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리는 자, 미술품 복원 전문가

“마치 죽은 화가의 영혼이 나를 빌려 작업하는 듯한, 영혼이 맑게 씻기는 느낌이었다.”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중에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주인공 준세이는 오래된 미술작품의 갈라진 틈을 메우고 바랜 색을 다시 칠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죽어 있는 미술품을 되살리는 준세이가 현실에도 있다. 시간을 되돌리는 자, 미술품 복원 전문가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묘사하는 미술품 복원 전문가는, 사실 실제보다 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미술품 복원 전문가를 화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의사에 가깝다.

미술작품도 아프다. 이동 중 떨어지고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전시 중에 사람들이 툭툭 건드리면 타박상을 입기도 한다. 물에 젖거나 습기가 많으면 쭈글쭈글해지기도 하고, 기후 변화로 인해 감기에 걸리기도 한다. 이런 미술 작품을 ‘치료’해 주는 것이 실제로 미술품 복원 전문가가 하는 일이다. 다양한 미술관이나 박물관, 가끔은 개인 화랑에서 미술품 복원 전문가에게 ‘그림 환자’를 보내면 하나하나 증상을 살피고 치료해 돌려보내는 것이다. 때로는 유명 전시가 국내로 들어올 때 전시 전 검수, 전시 중 혹시 모를 사고 대기, 전시 후 검수 등을 맡기도 한다. 그러니 미술품계의 명의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영화와 현실, 어떤 점이 다를까?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속 미술품 복원 전문가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직업이다. 물론 현실에서도 미술품 복원 전문가는 매력적인 분야이지만, 영화보다는 조금 덜 시적이고 조금 더 기술적이다. 특히 누군가 준세이를 시기해 그가 복원 중인 미술품을 찢어버린 부분은 영화적 표현이다. 그저 복원가마다 방법과 숙련도가 다를 뿐 시기나 질투로 일어나는 사건은 거의 없다고. 의사가 다른 의사의 능력을 시기해 환자를 해하는 일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환자의 증상이 각각 다른 것처럼 미술작품도 그렇다. 가장 흔한 경우는 캔버스가 찢어진 상황. 캔버스는 천이기 때문에 충격에 쉽게 늘어지거나 찢어지기 쉽다. 또 유화의 경우는 보관 부주의로 지나치게 건조하거나 습해지면 물감 표면에 많은 문제가 생긴다. 햇빛을 너무 받아 가뭄이 온 논처럼 쩍쩍 갈라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조각이나 설치미술은 작품 일부가 부러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실제로 얼마 전 열렸던 <팀 버튼 전>에서도 몇 점의 작품이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전시가 끝나고 돌아가기 전 치료를 받을 작품도 대기 중이다.

그렇다면 손상된 미술품은 어떻게 다시 새 모습을 찾을까? 캔버스가 충격을 받아 찢어지면 천이 원래보다 늘어난다. 천을 수분으로 부풀려 맞춰보는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에는 조금 잘라내 길이를 맞춘 뒤 양쪽 천의 올과 올을 하나하나 연결시켜 붙여준다. 이는 굉장히 세밀한 작업으로 특수한 기구가 필요하다. 색이 날아간 곳에는 주변의 색과 ‘색 맞춤’을 해준다.
유화가 손상되었을 경우는 어떨까? 무조건 새 유화로 색을 덧칠해주는 것은 아니다. 옛 모습 옛 색감 그대로를 표현하기 위해 특수 물감을 사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래된 종이를 삶아 색을 뽑아내는 등 독특한 방식으로 색을 내기도 한다. 물감이 들뜬 상태에는 특수 접착제를 넣어 물감 층을 하나하나 다시 붙여준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미술품 복원 전문가 선서!!
미술작품의 의사, 미술품 복원 전문가에게도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첫째, 수명을 늘릴 것!
작품을 복원할 때는 이 작품의 이후 내구성까지 고려해서 작업한다. 작품이 더욱 오래 갈 수 있는 방향으로 복원을 진행한다.
둘째, 왜곡 금지! 훼손 금지!
첫 번째 원칙을 고려하되 절대로 원작을 훼손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미술품 복원 전문가는 ‘치료’를 하는 것이지 ‘창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셋째, 제거가 가능하도록!
복원한 부분을 원작에서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원 후 시간이 오래 지나면 복원한 부분만 변해서 주변과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때 다시 떼어내고 새로 복원할 수 있도록 복원 작업은 특수 물감을 사용한다.

