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연중무휴 담금질 중

불과 10년 남짓 전만 해도 개그맨 김병만은 남들 다 간다는 대학 입시에 번번이 실패하고, 개그맨 공채시험 때마다 미끄러졌던 무명 연극배우였다. 당시 몸뚱이 하나 겨우 눕힐 수 있었던 작은 옥탑방에서 멀리 방송국의 불빛을 보고 그는 다짐했다. “방송국아, 기다려라. 비록 지금은 내가 여기서 널 바라보지만, 머지 않아 그곳에서 여기를 볼 날이 있을 거다.”

사진 제공_ 실크로드 출판사
LG드림챌린저 캠프 사진 제공_ 박덕수(사진문화기획자)

실패해도 끝없이 도전하면 실패하지 않는 것

“병만아, 넌 참 웃겨. 코미디 해봐라.”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을 웃기는 것이 좋았던 꼬마는 남을 웃길 줄 알면 코미디언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정작 그의 주위엔 꿈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중요해 돈 버는 것이 우선이었던 가난한 가정 형편, 부모님의 굽어가는 허리를 보며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돈을 벌 궁리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고3 시절이었다. 직업훈련소에서 취득한 자격증으로 공사현장에 취업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식사를 하며 TV를 켰다.


<스타예감>이라는 끼 있는 일반인을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제 친구가 거기에 나와서 2등을 한 거예요. 학창 시절 저와 함께 반 아이들을 웃기기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참 부럽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스스로 우물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나는 그냥 까부는 애였구나, 꿈을 이루기 위해 뭐든 스스로 찾아가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반성과 자책감이 들더라고요. 저 친구보다 더 웃길 자신이 있는데, 과연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내가 재능이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공사현장에서 매일 일하며 꿈을 잃은 채 살아가던 김병만은 지금껏 자신이 자라온 둥지를 깨고 그 길로 상경을 준비한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 그의 손에 쥔 건 단돈 30만원, 어머니를 졸라 겨우 받아낸 전 재산이었다.

서울에 도착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연기학원이었어요. 최종 목표는 코미디언이었지만, 한번에 큰 꿈을 이룰 수 없잖아요. 그래서 꿈을 여러 개로 잘게 쪼갰죠. 바로 앞에 세운 작은 목표부터 이루자는 마음으로. 코미디를 잘하기 위해서 연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다음은 그 학원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작품 공연을 할 때 주인공을 하고 기왕 하는 김에 인정받아 상도 타봐야지, 이렇게 하나하나 목표를 크게 키워갔죠.

158.7cm의 작은 키 때문에 연기학원의 원장님조차 방송 출연은 어려울 거라면서 연기를 포기하고 방송과 관련된 다른 길을 찾으라고 그에게 충고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그를 더욱 채찍질했다. 연극이 연기의 기본이라는 판단 아래 작은 극단에 들어가 연기 공부를 시작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더불어 대학 진학 역시 준비했다. 대학에 들어가 본인만의 길을 가는 여러 친구를 보며 그것이 큰물로 가는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신의 장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신의 코미디를 보는 사람이 친구가 아닌 면접관이었던 오디션 현장에서 그는 번번이 얼음처럼 굳어버리기 일쑤였다. 백제대 방송연예과 3번, 서울예전 연극과 6번의 고배를 마신 것은 물론 전주우석대, 서일대, 명지대••• 모두 똑 떨어졌다. 가장 자신 있었던 공중돌기와 아크로바틱도 심사위원 앞에서는 어김없이 고꾸라지고 머리로 떨어져 다치기도 했다. 대학 입시와 함께 준비한 개그맨 공채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MBC 공채에 4번, KBS에 3번을 낙방했다. 하나 끝이 보일 줄 모르던 시련도 그의 집념에는 굴복했던 모양이다. 지난 2002년, 28세의 나이로 긴 낙방의 그림자를 거둬내고, 대학입학과 KBS 17기 공채 개그맨 합격을 동시에 이뤘다.

제가 서울로 올라가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할 때 주변 사람이 비웃었어요. “너 금방 포기하고 내려올걸?” 그래서 말했죠. “내가 죽어서 송장이 되어 고향 땅을 밟을지는 몰라도, 포기하고 다시 내려오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나 그렇게 여러 번 시험에 떨어지고 서울에서 엑스트라 배우로 일한다는 소식이나 들리게 하니 스스로 너무 괴로웠죠. 돈이 없어서 무대 위에서 많이 잤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하기도 했습니다. 공중화장실에서 몰래 몸을 씻다가 알몸으로 망신을 당해 쫓겨나기도 했었어요. 그렇지만 좌절은 해도 포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꿈꾸면 꿈이 되지만, 여럿이 꿈꾸면 현실이 된다

그렇게 꿈꾸던 개그맨이 되었지만, 무명의 시간은 고됐다. 동기와 후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는 무대보다는 대기실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이전보다 더 강하게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쉼 없이 갈고 닦는 수밖에 없었다.

