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쌓는 청춘 CEO

단어가 주는 설렘만으로도 가슴 벅찬 마법의 두 글자, 바로 청춘이다.
혹자는 말한다. 젊음이 있기에 실패가 두렵지 않을 수 있다고. 젊음 하나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시절일 거라고.
당신의 청춘은 어떤가? 지금,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이 순간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꿈만 먹고 살기엔 녹록지 않은 세상 속에 산다. 취업난은 이미 대학생에게 따라붙은 수식어가 되어버린 지 오래. ‘취업과 미취업’, 대한민국 청춘들의 방향은 두 갈래로 나뉜다.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승자의 위치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느새 패자로 치부된다.

하지만 너무 좌절하지 마시라! 우리에겐 ‘젊음’이란 무기가 있지 않은가!? 어디에나 제3의 안은 있기 마련이다. 만약 취업과 미취업 두 갈림길 사이에 새로운 ‘나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면, 누구나 솔깃해할 제안이지 않을까?

‘내가 사장이 된다면…?’

그렇다. 일자리가 없다면 직접 만들면 그만이다. 이러한 도전정신이야말로 현실에 좌절한 청춘들에 필요한 Must Have Spirit이라 하겠다.

창업에 막연한 상상,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터. 하지만 상상을 구체화하여 직접 실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창업 아이템 선정부터 투자 자본, 방향성 설정 등 전반적인 분야를 총괄해야 하므로 경험이 부족하다면 ‘말아먹기’ 십상이다.

창업,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춘들의 다크호스로 창업이 급부상했던 불과 몇 해 전, 침체한 경기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았던 이들이 있다. 이들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혹시 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창업에 도전한 챌린저들, 청춘 CEO 4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청춘 CEO를 소개합니다!
(좌)’짐치독’ 노광철 대표 / (우)’소셜 MC’ 김용태 대표
(좌)’짐치독’ 노광철 대표 / (우)’소셜 MC’ 김용태 대표

노광철 대표 : 연 매출 180억 ‘짐치독’ 대표. 수차례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김치에 대한 고집스러운 연구 덕에 수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가 항상 강조하는 한마디, ‘선 실천, 후 연구’! 계획만 주야장천 해서는 소용이 없으니 일단 도전하란다.

김용태 대표 : 소셜마케팅 업체 ‘소셜 MC’ 대표, 연 매출 20억을 올리는 벤처기업 창업자다. 일의 피곤함보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다는 기쁨이 더 크다는 그. 빽빽한 스케줄 리스트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야말로 천상 사업가가 아닐까?

(좌)’베스프렌’ 박성환&이민혁 대표 / (우)’열정감자’ 김윤규 대표
(좌)’베스프렌’ 박성환&이민혁 대표 / (우)’열정감자’ 김윤규 대표

박성환&이민혁 대표 : 뉴욕 현지의 디저트 브랜드 ‘베스프렌(BESFREN)’의 대표. 절친한 친구(Best Friend)인 두 사람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뉴요커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식 디저트를 만들어냈다. 떡과 초콜릿,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오묘한 이 조합은 베스프렌에서 가장 사랑 받는 메뉴 중 하나라고.

김윤규 대표: ‘열정감자’, ‘열정골뱅이’, ‘열정꼬치’ 등 총 5개 매장의 대표. 대학 휴학 후 15개월 동안 5개의 점포를 잇따라 열었다. 오늘도 청년들의 ‘자력갱생’을 목표로 ‘청년장사꾼’의 길을 걷고 있다. 가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인생 모토는 ‘열정’이다.

