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선 l 외유내강의 ‘가치’ 몰입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어조와 부드러운 미소, 동시에 확신에 찬 말투와 눈동자를 지닌 야누스.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한국인 신사의 첫인상이 베일을 벗는다. LG에서만 20년이란 억겁의 세월을 함께 한, LG전자 오스트리아의 박원선 법인장이다.

가치Value를 쫓는 생각의 방향성

박원선 법인장은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기로 사내에서 유명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채찍질하는 그의 모습은 돌이켜본 대학교 새내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987년, 당시 대학생은 두 부류였다. 몸을 불태운 운동권 스타일과 학교 공부에 매진하는 모범생 스타일. 박원선 법인장은 그도 저도 아닌,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고 고백했다.

1학년 1학기 때 장학금을 받게 되었어요. 중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결과였는데, 뒤숭숭한 시국 탓에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죠. 방황했다는 게 맞는 말일 거예요. 여태까지 내가 공부했던 것은 뭐고,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뭘까?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리고 사회가 이렇게 부조리하고 어려운데, 나는 여기서 마냥 앉아 장학금을 받아도 되는 걸까? 굉장히 고민스러웠어요. 제가 알고 있던 것과 (세상은) 너무 달랐으니까요.

그는 결국 장학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아니, 받고 싶지 않았다. 장학금을 거절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받는 게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그리고 회색인이라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작은 반항이었다.


열병과도 같은 늦깎이 사춘기가 끝난 후 그는 어렵사리 호주행을 결심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도, 여권 발급도 수월하지 않은 90년대 초반이었다. 미국은 가기 어려웠고, 유럽은 꿈꿀 수조차 없던 선택권에서 그는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그는 호주에서 소위 ‘문화 충격’을 받았다. 처음 거리에 즐비한 일본 자동차를 보고 놀랐고,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4시면 끝나는 호주의 근무 여건에 두 번 놀랐다.

호주가 사회적 보장제도(Social Security)가 잘 갖춰져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죠. 우리나라와 수준 차이가 많이 나는구나. 제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다라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인터뷰하는 내내 ‘가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던 박원선 법인장. 가치Value 있는 것을 쫓는 그의 생각은 1년 간 호주에서 머물고 난 93년 무렵, 한국을 대표하는 LG전자의 일원이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부분 대학생이 29세를 인생의 전성기로 꼽는다는 걸 알고 있는지. 취업 후 경제적이나 심적으로 안정되는 시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업만 되면’이란 말이 대학생 사이에선 모든 인생의 문제가 풀릴 단초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인생의 전성기는 모든 가능성이 열리는 50~60대라고 생각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박원선 법인장이 입사한 이후는 어땠을까? 입사 4년 차가 되던 해, 카자흐스탄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다. 겁도 없이 2개의 가방만 달랑 들고 찾아간 공항에서 그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스러웠다. 공항에 불이 안 들어왔기 때문이다. 도둑 소굴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심지어 공항 화장실에는 문도, 변기 뚜껑도 없었다. 사람들은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볼일을 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움은 현지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깨지고 부딪히는 연속이었다. 영하 30도씩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다가 맡은 업무마저 어려웠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아팠다. 설상가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계속 채찍질했다. ‘성공하자.’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힘든 순간을 버텼다. 지금 하는 일이 하나의 과정이라 여기며,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저는 슬럼프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뭐든지 경험하고, 마음 약하게 먹지 말고, 게을러지면 안 돼요. 게을러지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공부해야 해요. 그 공부라는 게 앉아서 하는(외우는) 공부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경험 역시 공부죠.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요. 문학, 역사, 철학 관련 책을 1백 권씩만 읽어 보세요. 그러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미래가 보일 거예요.

어려울 때마다 생각하는 것, 이것이 정의인가


LG전자 오스트리아 법인은 현재 프리미엄 딜러Premium Dealer에 진입했다.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만을 취급하는 독일 전자 브랜드 뢰베의 갤러리LOEWE Gallery에도 15개 매장을 설치했고 년말까지 30개가 목표이다. 과거 국내 대기업이 이 뢰베에 OEM을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겼던 시절에 비하면, 매우 괄목할 만한 결과다.

그럼에도 아직 박원선 법인장에게는 ‘LG의 브랜드 강화’라는 과제가 안겨져 있다. 물론 LG가 국제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에서, 특히 보수적인 독일어권에서는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잘 바꾸려고 하질 않아요. LG가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선 강세지만, 독일어권은 조금 어렵죠. 그래서 때론 구매조합 유통을 통해 오스트리아 현지인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나하나 점진적으로 쌓여진 . 노력의 결과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려울 때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하나다. 과연 이 판단과 결정이 정의에 부합하는가?

나 자신의 정의에 맞는가? 주위의 다른 사람의 정의를 위해서 나은 결정인가? 고민하죠. 법인의 발전을 위해서, 또한 법인 구성원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LG브랜드의 발전을 위한 정의인가를 두고 판단해요.

언뜻 보면 ‘정의’라는 단어는 매우 거창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정의는 어려운 게 아니다. 정의는 자신, 타인, 그리고 사회를 향한 진지한 성찰과 배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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