개그맨 중에서도 유독 튀고 사적으로도 재미있는 친구가 있잖아요. 주변 동료나 선후배들이 “쟤 왜 이렇게 까불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부러워하는 거예요. 저 친구가 내가 가지지 않은 걸 갖고 있으니까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잖아요. 제 좌우명은 ‘열심히 해서 잘하자.’예요.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잘하는 것만이라도 더 집중해서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잘하게 되더라고요.

김병만의 오늘날이 있기까지는 개그콘서트 달인 팀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자신 있던 슬랩스틱 코미디를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데다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류담과 평소에도 4차원의 캐릭터를 가진 노우진과의 호흡은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결국 대박, 났다. 2007년 12월 9일 첫방송 이래 2011년 11월 13일까지 매주 방송되며 KBS <개그콘서트>의 최장수 코너로 자리 잡았고, 달인 김병만을 세상에 제대로 각인시켰다.

전 항상 남을 의지하는 경향이 있어요. 코미디도 그렇고 어디 행사를 가도 꼭 동반자가 있어야 해요. 그것이 저만의 살아가는 방식인 거죠. 그래서인지 사람을 잘 믿기도 하지만, 한번 믿으면 끝까지 가요.

최근 종편으로 진출한 것도 스스로 멘토라 여기는 김석윤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달인 코너를 하던 초창기에 “디테일한 연기가 너의 장점이야. 어색한 것도 연기야. NG가 나도 다 내보낼 테니까 너 스타일대로 해.” 김병만을 신뢰하고 계속해서 자신감을 불어넣은 김석윤 감독이 있었기에, 그는 달인을 통해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타방송사의 모니터링도 직접 하면서 꼼꼼히 지적하고, 그에게 정통 코미디의 길로 계속해서 나아가라며 쉼 없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방송 쪽에서 일을 하다 보면, 사실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 역시 삶의 한 부분 아닐까요?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고 나 혼자만 믿고 가겠다고 하면, 그건 독불장군밖에 더 되겠어요? 저의 연애방식도 이와 비슷해요. 여자친구가 생기면 우선 집에 먼저 데리고 와서 가족들을 다 보여주고, 우리는 이렇게 산다고 보여줘요. 자신을 먼저 여는 거예요. 달인 팀이 오래갈 수 있던 것도 서로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 즉시 회의를 중단하고 술 마시러 가요. 싸우더라도 그 순간에 바로 푸는 거죠.

끝없는 담금질은 자신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매주 아이디어 소재를 짜랴, 연습하랴. 부상도 잦고 체력 소모도 많을 법도 한 그의 코미디. 심지어 현재 발목에 뼛조각이 돌아다닐 정도로 몸이 성하지 않은 상태지만, 수술하게 되면 석 달을 쉬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너무 아파서 못 걸을 정도가 됐을 때 치료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무대에 서는 것이 생명인, 긴 호흡을 가져가야 하는 방송인으로 생활하면서 그는 의외의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올라가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안 웃기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내 꿈이 바로 무대인데 정작 전날부터 두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거죠. 얼마 전에 드라마를 찍은 적이 있는데, 찍기 전부터 연기 못한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어쩌나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건 제 꿈을 피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었죠.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안 좋더라도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겼고, 웃으며 이야기할 경험담이 늘어난 거라고요. 많은 사람이 해보지도 않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어요. 눈 앞에 강이 얼어 있는데 이것이 살얼음일까 두꺼운 얼음일까 하는 고민 같은 거. 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해요. 일단 부딪혀 보는 거죠.

“도전 정신을 담고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언젠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KBS <개그콘서트> 달인, SBS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 <김병만 정글의 법칙>, 그리고 최근 JTBC <이수근 김병만의 상류사회>까지 그는 그의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키스 앤 크라이’에 출연하면서, 연습 중에 스케이트를 신고 빙상에서 공중돌기를 하다가 발목 인대를 다친 적이 있어요. 결국 녹화 중에 몸을 지탱하고 서있을 수가 없어서 무릎을 꿇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김연아 선수가 눈물을 보이더라고요. 그 눈물은 저에게 그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 위로가 됐고 힘들었던 모든 기억을 잊게 했어요. 그녀는 나의 이런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일 거라 생각해요. 웃음보다 감동을 주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거든요.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는 늘 웃음과 감동이 함께한다고 그를 최고의 우상으로 꼽는 김병만. 코미디언이라는 꿈은 이뤘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는 희극 배우다. 얼마 전 그는 일본 무대에까지 진출하여 한국의 코미디를 전파하고 있다. 그곳에서 다시 신인의 자세로, 다른 사람들이 2시간 연습할 때 6시간을 연습하는 노력을 한다.

누군가 저에게 이 정도 왔으면 조금 쉬어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데, 저는 지금 절벽의 중간쯤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꽉 힘을 주지 않고 있으면 바로 절벽 아래로 떨어집니다. 최종 목표는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 되는 거예요. 어느 수상식에서 찰리 채플린이 공로상을 받으러 나오는데 모든 개그맨, 배우, 가수랄 거 없이 다 기립박수를 치더라고요. 언젠가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웃음과 눈물이 다 전달됐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산 정상에서 만세를 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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