창업의 부싯돌을 찾다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싶고, 친구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밤을 지새우고 싶고, 때론 기차여행을 훌쩍 떠나보고도 싶은 평범한 20대 청춘들. 앞서 소개한 다섯 청년도 예외는 아니다. 평범했던 20대 청년들이 비범한 CEO로 변신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노광철 대표(짐치독) “군대에서 중국산 김치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한 사건을 기사로 접했을 때부터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군대에서 틈틈이 취사병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웠고, 인터넷으로도 꾸준히 김치 공부를 했죠. 2009년 8월 3일, 날짜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군 제대 후 바로 창업을 시작했어요. 제대 전 만들었던 참고서 인세가 700만 원정도 모여있었는데 이걸 초기자금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냈어요. 망설이면 늦어요. 일단 결심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해요.”

김용태 대표(소셜 MC) “저 역시 군 복무 중 창업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는 몰랐지만,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만들어진 그물에 발 하나를 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물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죠. 본격적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든 것은 제대 후였어요. 자본을 모으기 위해 마케팅 제안서를 만들어 가까운 곳부터 영업도 발로 뛰었죠. 이때 마련한 자본으로 지금의 ‘소셜 MC’를 차릴 수 있었어요.”

김윤규 대표(열정감자) “2012년 1월 1일 새해 아침, 친구 다섯명과 길거리에서 핫팩을 팔았던 게 저의 첫 사업이었어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회사원은 제 길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결국 제 삶의 질을 위해 ‘장사’라는 길을 택하게 되었죠.
요식업을 택한 까닭은 아이러니하지만 ‘기술이 없어서’예요. 보통 ‘청년창업’이라 하면 IT, 애플리케이션, 소셜마케팅 같은 걸 흔히 떠올리는데, 이 분야는 제겐 소질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았어요. ‘그럼 청년들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장사는 뭘까’ 고민해보니 요식업이 딱이더라고요. 일단 제가 즐겁게,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망설임 없이 택했죠.

박성환&이민혁(베스프렌) “처음부터 뉴욕에 오면서 창업의 꿈을 가졌던 것은 아니에요. 저는 미국에 유학 온 지 6년 정도 됐었는데, 원래 전공은 금융 쪽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았었고,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부담도 적지 않았어요. 이민혁 대표 같은 경우는 회계 관련 일을 10년 넘게 하면서 제법 안정적인 때이기는 했지만, 업무에 무료함을 느끼던 시기였어요. 어느 날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저질러 보자고 했죠. 재미있는 일을 해 보자고요.”

기회는 포기하지 않는 자의 것
창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고객이 있어야 수입이 있는 것. 이들 모두 처음부터 ‘대박’이 났던 것은 아니다. 애써 구상한 아이템, 사업 제안서가 찬밥 취급을 받으며 내동댕이쳐진 적도 있었고, 회사가 부도위기에 놓여 망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그만두기엔 성공으로의 열정이, 아이템에 대한 확신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

김치독 로고와 김치쇼핑몰 리스트
김치 세계화의 선두주자 짐치독, 소비자의 호평이 자자하다.

노광철 대표(짐치독) “막상 반찬가게를 시작했는데 제가 음식을 하나도 할 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야채 다듬는 것이 서툴다 보니 매일 손을 베이고 그 손으로 배추를 절이고……. 정말 힘들었어요. 전국을 떠돌면서 맛있는 김치를 맛보고, 동의보감이나 조선왕조실록을 옥편으로 찾아보면서 김치라는 한 단어만 나와도 다 뒤져봤어요. 몇 달 동안 이런 과정을 거쳐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 수 있었지요.
김치 연구에만 매달리다가 회사가 부도위기에 놓였던 적도 있어요. 창업에 기본 자금이 많지 않았던 터라 직원 월급도 꼬박꼬박 주지 못했고 월세며 전기세 수도세가 다 밀린 상태였죠.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대리운전을 했는데, 그냥 운전만 한 것이 아니라 낮에 만든 김치 샘플을 대리운전 고객들에게 나눠주었어요. 샘플에 구매하는 방법과 매장 위치를 적어놓았는데, 이것을 보고 찾아와 김치를 구매한 분이 제 첫 고객이었습니다.”

