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구ㅣ소탈 속 단호의 명패

파격과 남다름이 뭔지를 몸소 보여준 ‘앵커계의 서태지’최일구 앵커. 그는 알려진 것보다 더 유쾌하고, 솔직하고,친근했다. 하지만, 이는 단호함이 뒷받침된 까닭이었다.

사진 _ 한용환(프리랜서)

꿈을솎아내는 단호함을 지녀라

어린 시절 최일구 앵커는 그야말로 꿈 많은 소년이었다. 조용필 씨가 노래하는 것을 보고 가수를 꿈꿨고, 글 쓰는 게 좋아 작가도 되고 싶었다. 아버지와 신문편지를 주고받을 때는 해외 특파원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기자를 지망하기도 했다. 호기심 많고 원하는 것에 모두 도전하고 싶었지만, 신이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가 만무했다. 그는 단 한 가지를 찾아야 했다. 이를 위해 냉정하게 자신의 능력과 적성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수는 자작곡도 만들곤 했는데, 가수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노래 실력에도 한계가 있고, 작곡실력도 그냥 그렇고•••. 그래서 노래 부르는 건 취미로 하기로 결정하고 접었지. 두 번째 작가의 꿈은 경희대 국문과에 갔는데, 가서 보니까 사법시험이나 행정시험을 보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작가더라고. 신춘문예 같은 것에 등단하고 이러는 게 정말 대단한 거야. 그래서 마지막에 하기로 한 게 기자였어. 적성에도 맞고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었지.

단,최일구앵커는 우려하는 듯 단 한 마디를 덧붙였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몇 년씩 취업재수를 하는 것 좋지만, 현실감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도 막혔다면, 과감히 돌아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냉정한 결단력이다.

당신의 결정에 절실해라

혹시 2.3.2 계획을 들어봤나. 대학 시절, 최일구앵커의 단독 프로젝트 개념이다. 뭔가 대단한 의미가 숨겨져 있을 듯하지만, 실상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내용인즉, ‘2년’ 놀고,‘3년’ 군대 갔다 와서 ‘2년’ 공부하기 계획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20대 남자 대학생의 사이클과 유사한데, 그럼에도 최일구 앵커의 2.3.2 계획은 남달랐다. 어정쩡하지 않고 확실하게 계획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처음 2년은 정말 후회 없이 놀았어. 술도 많이 마셨지. 방학 땐 지리산 천왕봉, 설악산 대청봉 같은 곳에 등산도 가고. 세월이 지난 지금 돌아봐도, 그 시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원없이 놀았어. 군대에 다녀온 후 2년 동안은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했지. 영어부터 국어, 일반상식, 한자까지.특히 영어 공부는 열심히 했어. 단어를 외우려고 온 방안 심지어 화장실까지 영어단어로 도배했으니까. 기자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5형식이 뭔지도 몰랐는데, 그때 알았다니까?

하지만, 그에게 꽃피는 날은 일찍 오지 않았다. 원서를 써내는 족족 1차 전형도 통과하지 못하고 줄줄 낙방했던 것. 그는 줄곧 술로 괴로움을 달래며, 제발 1차라도 붙여주는 회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대도 하지 않던 MBC에서 그를 받아줬다. 그의 현재는 이때부터였다.

처음에는 기자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나의 길은 이것밖에 없어서 포기하지 않았어. 취업재수를 하기로 결정했지. 만약 취업재수마저 실패하면, 다른 직업을 택하기보다 서울생활을 과감히 접고 안성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 생각이었어. 힘들었지만, 그만큼 절실했지.

Carpe Passio! 아픔을 즐겨라!

청춘이 아름답다는 말은 요즘 트렌드가 아니다. 세상은 청춘을 찬란하고 아름다워 돌아가고 싶은 이상향이 아닌 사회적 동정의 다른 이름으로 변색시켰다. 취업도 힘들고, 등록금도 비싸고, 연애도 힘들고, 학교생활도 힘든 참 아픈 청춘이다. 모두 나서서 이런 청춘에 반창고를 하나라도 더 붙여주려고 할 때, 최일구 앵커는 무 썰 듯 싹둑 잘라 말했다. “청춘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열심히 대학을 다녔는데, 대졸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실업인 절망적인 현실이지. 정말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아저씨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Carpe Passio!’ 라고. 고통을 즐기라는 말이야. 아저씨가 보기에 원래 청춘은 아파요. 지금만 아픈 게 아니라 아저씨 때도 아팠고, 나만 아픈 게 아니라 모두가 아파. 피할 수 없다면 괴로워하기보단 아픔을 즐기자고.

그 역시 아팠던 20대로 돌아가면, 과음에 투자한 시간을 아껴서 악기든 그림이든 자신의 전공이 아닌 것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특히 클래식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배워 친구들 앞에서 한 곡 그럴싸하게 연주하는 실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그는 마주할수록 소탈함의 냄새가 깊이 잠식했다. 그에서 묻어나는 진정성은 물론이다. 누군가 그에게 앵커의 위엄이 없다고 비난했던가? 뉴스상 앵커의 위엄은 꼭 필요한가? 위엄이 신뢰감과 동일어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절실하게 매달렸던 그 꿈에 대한 진정성이 이제야 오롯이 펼쳐지는 게 아닐까. 그는 앵커 안에서 이미 만들어진 길 외에 세상에 없던 길을 찾아서 우리에게 다른 방식의 신뢰감을 준 것은 분명했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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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드림챌린저에 강의하러 오신 최일구 앵커! 저는 작년 캠프 참가했던 학생이어서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기사를 통해서 만나뵙게 되어서 좋네요:)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아픔을 추억으로 즐기라는 말씀! 마음에 새기고 20대 청춘! 오늘도 달려나갑니다!
  • dews3

    오 제가 좋아하는 분이시네요. 만나봬서 좋으셨겠어요 ><
  • 이소연

    아픔을 즐겨라! 맞아요 이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내 20대때의 추억이 될 테니까! 좋은 기사 잘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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