미술품 복원에는 작업과정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한 단계가 있다. 바로 고민하는 시간이다. 처음 손상된 미술작품을 받으면 먼저 어디가 어떻게 손상되었는지를 파악하고 어떤 방법으로 복원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어떤 손상에는 어떤 방법을 쓴다’ 정도는 대략 정해져 있을지라도 어느 정도로 진행할 것인지, 이 작품의 특성상 위험성은 없는지, 색 맞춤을 하기 위해서 어떤 물감을 쓰고 어디서 색을 추출해야 하는지 등은 어떤 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방향을 정하고 미술작품에 대한 진단서까지 작성하면 처리 과정은 사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이 복원 전체를 좌우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때로는 이 과정만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과학과 미술을 버무리고 역사 한 스푼, 수학도 조금!

미술작품을 다루지만 온갖 수술 도구와 화학 물질을 이용하는 사람들. 미술품 복원 전문가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에도 미술과 과학이 적당히 버무려져 있다. 하지만 미술품 복원 전문가에게 미술작품은 ‘예술’이기 전에 ‘물질’이며 ‘대상’이어야 하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 복원 작업 자체에서 미술의 창의력이 아닌 과학의 정교함이 요구되며, 엄밀히 따지면 과학의 비중이 조금 더 크다. 실제로 학교에서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를 공부하다 미술품 복원을 배우러 온 학생이 다른 곳에 가서 화학은 물론 물리에 수학 수업까지 들어야 했던 일도 있단다.

Art 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 김주삼 소장은, “물론 물질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지나치게 물질만 보는 것도 지양해야 할 것 같다.”며 다른 분야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미술작품의 가치를 알고 아우라를 느낄 줄 아는 사람과 오로지 물질로만 미술작품을 대하는 사람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미술품 복원은 미술만 필요한 것도, 과학만 필요한 것도 그렇다고 미술과 과학 두 가지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폭넓은 미술, 예술에 대한 이해와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다양한 화학 물질과 재료 기법까지, 그 모든 것이 버무려져야만 미술품 복원 전문가가 될 수 있다.

Mini Interview
김주삼 Art 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 소장의 미술품 복원 이야기


럽젠Q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미술품 복원 전문가가 되었나요?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미술 동아리에 들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화학보다 더 푹 빠져있었죠. 그러다가 미술잡지에서 우리나라 작품 하나가 훼손되어 일본에서 복원해 왔다는 글을 보게 되었어요. 그때 복원의 과정에 화학적인 부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미술과 화학, ‘어 이게 내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럽젠Q 지금도 생소한데 예전에는 더 생소한 직업이었을 것 같아요. 진로를 결정하는 데 고민은 없었나요?

많이 고민했죠. 특히 그 당시에는 졸업하면 바로 취직이 됐어요. 그런 쉬운 길을 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어렵게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거잖아요. 주변에서 말리기도 하고 고민도 했지만 너무 하고 싶었고 재미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유학 시험까지 보면서 부모님을 설득해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게 됐어요.

럽젠Q 복원한 작품 중 모두가 알만한 유명 화가의 것이 있나요?

물론이죠. 모네, 샤갈, 마티스의 작품도 해 봤고, 현대의 유명 화가의 작품도 많이 복원했어요.

럽젠Q 그럴 때는 기분이 어떠세요? 작업할 때도 무척 떨릴 것 같은데요

정말 좋죠. 그런 작품을 직접 본다는 것이. 하지만 매일 접하는 게 미술품이다 보니 무뎌지는 경향도 있어요. 복원할 때는 오히려 그래야 하죠. 너무 떨면 작업이 안 돼요. 긴장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거든요.


럽젠Q 직업병도 있나요?

숲이 아니라 나무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전체적인 것보다 세세한 부분에 주목하게 되고 혹시 이 미술품에 손상이 갔는지, 흠이 있는 지부터 살피게 되죠. 이런 습관이 꼭 나쁜 건만은 아니에요. 어떨 땐 아우라를 만들기 위한 세세한 장치들이 보여서 더 재미있거든요. 이 효과는 이 장치 때문이구나, 하고 감탄하기도 합니다.