소셜MC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펼쳐놓은 사진
소셜MC에서 발행하는 대학생 잡지 , 대학생 스스로 컨텐츠 제작부터 편집까지 모두 도맡아 한다.

김용태 대표(소셜 MC) “초반에는 사업 자금을 모으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어린 나이인 데다가 경험과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도전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온라인 기반 마케팅을 생각해냈어요. 집에서 컴퓨터 한 대로 일을 시작했죠. 이렇게 작성한 마케팅 제안서를 대학교, 어학원, 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계속 돌렸는데, 한 군데도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코엑스 농수산물산업 박람회에 무작정 찾아가 제안서를 돌리며 영업을 했죠. 결국 그날 30명의 대표/마케팅 담당자를 만났고 마침내 첫 번째 계약을 성사시켰어요.”

감자집, 열정골뱅이, 꼬치집 간판
청년장사꾼 가게1호점 감자집, 뒤를 이은 골뱅이집(오른쪽 위)과 꼬치집(오른쪽 아래). 세 가게는 경복궁역 근처 금천교시장 골목에 같이 있다.

김윤규 대표(열정감자) “창업에 대한 열정이 넘쳤지만, 무작정 요식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에요. 요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아예 없어서 조사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요식업의 경험을 쌓고 시장조사를 하려 이태원에 카페를 먼저 오픈했는데, 장사가 잘 안됐어요. 폐업 위기에 놓일 지경이었죠. 그만둬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에 4,000만 원을 대출받아 ‘열정감자’를 개업했어요. 이때 제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차별화’예요. 감자튀김 가게는 많잖아요. 꼭 ‘열정감자’를 찾게 만드는 아이템 구상을 꾸준히 했고, 잘생긴 직원 팬 사인회 개최 등 신선한 시도도 많이 했죠. 노력 덕분인지 열정감자가 대박이 나면서 꼬치집, 골뱅이집 등 조금씩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어요.”

달나라의 떡방아를 찧는 토끼의 그림
브랜드의 로고에도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담고 싶었다는 두 대표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 달나라의 떡 방아 찧는 토끼를 캐릭터화하여 로고에 넣었다.

박성환&이민혁(베스프렌) “처음에는 카페를 여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다가 한국적인 특별함을 어떻게 메뉴에 담을 것인지를 고민하던 차에 크림 찹스를 개발했는데, 현지 반응이 좋아서 디저트를 브랜드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과감히 카페 창업의 꿈을 접고 베스프렌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죠. 사실 떡과 디저트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죠. 미국 사람에게 생소한 떡의 질감이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죠. 하지만 한국의 디저트 ‘떡’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떡이라는 식감이 미국 현지인들에게 어색하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밤낮으로 고민했어요. 저희는 각자가 개발한 신메뉴들은 함께 맛보며 평가하는 자리를 매주 가졌는데, 혹독한 서로 간의 피드백 덕에 베스프렌을 대표하는 메뉴들이 하나둘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열정을 품은 도전, 청춘을 꽉 채우다
CEO의 정장 입은 멋진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사업한다’고 하면 왠지 대단해 보이는 것이 사실. 하지만 CEO의 멋진 모습 뒤에는 성실함, 부지런히 노력해 흘린 땀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호시탐탐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약을 노리는 열정이 있다.

각각 상장을 들고 있는 두사람
개인 스스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노광철 대표, 실제 월급은 2천만원 정도 이지만 남들 돕는데 모두 사용해서 실수령액은 88만원이라고 한다.

노광철 대표(짐치독) “교도소에 납품할 당시 재료값이 폭등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매일 새벽시장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외국 출장 가지 않는 이상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매일 새벽 시장에 갔어요. 그곳에서 물가동향을 파악했죠. 솔직히 인터넷에 다 나와요. 그런데 그건 저와의 약속이었어요. 사실은 시장에 가면서 물가동향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맛을 배우는 거였어요. 시장에 일하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나오셔서 겨울에는 추위에 떨고, 여름에는 더위에 지치시는데도 인상 한 번 안 쓰시고 웃고 소리 뻥뻥 지르면서 정말 열심히 일하세요. 화이트칼라보다 연봉은 훨씬 적지만 그렇게 재미있게 일하실 수가 없어요. 솔직히 강남 사무실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시장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하면 더 많은 기를 얻는 것 같아요.”

