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스토리텔러, 도슨트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하며 그린 고갱의 그림 속엔 무수한 상징과 의미가 담겨 있다. 가운데 있는 여인은 무엇을 따고 있는 걸까? 사과? 혹은 욕망? 푸르스름한 여신상 곁에 여인은 또 누구일까? 늙은 여인이 귀를 막고 웅크린 이유는?
명화 속 숨은 이야기를 부활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차원 평면 그림에서 삼차원의 스토리를 소개하는 이들. 도슨트이다!
화가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 가운데의 아랫도리만 가린 여인이 하늘을 향해 팔을 들고 서서 무언가를 따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왼쪽 뒤편의 푸른 조각상 옆 여인은 오른쪽을 향해 서 있고, 그림 왼쪽 앞에 흰색 옷을 입은 여인이 웅크리고 있다. 오른쪽 뒤로 두 사람이 지나가고, 벌거벗은 사람이 뒷모습을 보이며 앉아 있다. 그림의 오른쪽 앞에는 세 사람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그 오른쪽으로 아기가 바닥에 누워 있다.

도슨트? 큐레이터?

많은 사람이 도슨트와 큐레이터를 헷갈려 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련된 전문가라고 하면 큐레이터만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큐레이터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관람객에게 전시와 작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사람은 바로 도슨트이다. 그래서 큐레이터를 일컬어 미술관의 숨은 꽃이라 하고, 도슨트는 미술관의 얼굴이라고 한다.

도슨트는 ‘가르치다’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했다. 가장 처음 도슨트 제도가 생긴 것은 1845년 영국이지만 이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곳곳에 도슨트 제도가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처음 도입되어 수당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큐레이터는 대부분 석사 이상의 미술 전공자들로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 섭외, 디스플레이, 도록 제작 등 전시의 전 분야를 총괄한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 하는 직업

조각이 전시된 미술관의 전경. 아치형의 르네상스풍 미술관에 인물 조각상이 전시돼 있고, 사람들이 관람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다.
도슨트는 큐레이터와 달리 전문 직업인은 아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교육을 받으면 누구든지 현장에서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전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미술 전공자라고 해서 반드시 도슨트를 잘 하는 것 역시 아니다. 도슨트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끝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
이에 대해 국내 최초의 사설 도슨트인 윤운중 씨는 “알고 있는 내용을 정확하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전달력과, 듣는 사람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 즉 인성이 갖춰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설명하는 사람이 말주변이 없다는 것은 남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것과 같아요. 일부러 전시를 찾고 설명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에게 실망을 주면 안 되잖아요. 관람객이 빠져들 만큼 강렬하고 열정적인 설명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내용은 들어야 하는데 눈은 감기고. 저절로 잠을 부르는 지루한 강의 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그걸 전달하는 기술이 부족하면 강의는 실패한 것과 다름이 없다. 마찬가지로 도슨트에게 요구되는 가장 첫 번째 자질은 전달력이다. 미술사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도 그것을 전달하는 ‘말발’이 없으면 도슨트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동 조각상 앞에 모여든 관람객과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의 모습. 조각상 오른쪽에 도슨트가 서서 설명을 하고, 작품을 바라보고 많은 관람객이 도슨트의 이야기를 듣거나 메모를 하고 있다.
윤운중 도슨트가 강조하는 두 번째 덕목은 ‘인성’이다. 도슨트는 설명을 듣는 관람객의 연령, 성별, 학력 수준 등을 재빠르게 파악하여 그에 맞는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한 마디로 배려. 작품에 대한 설명 외에도, 미술관에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 관람객에서 친절히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지,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찾아달라는 관람객의 말에 함께 전시장 구석구석을 찾아볼 수 있는지 등이다.

이 외에도 도슨트는 미술사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해박한 지식이 요구된다. 서양미술사를 예로 들어보자면, 미술사는 물론 성서, 그리스로마신화, 이집트신화, 서양사, 가톨릭의 역사 등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현지답사와 해당 국가의 외국어 능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위에서도 말했듯이, 전달력과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다. 재미없으면 듣고 싶지 않듯이. 친절하지 않으면 완벽한 설명이어도 듣고 난 뒤 개운하지 않듯이.

MINI INTERVIEW
루브르를 천 번 간 남자, 윤운중 도슨트

윤운중 도슨트의 사진. 검은색 의자에 앉은 윤운중 도슨트가 팔짱을 낀 채 정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줄무늬 티에 하늘색 재켓을 입은 모습에서 신뢰감이 느껴진다.
국내 최초 사설 도슨트 윤운중. 루브르를 천 번 간 남자라는 타이틀답게 그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유럽에 머물며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등 미술관을 찾는 한국인에게 작품을 설명해주는 도슨트로 활동했다. 전도유망, 대기업에 다니던 그가 훌쩍 루브르로 떠난 이유. 바로 예술에 대한 남다른 사랑 때문이었다.

