 소리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 그에게는 무수히 많은 울림을 들렸다. 그 울림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생각해야만 들릴 수 있었다고 그는 증언했다. 그래서 요리사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안정적 생활이 가능했을 무렵, 그는 그 자리를 박차고 다시 방랑하기 시작했다. 중동 건설 현장에서 고향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현장 노동자의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에서,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 속에서, 그는 명징한 울림을 들었다. 그때부터 닦여졌다. ‘정해져 있지 않은’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사람만의 의미를 선물하는’ 그의 요리 철학이. 안정적인 성공에 대한 후회도, 큰돈을 벌 수 있었던 기회도 그에게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았다.

물론 절망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 리 없었다. 성공의 기회를 차버리는 대신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며 풀과 요리를 연구한 선택에,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은 엄습했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그만의 철학으로 위기를 넘겼다.

80년을 살아도 실패하는 게 인생인데, 스무 살 혈혈단신이 실패한다고 절망하면 뭐가 남겠어? 좀 뻔한 얘기지만, 절망할 때마다 거기서 딱 끊고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풀을 뽑으면 그 자리에는 또 다른 풀이 생기기 마련이잖아? 인생도 같은 것이지.


마음이 절망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의문이다. 마음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든 순간, 순간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가족도 없이 전국방방곡곡을 방랑하던 그를 살게 한 것은 오기도, 끈기도 아닌 단순한 변화였다. 그는 이것을 ‘행복’의 원리라고 말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에서도 보이듯,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분명 기회와 삶을 전환하는 계기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

밥을 얻어먹는 것도 행복한 것이고, 잘 자리가 없어 밖에서 천 쪼가리 하나 덮고 자도 행복한 것이고, 뒷간에서 청소해도 행복한 것이지.

어려웠던 시기에, 그가 나쁜 생각을 품을 시간도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행복’이라는 마음의 작은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치열하게 살고, 학점 몇 점에 서로 경쟁하더라도 이것을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그것 역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대는 흙이자, 돌이자, 씨앗이다

그가 말한 ‘행복’의 원리라면, 20대의 불행은 용납해선 안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린 현실을 이유로, 그에게 동의하는데 조금은 주춤해진다. 이때 쐬기를 박듯 그는 20대를 흙과 돌과 씨앗에 비유하며 20대 행복의 근간을 제시했다.

이 세상에 어떠한 흙도, 돌도, 씨앗도 똑같이 생긴 것은 없는 거야. 다들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지. 20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생김새도 다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것처럼, 각기 발산할 수 있는 에너지도 다른 거야. 우리는 다 하나의 자연이잖아, 안 그래? 그걸 망각하면 안되는 거야. 우리는 다 소중한 거거든.

누구보다도 심한 인생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치열하게 인생의 회전목마 위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던 것이 그의 20대였다. 그는 누구나 폭발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는데, 요즘 20대는 자신만의 에너지를 발견하기도 전에 쉽게 좌절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주 기초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그것을 우린 잊고 잃고 살아온 게 아닐까.

약간만 벗어나서 자신을 관조하면 좋겠어. 자신에게 있는 놀라운 에너지와 삶에 대한 의욕은 그렇게 할 때 더 쉽게 찾을 수 있거든.


그는 말한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오랜 연륜이 필요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하나의 생명체가 희생하여 하나의 생명체의 삶을 유지시키고, 그 생명체가 죽어 또 다른 생명체의 탄생에 도움을 주는 거라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이 ‘순환’의 원리를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많은 연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다. 셰프 임지호는 지금도 음식을 통해 배우고, 끊임없는 교훈을 얻고 있다.

인생이라는 것은 누가 어떻게 살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 다 각자의 길이 있다는 거지.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것만 종일, 1년 내내 생각해봐. 몸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녀도 생각은 항상 그것만 생각하라고. 그러면 언젠가 거짓말처럼 자기가 열망하던 길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할 거야.

저녁 시간에 요리할 재료들을 점검하고, 잠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돌아서는 그의 모습에서 아직도 음식에 대한 열망 하나만으로 전국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던 청춘의 모습이 스쳤다. 그는 오롯이 청춘이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한아름

    럽젠기사에는 항상 리더분들의 손을 훔쳐보는 맛이 있다는! 글을 읽다보니 임지호 쉐프님의 손으로 준비되는 음식은 어떤 맛일까 상상하게 되네요. 헤헤. 누군가에게 그 사람만의 의미를 선물하는 요리철학이 너무 마음 깊숙이 와닿네요. 쉐프님 못지않게 맛깔나는 기사 써주신 지환기자님, 잘 읽었습니다 :-D
  • Mary J. 마징가

    TV를 보다가
    “사는 게 손해 본다 살면 그게 좋은 거다.”
    라는 임지호 선생님 말씀에 뭔가 가슴이 뭉클해서,
    서울에 있는 식당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임지호 선생님은 못 뵈었지만,
    사모님께서 두 분의 철학이 담긴 요리에 대해서 하나 하나 친절하게 설명 해 주셨었습니다.
    미각적으로 뿐 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또 가슴으로도, 맛있는 음식으로
    감동과 즐거움을 한 아름 안고 왔었던 기억이 나네요.
    가슴으로 하는 선택… 정말 멋있는 분입니다.
    댓글 달기

    유지환 기자

    가슴으로 하는 선택,
    혼자서 걷다가 가끔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어린 나이에 하는 하나의 치기와 공상 정도로만 생각했던
    제 자신의 과거들이,,,선생님 말씀을 곰곰히 되씹어보니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목소리가 멋지신 분이세요

  • 이채원

    기사 잘 읽었습니다! 강렬한 느낌을 주는 인터뷰에요~
    요새 '20대에 있어서 뭔가 실패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답을 얻었네요^^
    대신 정말 치열하게 해 본 다음에야 가능한 말이겠죠?
    그림도 너무 인상적입니당!! 멋있으세요~ㅎㅎ
    댓글 달기

    유지환 기자

    뭐든 치열하게 하는게 좋은거죠
    공부든, 사랑이든, 뭐든...오기가 생기는 대로 하면
    그중에서 자신의 뭐라도 건지지 않을까 생각함다.ㅋㅋㅋㅋ

  • 최지원

    머리로 가는 것은 후회하지만 가슴으로 가는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라..!
    가슴이 뛰는 쪽으로 가야겠군요. 너무 멋진 말씀이세요!
    댓글 달기

    유지환 기자

    가슴으로 가는게 정말 힘들죠,,,,
    가슴으로 가는 거도 고사하고
    머리로 가는 것도 힘든데 말이에요..ㅋㅋㅋ
    하지만 열정을 가진다면 뭐든 잘 될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소챌 스토리 더보기

퍼져 나가는 세포마켓, 궁금해요 세포마켓!(feat.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

맨중맨 그루밍맨 with LG생활건강 1탄 인터뷰편

센스 가득 글챌 팀명

저작권사용지침서 3탄 : 저작권 활용 좋은 예

저작권사용지침서 2탄 : 저작권 어디까지 알아봤니? OX퀴즈

어떻게 잘 버릴까? #2 일상쓸레기, 어떻게 버릴까요?

유캔두잇! 한국생활

어떻게 잘 버릴까? 1탄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