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가> 구윤형 조명 디자이너

“쉽지 않아요.” 공연예술 직업을 가진 대다수 인터뷰이의 공통 답변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그 자리에서 끝없이 물질하는가?

뮤지컬 <그리스>, <대장금>, <김종욱 찾기>, <로드웨이 42번가> 등 다수 작품을 휩쓸며 조명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는 구윤형 조명 디자이너. 한국 공연계에서 ‘최초의’ 여성 조명 디자이너로서 쏟아질 정도로 상을 받는 영예의 주인공이다. 경력도 조명처럼 화려했다.

럽젠Q : 조명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조명 디자이너는 작품에 맞게 컨셉트를 잡아서 빛을 디자인해요. 다른 스태프와의 회의를 통해 작품의 전반적인 컨셉트를 잡은 뒤 계획해요. 조명이 색과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거든요. 컨셉트에 맞는 빛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조명 감독과 조명 디자이너는 전혀 다른 직업이에요. 조명 감독은 극장마다 있죠. 무대 조명의 기술적인 측면을 담당하면서 관리와 감독, 운영한다면, 조명 디자이너는 빛을 창조하는 직업이죠.

럽젠Q : 어떤 계기로 조명 디자이너가 되었죠?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원래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었고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호모 세퍼러투스>라는 공연을 보게 되었어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어서 다른 데로 자꾸 한눈을 팔게 되었는데, 무대 위 조명이 눈에 띄더라고요.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무슨 용기였는지 공연 조명실에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어떻게 해야 조명을 다룰 수 있는지를요. 냅다 서울 예술 전문대학(이하 서울예전)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조명을 가르쳐주는 대학은 이곳 한 군데뿐이라 입학한 뒤 조명을 배웠죠.

럽젠Q : 조명 디자이너가 되는 일반적인 경로는 어떻게 되죠?

디자인과에 진학하는 방법이 있죠. 하지만, 완벽한 정답은 아니에요. 다양한 디자이너가 있으니까요. 제가 ‘빛놀이 광작소’를 시작한 건 이런 원리에서 비롯되었어요. 조명 공부는 이론적으로만 할 수 없거든요. 현상 공간에 대한 개념을 많이 보고 익히고 많은 장소를 가봐야 하는 거에요.


럽젠Q : 조명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선택권을 쥐고 있고, 그 선택권이 많다는 게 좋은 거죠. ‘저 배우 안 보이게 하고 싶은데’ 하면 빛을 안 주면 되잖아요.(웃음) 조명이 무대에서 제일 마지막에 세팅되는데, 빛을 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준비된 공간의 노출이 결정된답니다. 마지막 선택권을 쥐고 있는 셈이죠. 나만의 스타일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디자이너마다 본인 스타일을 구사하죠.

럽젠Q : 다른 직업에 비해서 좋은 점도 있나요?

아무래도 공무원이나 회사원에 비하여 자유롭죠. 회사처럼 상하 관계가 존재하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답답하지 않고 자유로워요. 또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 좋죠. 전 쉴 때 1년의 3~4분기는 여행을 가요.

럽젠Q : 그렇다면 조명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단점은 무엇인가요?

고정된 수입이 없어요. 또, 시간에 쫓기죠. 조명 작업할 시간이 몰리거든요. 무대가 세워진 후 짧은 시간 안에 조명 세팅을 끝내야 해요. 무대 셋업 된 이후에는 2주 동안 엄청 바빠요.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하는데, 사실은 그 이상이죠. 그래서 그런지 조명 디자이너 중에 성격이 급하지 않은 사람을 못 봤다니까요.(웃음)

럽젠Q : 조명 디자이너가 몹시 힘든 직업이군요?

사실 직업으로 추천하고 싶진 않아요. 3D 업종이거든요. 조명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일단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되기까지 어려워요. 10년 이상은 이 바닥을 일명 ‘굴러야’ 되거든요. 우리나라는 판이 작아서 기회를 얻기도 어렵죠. 그래서 빛을 공부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자체적으로 ‘광작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럽젠Q : 일하면서 다른 파트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소통하는 게 중요하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을 만나면 힘들어요. 나와 스타일이 다른 연출과 만나면 힘들죠. 어렸을 땐 나이도 어리고 ‘말발’도 안되니까 다른 파트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스트레스받을 때도 있었죠. ‘내가 과연 지금 창작을 하고 있나?’ 이런 고민도 했었고요. 지금은 20년 경력인 데다가 분석 능력도 늘어서, 컨셉트에 맞게 토론하고 이야기로 풀죠.


럽젠Q : 조명 디자이너로서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불가능이 없다고 믿는 거요. 실험해보지 않고 ‘안돼’를 미리 얘기하는 건 상상력과 소통을 차단하는 거잖아요. 이건 크리에이티브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안되는 거 알면서도 ‘우리 실험해보자, 해볼까요?’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해요. 전에는 안될 거 같아서 시도하지 않았어요. 일종의 자기방어였죠. 그런데 6개월 동안 미국 연수를 다녀오면서 배웠어요. 그들은 안되는 게 없더라고요. 뭐든지 시도해요.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로 열려 있어야 해요. 스스로 규정하면 안되죠.

럽젠Q : 그렇다면 안목을 키우기 위해선 어떤 걸 해야 하나요?

다양한 걸 꾸준히, 오래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전 책을 편집증적으로 많이 읽었어요. 한 30만 원어치 사서 쌓아둬요. 그러면 적어도 한 달에 4~5권은 읽게 되죠. 이걸 10년 하니까 작품 분석 능력이 발전되더라고요. 그림이나 사진, 영화 같은 것도 많이 봤어요. 여행도 하고요. 지금도 외국으로 나갈 땐 갤러리를 들러요. 조명하는 사람 중에 사진을 잘 찍는 이가 많아요. 조명이 빛의 색감이나 각도에 민감하잖아요. 영화 볼 때 카메라 앵글, 줌 등을 신경 써서 보니까 아무래도 안목이 늘겠죠. 사진도 그래서 잘 찍는 거고요. 요즘엔 음악도 해요. 쉴 때 피아노를 배우고 있죠.

럽젠Q : 조명 디자이너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조명으로 자연을 그대로 옮겨오는 거에요. 나라마다 하늘 색깔이나 모양이 다른 거 아세요? 외국 가서 하늘이 그린 컬러인 걸 봤어요. 이렇게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어요.

럽젠Q : 조명디자이너를 꿈꾸는 대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그림책을 자주 보세요. 색감을 기르기 위해 영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도 추천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열정이 있어야 해요. 뻔한 소리지만, 뻔한 것이 기반이 안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꿈을 구체적으로 확실히 해야 하는 것도 있죠.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죽도록 해야 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죽도록 하는 사람은 못 이기니까요.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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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럽젠을 통해 처음 알았어요 ^^ 광화문연가를 두 번이나 보고 왔는데... 오오오오. 여기서 광화문연가 조명 디자이너 분을 보게 되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재미있는 기사 잘봤어요!!
  • 박상영

    색감을 기르는 것이 조명 일에 도움이 된다니! 역시 세상일은 다 엮이고 엮이는 건가봐요(?) 새로운 분야에 대한 기사 잘읽었어요 천기잣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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