럽젠Q : 사람들이 도슨트에 대해 생소해하는 것 같아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무료이기 때문이죠. 현재 우리나라의 도슨트 제도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료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서 이걸 전문분야로 인식하는 사람이 드물죠. 도슨트도 큐레이터와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직업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7기 도슨트 교육자료집’ 표지. 파란색 책 표지에 이와 같은 제목이 쓰여 있다.

또 무보수로 이뤄지다 보니 지원자도 적고 오래 유지되기도 힘들어요. 그러려면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술관 전문인력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기본적인 생계유지는 가능해야 하죠. 금전적인 보상이 어느 정도 기반이 되어야 더 열정적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거니까요. 실제로 열정도 있고 애정도 있는데 돈이 안 되니까 꿈을 접고 다른 일을 찾는 사람이 꽤 많아요. 그런 인재들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슨트에 대한 지원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럽젠Q : 도슨트가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현장에 꼭 가보길 권해요. 아니 이건 필수입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를 다룬다고 하면, 르네상스 시대 작품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물론, 그 시대에 꽃 피웠던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 작품이 그려진 장소에 가서 직접 보고 느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땠는지를 종합적으로 체험하려는 노력, 그게 기본이라고 할 수 있죠.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그림 속에는 너른 들판에서 여인들이 이삭을 줍고 있다. 왼쪽의 두 여인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있는 이삭을 줍고 있고, 오른쪽 여인은 상체만 조금 숙인 채 이삭을 털어내고 있다.

럽젠Q : 앞으로 도슨트라는 직업이 어떻게 발전하길 바라시나요?

도슨트가 하나의 상품이 되길 바랍니다. 같은 전시, 같은 작품에 대한 설명이라도 어떤 설명이 덧붙여지느냐에 따라 관람객의 태도는 극과 극일 수 있거든요. 흡인력을 가진 스타 도슨트가 성장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미술에 대한 열정을 자극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도슨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고, 그 파급 효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미술관의 얼굴 도슨트. 오래된 그림 하나에서 시대상을 읽어내고, 재미난 설명으로 관람객을 매혹시키는 이들은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와도 같다. 몰랐으면 보이지 않았을 그림 속 신기한 비밀이 도슨트의 입을 통해 현실이 되고 입체가 된다. 명화 속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 전달하는 그들이 있기에 오늘도 미술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그림과 만나고 작가와 하나가 된다.

윤운중 도슨트가 들려주는 19세기 파리의 낭만파 이야기
창가를 등지고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윤운중 도슨트의 모습. 왼쪽 다리를 오른쪽 발목에 걸치고 책상에 기대 서서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낭만주의 시대는 장르 간 교류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이다. 정치, 사상, 문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가 프랑스 파리를 요람으로 하여 한데 뒤섞이고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러한 낭만주의 사조의 정점에는 살롱과 카페가 있었다. 헝가리에서 온 프란츠 리스트, 폴란드의 쇼팽, 독일의 바그너, 이탈리아의 파가니니와 로시니 등 유명 음악가들과, 들라크루아와 같은 낭만파 화가들이 파리의 살롱에 모여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살롱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7세기 초기의 살롱은 귀족들의 신변잡기의 일상이 나누어지는 사교의 장소였다. 그러다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공연에 대한 후기를 나누기도 하고, 여기에 철학적 사상이 더해져 후엔 프랑스 대혁명의 담론이 논의되기도 했다.

일례로 조르주 상드와 뒤마, 빅토르 위고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셋은 당시에도 유명한 삼총사로 늘 어울려 다녔다. 그중 소설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는 7월 혁명 당시 노트르담 성의 정문 옆에 들라크루아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뒤마의 회고록에 따르면 들라크루아는 혁명에 가담하는 것에 대한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결국 혁명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들라크루아는, 후에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림으로써 7월 혁명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고 한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작품 이미지. 분홍색 치마를 입고 깃발을 든 여인이 민중을 이끌며 그림의 중심에 서 있다. 여인의 발아래에는 죽은 민중의 시체가 쌓여 있고, 그녀의 뒤로 총 등의 무기를 들고 쫓아오는 민중의 모습이 보인다.
19세기와 지금의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이 닮았다. 카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결코 우연 또는 일시적 문화 현상이 아니다. 이야기할 거리가 늘어났다는 것, 이것은 곧 장르가 융합하고 새로운 사상들이 출몰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뜻이다. 어딘가에서 나누어지는 영감의 교류는 이전 것들과 어우러져 새로운 사조를 이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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