기업 이념이자 김용태 대표의 이상이 담겨있는 문구 we make nets
‘소셜 MC’ 건물 입구에 있는, 기업 이념이자 김용태 대표의 이상이 담겨있는 문구.

김용태 대표(소셜 MC) “꿈이 최종적인 목표를 말하는 것이라면, 지금은 꿈을 딱히 정의할 수 없어요. 지금 하는 일은 최종이 아닌, 어떻게 변할지 모를 다음 단계를 위한 것이거든요. ‘소셜 MC’를 경영하면서 배운 것으로, 또 다른 트렌드와 그물망의 인프라를 만들고 싶어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씨가 전자·전기 사업에서 시작해, 뉴미디어 통신 분야로 사업을 변모시키고 인프라를 만든 것처럼요.”

좌)청년장사꾼들이 흰색종이를 들고 있다. 우)청년장사꾼들이 두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김윤규 대표가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청년장사꾼 멤버들. 청년장사꾼의 성공 요인은 상권도, 음식도 아닌 ‘사람’.

김윤규 대표(열정감자) “요즘은 ‘뭐하다 안되면 장사하지.’ 하면서 장사를 너무 쉽게 생각해요. 사업하고 번 돈으로 장사 한다? 99% 망합니다. 프랜차이즈들이 많잖아요. 나만의 것으로 장사도 재미있게 해야 해요. ‘내 거’를 만들어야 해요. 내 것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저도 예전엔 대외활동만 많이 했지, 실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한테 뭐라 할 때 처음엔 질투하는 건 줄만 알았죠. 그런데 이젠 당당히 ‘장사꾼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것이 진짜 제 것이니까요. ‘진.짜.내.꺼’를 찾으세요. 내 것이 있어야 그다음 것이 존재해요.

파티현장의 모습
맨해튼 80가 갤러리에서 열렸던 베스프렌의 런칭 파티 현장의 모습. 디저트 쇼룸은 새로운 디저트 메뉴를 맛보고자 몰려든 갤러리 관람객들로 붐볐다. 현장의 분위기만 봐도 신 메뉴에 대한 반응은 매우 좋아 보였다.

박성환&이민혁(베스프렌) “뉴욕에서 열리는 푸드 페스티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가했어요. 미국 현지들에게 한국의 떡을 맛 보이고, 초콜릿을 접목한 디저트를 선보였죠.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베스프렌을 초청하는 기관이나 행사 자리가 많아졌는데, 디저트를 선보일 때마다 저희 앞에서 먹어 보고 맛있어하고 또 놀라워하고, 재미있다고 해줄 때가 가장 보람 있더라고요. 마케팅을 따로 많이 한 것도 아닌데, 많은 분께서 찾아주시는 걸 보면 새삼 신기하기도 해요. 참 감사하죠. 책임감이 생겨요. 책임감은 저희가 일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재미있고 참신한 발상’을 발상에 머물지 않고 개발하고 발전시켜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요.”

‘대학생 창업’. 어쩌면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천의 첫발을 떼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 경험과 인맥, 자본, 나이 등 대학생에게 핑계 댈 거리는 너무나 널리고 깔렸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5인의 청춘 CEO의 창업 스토리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 어떤가? 이들이 일궈낸 성과 이전에 그 과감한 도전정신과 실천 의지에 박수가 절로 나오지 않는가?

도전하는 청춘은 늘 아름다운 법이다. 그대도 꿈이 있다면 도전해 보라! 지금, 당장, 롸잇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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