럽젠Q 미술품 복원 전문가의 장, 단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장점이야 셀 수 없이 많죠. 마티스 작품을 보통 사람이 언제 눈앞에서 보겠어요. 고흐? 모네? 영광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품이 생명을 되찾았을 때, 다시 전시장에 걸릴 수 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단점이 있다면 채용의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 주로 경력직 위주로 뽑는데 경력을 쌓을만한 곳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죠.

럽젠Q 미술품 복원 전문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요즘 친구들은 전반적으로 너무 빨리 결과를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조급해요. 저는 서른넷에야 밥벌이를 시작했어요. 앞으로 펼쳐나갈 길이 더 많으니 조급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무엇보다 단순히 전망 있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진로를 결정하기보다는, 정말 잘할 수 있고 내게 맞는지를 생각해 봐야겠죠. 그리고 고민 끝에 선택했다면 과정의 어려움은 모두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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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복원가를 의사라고 표현하다니! 근데 정말 의사같아요 섬세하게 작품의 한군데 한군데를 진단하고 만져주는게요. 많은 사람들이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고들 하는데 김주삼 소장님은 나무를 잘 본다고 하시네요ㅎㅎㅎ저도 숲과 나무 둘다 보지만 숲보다 나무를 보는게 재미는 더 있는 것 같아요. 그리구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씀에 왠지 위로를 받고 간다는? :) 재밌게 봤어요 미나미나 기자님 ^0^*
  • 고은혜

    자꾸 미스터빈의 <휘슬러의 어머니>가 생각나요;;;;;; 박물관 미술관에 잠깐이지만 있어보면서 예술품과 유물이 얼마나 소중하고 다루기 어려운 것인지 몸소 느꼈던 기회가 있었어요. 온도, 습도, 밝기 등등 하나하나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더라구요. 혹시라도 외부 공기가 들어가게 되면, 혹시 안에 사람이 있더라도 자동적으로 공간을 폐쇄해 버린다고........ㄷㄷㄷ 멀쩡한 유물도 그렇게 관리가 어려운데 하물며 이미 손상이 된 작품들은 얼마나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까요. 대단하십니다 정말bbb
  • 이미선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흥미진진하게 정독한 기사네요! 직업 자체에 대한 몰랐던 정보도, 알록달록하고 새로운 이미지도, 김주삼 소장님의 상냥한 인터뷰도 모두모두 좋아요 :D !!! 생소한 직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당당히 우뚝서신 소장님의 용기가 존경스러워요! 이제 국내에서도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복원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요ㅎㅎ섬세함으로 미술품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되살리는 직업! 정말이지 인상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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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저도 이야기 나누면서 정말 즐거웠답니다~ 새로운 자극이 되었던 인터뷰였어요!!

  • 민성근

    정말 미술품 복원 전문가의 최고 장점은 명작들을 눈 앞에서 지켜본다는 거겠네요.ㅋㅋ 하지만, 손 삐긋하나 잘못한다면... ㅋㅋㅋ 작품이란게 오랜 기간이 지나게 되면 미세한 변형이 생기게 될텐데, 그것까지 하나하나 원래대로 복원한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ㅋㅋ 정교한게 꼭 유리공예가와 닮았네요. 아! 곧 나오게 될 유리공예가에 대한 기사도 많이많이 기대해주세요! ㅎㅎㅎㅎ 잘봤습니다 민하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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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하

    손 삐긋하면..... ㅋㅋㅋㅋㅋ 정교한 유리공예가 기사도 완전완전 기대중입니다ㅋㅋㅋㅋ! 역시 성근기자!

  • 유이정

    시간을 되돌리는 자! 마치 런닝맨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네요ㅎ.ㅎ 미술품 복원이 얼마나 천천히, 심혈을 기울여 해야하는 작업이면 고민하는 시간만 몇달이 걸릴까요. 빨리빨리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기사입니다. 모든 세상 사가 미술품 복원처럼 천천히 이루어진다면(답답할 수야 있겠지만) 실수 없이, 갈등 없이 여유롭게 풀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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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하

    오, 이정기자 멋진 생각이네요 :) 실수없이 복원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는 미술품 복원 전문가처럼 우리에게도 조금 더 오랜 생각이 필요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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