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김민정 문학 에디터

책을 사랑하다 못해 삶 일부를 출판에 던진 이들로 넘실대는 출판사의 세계. 언어를 긷고 나르고 퍼주는 출판인의 마음이 이토록 뿌린 씨를 거두는 농부와 닮았을 줄이야.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부터 나온, 날이 선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출판업을 두고 ‘이쪽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정도의 관심만으로는 결코 도전할 수 없는 영역임을 따끔하게 깨우쳐 주듯이.

럽젠Q : 언제부터 출판계에 종사했나요?

저는 현재 몸의 반은 시인으로, 또 반은 출판인으로 살고 있어요.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는데, 3학년 때 시로 등단하면서 동시에 일을 일찍 시작했죠. ‘문예중앙’이라는 잡지사의 기자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성지나 연예잡지에서도 일했어요. 중간에 아동용 책을 쓰는 등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2004년쯤 출판 회사에 몸을 담았어요. 따지고 보면 거의 13년간 출판계에서 일했네요.

럽젠Q : 문학 분야에서는 에디터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아니죠. 오히려 에디터의 역량이 더 세요. 문학 분야의 작가는 기본적으로 순수 문학을 하는 사람이어서 에디터가 텍스트 자체를 건드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에디터는 글에 대해 조언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죠. 예를 들어 소설의 배경이 70년대 초반인데, 80년대에야 시판된 페트병이 글에 나왔다고 해봐요. 그러면 에디터는 작가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을 읽고, 페트병은 여기 나오면 안된다고 작가에게 오류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만약 작가가 지은 제목이 소설 내용과 어긋난다면 그 부분도 지적할 수 있어야 하고요. 제목은 저자가 확정된 제목을 줄 때도 있지만, 에디터가 지어야 할 때가 더 많아요.


럽젠Q : 결국, 방대한 양의 지식이 필요하겠네요?

문학 분야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문인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국문과를 졸업하고 나름대로 글을 쓴다는 학생도 이런 이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죠. 만약 어떤 작가의 책을 새롭게 출판할 예정인데, 에디터가 이번 신간을 제외하고는 그 작가가 여태까지 쓴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상태라고 가정해봐요. 그러면 에디터는 이번 소설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조차 아예 모르고 있는 거죠. 대학 시절에 미리 책을 접하지 못한 신입사원은 20대 후반에 처음부터 거꾸로 올라가 읽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다른 분야보다 문학은 어려워요. 전문지식이 요구되고요. 대학생 시절에 책을 매우 많이 읽어야 하죠. ‘오늘 나 서점에 가서 책 한 권 읽었다.’ 수준의 독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책을 알아야 해요.

럽젠Q : 국내 문학과 해외 문학의 출판 과정은 많이 다른가요?

해외 문학은 저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가 많으니까 작가를 만날 일이 드물죠. 대신 번역자 관리가 중요해요. 해외 문학을 담당하면, 번역자의 정보를 완벽하게 알아야 하죠. 똑같은 책이라도 출판사별로 다 읽어보고 괜찮은 번역본이 있으면 그때부터 그 번역자가 낸 책을 다 읽어요. 그런 식으로 나중에는 작품에 적합한 번역자를 추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죠. 반면 국내 문학은 작가를 직접 만나서 청탁하는 작업이 많습니다.


럽젠Q : 그러면 이미 알고 있는 작가와 계속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 건가요?

대부분 작업은 아는 사람과 하죠. 문인과 오래 일한 에디터는 전부 한 식구처럼 지내요. 문인 사이에는 그런 끈끈함이 있어요. 일을 부리고 부림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동료의 개념이 강하죠.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 전부 내 동료이고 선후배이다 보니까 좋은 한편으로는,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커요. 내가 언니, 오빠, 동생,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의 책을 만드는 거니까요.

럽젠Q : 좀 색다른 방식으로 일이 진행될 때도 있나요?

기존의 문인을 대상으로 에디터가 새로운 기획을 내기도 하죠. 예를 들어 김훈 작가는 본진이 소설이고 산문을 쓴 일이 없으니, 이번에는 산문을 한번 써 보자고 제의하는 것이 새 기획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경우에는 에디터가 어떤 식으로 책을 끌고 갈지를 사전에 기획안을 써요. 문학 파트는 기본적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이 모여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가령 실용 분야에선 최근 파워 블로거와 접촉해 책을 내는 일이 많다)만큼 신예를 발굴할 일이 없어요. 그 대신 이런 류의 기획 자체가 새로운 시도이고 발굴이라고 할 수 있죠.


럽젠Q : 책을 만들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제가 작년 1월에 <천재토끼 차상문>이라는 책을 만들었어요. 정말 좋은 소설인데, 그 책을 쓴 김남일 작가는 그동안 많이 팔아야 2~3천권 정도 팔았던 작가였죠. 그런데 작년 연말에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그 책을 들고 나온 거예요. 저는 그 책이 더 이상 팔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방송을 탄 이후 10개월 동안 팔렸던 분량이 2주 만에 팔려나가더라고요. 사실 많은 독자가 읽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작가로서는 씁쓸한 마음도 있을 수밖에 없죠. 책은 만들면 만들수록 무서워요. 결과를 예상할 수 없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2백권이 넘는 책을 만들었지만, 사실 만드는 과정은 다 똑같아요. 작가를 섭외하고, 만나고, 글의 교정을 보고, 찍어내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책을 계속해서 만드는 이유는 나조차도 어떻게 만들어질지 모르는 ‘책의 무한한 알 수 없음’ 때문인 것 같아요.

럽젠Q : 대학생 때 출판사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할 것은 무엇이 있나요?

그림과 예술을 보는 눈이요. 에디터가 글만 잘 읽으면 되는 게 아니에요. 이 책에 어떤 껍데기를 씌울 것인지는 디자이너한테만 달랑 맡기는 게 아니거든요. 책을 안 읽은 디자이너가 제목만 보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표지 디자인을 했다면, 에디터가 그걸 터치할 줄 알아야 하죠. 저는 표지를 사전에 어떻게 그리라고 직접 기획하고, 아예 제가 생각하는 뉘앙스의 시안을 찾아 디자이너에게 주는 방식으로 일해요. 쓰는 일과 보는 일은 종류가 다르지 않아요. 이 사회 속에서 음악과 미술, 문화, 역사는 결국 다 맥이 닿아있거든요. 주말마다 삼청동 갤러리를 다니는 걸 추천해요. 딱 한 곳만 정해서 그 갤러리 안에서 하는 모든 전시를 다 본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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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의 역량이 더 세다, 하지만 작가 개인의 텍스트를 보호, 존중해준다.
    멋진 상관관계네요. 팀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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