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학무지경(學無止境)

사진_이유진 / 제19기 학생기자(세종대학교 역사학과)

학무지경(學無止境), 배움에는 끝이 없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설 중계를 시작해 해설 인생 30년이 넘는 ‘촌철살인’ 야구 해설가 허구연. 그는 말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것이라고.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고, 운동을 하면서도 학업을 병행해 고려대 법대에 입학하였으며, 30년 동안 야구 중계의 시청률 보증 수표가 되기까지. 이토록 그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올까말까한 기회를 가만히 앉아 노려보고 있지 않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항상 노력했기 때문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그의 집무실로 보이는 사무실에서 책상 앞에 앉아 누군가를 바라보며 살짝 웃고 있다. 흰 셔츠를 입고 있으며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모습이다. 그의 앞에는 투박해 보이는 찻잔이 하나 놓여 있으며 책상과 뒤에 놓인 책장에는 책들로 빼곡하다.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다

야구 해설가 허구연.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력이겠지만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약했고, 프로야구 원년부터 야구 해설을 시작해 해설 경력이 30년이 넘는 베테랑으로 평생을 야구와 함께했다. 하지만 그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석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 운동선수는 공부와 거리가 멀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했고 체육 특기자가 아닌 정정당당한 시험을 통해서 법대에 입학한 진정한 야구계의 ‘엄친아’다.

제가 다녔던 부산의 경남중학교는 체육 특기자라는 제도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를 비롯한 선배들은 시험을 쳐서 중학교에 입학했고, 딱히 프로팀이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그 이후에도 계속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실업팀에 들어갔다가, 대학 수업을 듣고 싶어서 체육 특기자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전 ‘내가 좋아하는 야구도 하면서 사법고시 합격을 해보자’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다시 공부를 해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지요. 그런데 야구부 활동을 하다 보니 합숙 훈련도 많고 원정 경기도 많아서 사법고시와 병행은 하기 힘들더라고요.

허구연 해설위원이 자신의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시선을 아래쪽으로 향하게 두고 있다. 그의 뒤쪽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이 보인다.
고시 공부는 포기했지만, 학업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전엔 시험을 보고 오후엔 야구 경기에 출전해 대학 야구 홈런왕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학부를 마치고 실업팀이었던 한일 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국가 대표로 활약했다. 그는 불운하게도 76년에 있었던 한〮일 올스타전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장래가 유망했던 야구 선수로서의 삶은 불행하게 끝이 났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야구 배트 대신 다시 펜을 잡았다.

4차례의 수술을 받는 엄청난 부상이었어요. 야구 선수로서 재기는 힘들었죠. 그래서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고, 그때부터 병원에서 하루에 10시간씩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고려대 법학 대학원에 시험을 쳤고, 사실 붙은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운 좋게도 합격을 해서 대학원 졸업 후에는 학부에서 강의를 하면서 대학교수를 꿈꿨습니다.

야구,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중,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방송국으로부터 야구 중계 해설을 해달라고 제안을 받았다. 한번 방송을 해보니 방송국에서 계속 같이하자는 제안이 왔고 그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야구계로 돌아갈 것인가, 교수로 남을 것인가? 아마도 프로 야구가 생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해설 위원 허구연이 아닌 법학 교수 허구연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해설을 해보니 대학교수와 야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왔죠. 그때 저는 어떤 분야든 자기 전공만 잘 안다고 해서 전문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법학을 전공했지만, 운동을 병행하느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같은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기 때문에 교수가 되었어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다른 교수들 따라가기 바빴을 거에요.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야구 해설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허구연 해설위원의 해설 현장 모습이다. 왼쪽 사진은 야구경기장의 해설 부스에서 아나운서와 함께 해설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부스에서 야구장을 등지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아나운서의 진행을 기다리며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미국 현지에서 중계를 하기 위해 준비중인 모습으로, 아나운서 한 명과 함께 야구경기장 안에서 마이크를 손에 들고 카메라를 향해 무언가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그들의 뒤에는 관객석 위로 크게 ‘환영합니다’ 라고 쓴 팻말이 보인다.
그렇게 1982년부터 그는 야구 해설 위원으로서 30년 넘게 활약했다. 오랜 경험에 엄청난 내공이 쌓였을 법하지만, 그는 절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을 꾀한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해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한국야구뿐만 아니라 미국의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 중계와 뉴스를 챙겨보는 것. 하루에 야구에 몰입해있는 시간만 13시간이 넘는다. 또 지금은 해설뿐만 아니라 KBO(한국야구위원회)에서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맡아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매일같이 발로 뛰고 있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사무실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맡으면서 더 바빠졌어요.(웃음) 지난 3년 동안 프로야구단 창단뿐만 아니라 아마 야구, 사회 동호인 야구의 발전 등 우리나라 야구 인프라 발전을 위해 굉장히 많이 노력을 해왔죠. 특히나 가장 공을 들였던 건 프로야구 9구단, 10구단 창단이었어요. 요즘 대학생 여러분들도 취업이 어렵다고 많이 힘들어하는데, 야구를 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어느 통계 자료에서 우리나라 고교 야구선수들의 취업률이 6.5%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거든요. 요즘 프로야구가 굉장히 인기도 많다 보니 매우 화려한 것 같지만, 막상 야구 선수들이 뛸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어요.

단기적으로는 프로야구팀을 늘려서 파이를 키우고, 장기적으로는 공부하는 야구 선수를 만들어야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 야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허구연 위원의 장기적인 계획이다.

