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예술과 한국의 전통을 빚다, 도자 공예가

사진_유다솜/제19기 학생기자(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이미선/제19기 학생기자(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영국 웨지우드 박물관 안의 한 전시관. 뒤쪽 하얀 벽면에는 벽 사이사이에 움푹 들어간 공간으로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가운데로는 수레처럼 생긴 상자에 깨진 도자기가 가득 담겨 있으며, 옆의 낡은 선반에는 도자기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듯한 여러 모양의 납작한 그릇이 놓여 있다.

포트메리온, 로얄 알버트, 그리고 웨지우드까지. 살림과는 거리가 먼 20대라도 언젠가 한 번쯤 들어보거나 어디선가 직접 보았을 법한 고급 도자기들이다. 뽀얀 빛깔에 얇은 두께를 자랑하는 이들, 본차이나의 발상지는 바로 영국의 도자기 마을, 스토크 온 트렌트(Stoke-on-trent)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스토크 온 트렌트를 부러워하기에는 우리나라에도 멋들어진 도자기의 도시, 이천이 있다. 본차이나에 맞설 만한 우리의 멋이 살아 숨 쉬는 이곳은 지금 도자기 축제로 한창 바쁜 상태. 도자기로 유명한 두 고장에서 날아온 따끈따끈한 도자기 이야기를 전한다.

나라를 책임진 도자기

스토크 온 트렌트 역 앞에 서 있는 조시아 웨지우드의 동상. 역 앞의 작은 광장 한가운데에 커다란 남자의 상이 서 있다. 상은 중세 시대 유럽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양갈래로 나눠 빗은 머리에 긴 재킷을 입고 한 손에 작은 도자기를 들고 있다.

영국, 스토크 온 트렌트에서도 가장 역사가 깊은 도자기는 바로 웨지우드. ‘영국의 도자기 역사는 웨지우드와 함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700년대부터 마을에 자리를 잡고 대를 이어 도자기를 만들어 온 이 가문을 기리기 위해서일까. 스토크 온 트렌트 역 앞에는 도자기를 품에 안은 조시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의 동상이 서 있기도 하다.

영국 도자기의 아버지 조시아 웨지우드는 영국식 도자기라 불리는 본차이나(Bone china) 탄생의 주역이다. 본차이나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도자기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도자기의 종류로, 소뼈를 원료로 했다고 하여 그 이름이 뼈를 뜻하는 Bone과 중국을 뜻하는 China의 합성어로 만들어졌다.

가볍고 두께가 얇아 맑은 빛이 도는 본차이나를 두고 전문가들은 반투명하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연약한 겉모습과 달리 매우 견고하고 고급스러워 영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도자기로 꼽힌다. 또한 본차이나는 영국의 도자기 산업을 이끌며 유럽과 전 세계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영국인이 사랑하는 차(tea) 문화가 바로 도자기의 부흥으로부터 나온 것은 물론,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전의 중심에 도자기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웨지우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 왼쪽 사진은 도자기를 만드는 틀과 무게를 재단하는 양팔저울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에는 도자기를 만든 것과 동일한 과정으로 제작된 작은 액자의 벽화, 무늬 접시 등이 놓여 있다.

우리나라의 도자기 역시 영국의 그것만큼이나 위상이 대단하다. 전국의 다양한 박물관에서 거의 빼놓지 않고 볼 수 있는 유물이 바로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의 도자기다. ‘도자기를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도자기 강대국으로 꼽힌다. 국내는 물론 영국의 많은 박물관에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화려한 중국의 도자기, 세밀한 일본의 도자기에 비해 우리 전통 도자기는 단순한 형태, 조용한 색을 추구한다. 이 소박한 아름다움은 우리 도자기만의 뚜렷한 특징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또한 빗살무늬 토기부터 상감청자까지, 전 시대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도자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도자기와 함께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영국과 한국, 두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도자기는 그 어깨가 무겁다. 그리고 그 어깨를 지탱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두 나라의 도예가들이다.

MINI INTERVIEW 1 | 예술을 빚다, 웨지우드의 도예가들

럽젠Q 웨지우드의 도자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나요?

“한 줌의 거친 흙이 한 점의 고운 도자기로 빚어지기까지, 웨지우드는 크게 3단계의 과정을 거쳐요.”

도예가가 물레 위에 놓인 반죽을 잡아 모양을 만들고 있다.