야구로 치면 자신의 인생이 7회쯤 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마음만은 아직 5, 6회라고 말하는 허구연 해설위원. 어느덧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같이 일하는 후배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한다. 그의 책상 위 4대의 모니터가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을 대변해준다.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 어떤 일들보다도 야구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고양 무지개 리틀 야구단 활동을 하며 어린이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있다. 연두색 피케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편한 차림의 그가 한 여자아이에게 야구공을 던지는 동작을 가르치는 듯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자아이는 남색 야구캡에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그를 바라보고 있다.

야구 해설은 정년이 없으니까 나이로 치면 지금이 7회 정도 됐고 앞으로 8, 9회가 남은 것 같네요. 해설을 계속하면서 앞으로도 야구계 발전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내가 해 나갈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야구계에 이바지하고 싶어요. 또 은퇴 이후에도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야구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다른 나라에도 야구를 전파하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흔히들 인생과 야구는 비슷한 점들이 많다고 한다. 초반에 점수 몇 점을 먼저 냈다고 방심을 하면 상대팀이 역전을 할 수도 있고, 처음에 조금 뒤져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역전이 가능한 것이 야구이고 또 인생이다. 순간이나 상황에 따라 계속 다른 생각을 하는 묘미가 있는 야구, 사람의 인생을 본딴 것 같은 야구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자신의 사무실 책장에 놓인 야구공을 하나 들어 보이며 만지고 있는 모습의 2장 연속 컷이다. 책장에는 책들과 함께 야구선수 모양의 인형, 글러브, 수많은 사인볼이 진열되어 있고 그가 만지고 있는 것은 이 사인볼 중 하나다.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 이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엄청난 노력과 준비를 해야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있다. 그 어느 세대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20대, 청춘들에게 보내는 그의 메시지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그의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무언가를 설명하듯 움직이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얼굴이 살짝 웃고 있다.

젊었을 때는 프로야구로 치면 2군이에요. 즉, 대학교는 2군, 사회는 1군과도 같죠. 그렇기 때문에 1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2군에서 피땀 흘려 노력해야 합니다. 도전도 많이 해보시고요. 왜냐하면 2군에서는 실수해도 되지만 1군은, 즉 사회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니까요. 언젠간 프로세계 무대, 1군에 나갈 것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지금부터 준비를 굉장히 잘해야 성공에 대한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이른바 ‘프로’가 되어야 한다. 프로란 전문적인 일을 하게 됨을 뜻하기도 하지만, 돈을 받고 일하게 됨을 뜻하기도 한다. 그는 프로패셔널리즘을 모르면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걸 모르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남들과 출발선은 같을지라도 미래엔 엄청난 차이가 생겨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야구의 역사를 봐도 그래요. 똑같은 해에 입단한 어떤 선수는 계속 해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이어나가지만, 어떤 선수는 어느 순간부터 내리막길을 걷죠. 성공하는 프로와 실패하는 프로의 차이가 무엇인고 하니, 성공하는 프로는 기회가 오면 딱 잡지만 실패하는 프로는 계속 변명하고 후회하고 핑계를 늘어놓아요. 그러므로 대학생들이 해야 하는 것은 바로 프로가 될 실력을 갖춰야 하는 일이고 프로가 되어서도 절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진정한 프로가 되세요.

프로 진출을 앞둔 수많은 20대 청춘들. 분명 때에 따라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변명하는 상황을 만들고, 자기합리화를 늘어놓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허구연 해설위원의 인자한 미소 속 뜨거운 눈빛은, 인터뷰 내내 ‘너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라 물어오고 있었다.

허구연 해설위원의 사인. 흰 종이 위에 ‘TO. LG LOVE GENERATION! 진정한 PRO가 되시기를! / 허구연 / 13.9.12’라고 쓰여 있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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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이정

    우선 야구광(이자 LG트윈스 골수팬) 김경현 기자의 야구인 인터뷰 축하드립니당♥ 전 사실 야구 잘 모르고 이 분도 잘 몰랐는데요. 82년부터 야구 해설위원을 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프로야구가 없었으면 교수님이 되셨을... 허구연 해설가님에겐 야구가 곧 운명이군요! 1군과 2군 이야기 정말 공감해요. 전 아직 2군, 치열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1군으로 가기 위해 많은 것들에 더 도전할게요. 이 기사를 통해 우리네 인생 같은 야구에 좀 더 관심이 생겼어요. 고마워요 돈독경현기자 ^^
  • 고은혜

    이래서, 이래서 제가 졸업이 싫다니까요?ㅋ 장난이구요. 1군이 되고 싶으면서도 1군 선수로서 책임져야 할 많은 의무들, 실수하면 2군으로 좌천이 아닌 영영 제명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존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군이 되고 싶고, 되어야만 하겠죠. 야구에 대해 모르는 저에게도 야구에 빗댄 인생의 교훈들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네요. 좋은 기사 몹시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왜 야구 전문 기자인지 깨달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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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이정

    나도나도 졸업하기시르다 그치만 이제는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겠졍

  • 민성근

    김경현 기자만큼이나 야구에 대한 엄청난 사랑이 듬뿍 느껴지네요! ㅎㅎ 나이가 적건 많건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어야 한다는 그 자세, 저 뿐만 아니라 모든 20대에게도 절실한 이야기겠죠? 기사 잘봤습니다.
  • 힘내

    ㅎㅎ허구연해설위원이 고시공부도 하셨었군요~허위원님의 야구사랑은 정말 대단하신거같아요~
  •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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