1. 빚기(Potting)

“반죽을 물레에 돌려 도자기의 기본 형태를 갖추는 단계입니다. 먼저 반죽을 압축해 그 속의 공기를 모두 빼내고 잔, 접시 등 필요한 형태로 모양을 만들죠. 이후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에 이르는 자연 건조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수분이 증발해 약 15%가량 그 크기가 줄어들게 돼요.”

재봉틀처럼 생긴,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계에 도예가가 모양이 잡힌 도자기를 갖다대고 있다. 아래로는 이미 이 기계로 깎여나간 도자기 반죽들이 보인다.

2. 다듬기(Turning)

“다른 딱딱한 것들과 달리 도자기는 절단해서 모양을 다듬을 수가 없어요. 이 때문에 날이 회전하는 특수 장비를 이용해 그 표면을 갈아내고 굴곡을 만들죠. 때론 아주 단순하게, 때론 아주 복잡하게도 다듬기가 가능합니다.”

도예가가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석고틀에 도자기 반죽을 넣고 칼로 문지르는 모습이다. 석고틀 안에는 긴 동그라미가 여러 개 붙어 있는 모양의 반죽이 들어가 있다.

3-1. 돋을새김(Ornamenting)

“웨지우드 도자기만의 특징인 입체 장식을 만드는 과정이에요. 석고 틀에 반죽을 넣어 장식을 만들고 그것을 도자기에 붙이는 모든 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죠. 아직 굳지 않은 장식 반죽이 매우 연하기 때문에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에요.”

한 사람이 흰색의 접시 위에 연두색의 스티커를 붙이고 이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다.

3-2. 리소그래피(Lithography)

“판박이와 비슷한 그림 패턴을 이용해 도자기를 장식하는 방법이에요. 화려한 색깔과 정교한 모양을 아주 간단하게 표현해낼 수 있죠. 그러나 마냥 쉬운 작업은 아니에요. 공기와 물이 남아있지 않도록 완벽히 제거해야 하고, 정확한 위치에 모양을 고정하기도 꽤 까다롭거든요.”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이 팔레트에 여러 색의 물감을 묻힌 다음 접시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접시 아래의 테이블에는 그 사람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원본이 놓여 있다.

3-3. 그림(Painting)

“수채화 물감과 비슷한 도자기 전용 물감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작업입니다. 멋진 그림이 나오기 위해 미적 감각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에요. 그림에 따라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만큼 신중하게 공을 들여야 하고요.”

럽젠Q 어떤 과정을 거쳐서 도예가가 되셨나요?

“어릴 때부터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도자기를 공부했어요. 공장과 현장에서 많은 실습도 거쳤죠. 그러다 보니 경력이 쌓이고 웨지우드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벌써 30년째 일하고 있죠.”

럽젠Q 도예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정교함이나 꼼꼼함도 중요하지만, 제가 가장 강조하는 점은 인내심이에요. 도자기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작업이 필요하고, 각 과정마다 소요되는 시간도 길거든요. 제 뜻대로 도자기가 나오지 않는 어려움도 있고요.”

럽젠Q 일을 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 작품이 전시회에 소개되거나 웨지우드 작품집에 실리는 것을 볼 때 가장 좋아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샘솟거든요. 때문에 그런 전시회나 작품집 자료들을 항상 스크랩해서 보관하고 있어요. 힘이 들 때마다 보곤 하죠.”

MINI INTERVIEW 2 | 전통을 빚다, 김성춘 도자공예가

김성춘 도예가가 작업실에서 도자기를 빚고 있는 모습이다.

흙부터 불까지, 완벽한 우리 전통 도자기를 추구하는 도예가가 있다. 손수 만든 전통 가마에 직접 베어 온 소나무 장작을 지펴 도자기를 구워내던 날. 불 앞에서 연신 땀을 닦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었다.

럽젠Q 전통 도자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고,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요?

“흙으로 반죽을 만들고, 물레로 형태를 만든 뒤 초벌과 재벌을 거쳐 만들어지는 기본 과정은 일반적인 도자기와 같아요. 차이는 흙과 물레, 그리고 가마에 있죠.”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사진. 왼쪽 사진은 갓 반죽한 큰 덩이의 찰흙이 비닐봉지 안에 있는 모습이고, 가운데 사진은 물레 위에서 모양을 잡아가고 있는 반죽의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다른 물레 위에서 세심하게 모양을 잡고 있는 모습.

“먼저 도자기 흙을 직접 만듭니다. 도자기의 뼈대 역할을 하는 단단한 성질의 카오린과 도자기의 살이 되는 말랑한 점토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그 성질을 직접 조절할 수 있죠. 또 만들어 쓰는 흙이 그 색깔도 훨씬 좋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흙을 물로 반죽한 뒤엔 물레에 돌려 성형을 하는데요. 직접 발로 차며 돌리는 나무 물레에 반죽을 올려 모양을 내고, 굽을 만들어 도자기가 설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굽을 만드는 것은 밋밋했던 도자기 밑을 파내 가며 바닥 두께를 만드는 일이기도 해요. 바닥을 두드려서 나는 맑은소리를 듣고 바닥 두께를 가늠하며 작업합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바닥이 너무 얇아지거나 구멍이 날 수도 있어 집중력이 필요하죠.”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사진. 왼쪽 사진은 도자기를 굽기 위한 불가마에 장작을 넣고 있는 모습, 가운데 사진은 도자기가 구워지는 불가마를 찍은 모습이다. 불가마는 낮고 동글동글한 방이 여러 개 늘어서 있는 듯한 모양이다. 오른쪽 사진은 불가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

“마지막 차이점은 바로 가마에 있습니다. 흙벽돌과 망생이를 이용한 전통 4칸 가마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요. 장작 역시 소나무만을 사용해야 하고, 불을 지펴 온도를 올리는 데에만 반나절이 필요하죠. 도자기의 종류(백자, 청자, 분청사기)에 따라 필요한 가마 내부의 산소 농도나 온도도 불의 색깔만 보고 알 수 있어야 하고요.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럽젠Q 도예가가 되려면 어떤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요즘은 많은 대학에 도자기에 관련된 전공이 있어요. 비단 도자 공예뿐만 아니라 조소, 재료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가 도움이 되죠. 때문에 진짜 도예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보다 시간을 투자해서 많이 연구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전통 도자기를 해보고 싶었기에 더욱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옛날 도자기를 눈으로 익히고, 개인 공장부터 큰 기업까지 다양한 곳에서 도자기를 만들며 손으로 익혔지요. 그 과정에서 공부보다도 중요한 것들을 얻었습니다. 값진 경험과 거기에서 오는 사고의 확장, 그리고 다양한 소스들이 바로 그것들이었죠.”

럽젠Q 도자기를 다루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도자기를 자세히 배우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던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국립 중앙 도서관에 남아있는 일본 강점기 우리 국토 광물 연구 자료를 토대로 지방을 돌며 옛 흙이 남아있는 곳을 찾으러 다녔죠. 도자기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도자기 파편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도자기가 깨진 파편에서 그 당시의 형태와 두께, 장식 기법 등 박물관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을 직접 관찰할 수 있어 굉장히 가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위해 전국 팔도를 돌며 발품을 파는 일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일이었죠.”

김성춘 도예가가 불가마 앞에서 쭈그리고 앉은 채로 이쪽을 보고 있다.

럽젠Q 일을 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장작으로 불을 때는 전통 가마는 불의 변화나 불길이 닿는 순서에 따라 요변이 생겨요. 불이 먼저 닿는 면이 더 빨리 수축해 비대칭적으로 구워지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있죠. 그렇게 요변이 생겨 뜻밖의 도자기가 탄생했을 때 희열을 느끼고 전통 도자기를 하는 것에 대한 보람을 느낍니다.”

럽젠Q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이 보며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인문학 책도 좋고, 패션 디자인이나 건축 양식도 좋아요.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흡수하려 하죠. 그 안에 깃든 부수적인 이야기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해 나갑니다. 어느새 도자기에 그것을 응용할 수 있게 될 정도로요.”

럽젠Q 도예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레나 가마는 늦게 배워도 노력한다면 금방 익힐 수 있죠. 그러나 사람의 성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깊은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하죠. 도자기는 만드는 사람의 인성이 스며드는 것이니까요.”

완성된 도자기의 모습. 국그릇보다 조금 더 큰 그릇들이 베이지색의 말끔한 모양으로 여러 개 놓여 있다.

럽젠Q 도자기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수한 매력을 지녔지만 굳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성취감’을 말하고 싶군요. 정말로 힘든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는 것이기에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 남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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