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가치를 빚어내는 자, 네이미스트

한 생명이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짓기 위해 수많은 의미를 고민한다. 이름은 곧 그 생명이 살아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름이라는 그릇을 빚어 굽는 사람들이 있다. 네이미스트는 브랜드 가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름을 작명한다. 생소하기도 하면서 광고의 마케팅, 카피라이터의 역할을 되새기면 또 그리 낯설지 않은 작업이다.

국내에서 네이미스트는 아직까지 모호한 영역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창의적인 전쟁이 펼쳐지는 광고판에서도,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에서도 충당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으레 ‘이름을 짓는 사람이 굳이 필요할까?’ 하는 인식을 첫인상으로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네이미스트가 이름만 짓는 단순한 작명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렇다면 네이미스트는 어떤 일을 할까?

네이미스트의 본명은 브랜드 메이커, 브랜드 마스터, 브랜드 디렉터

상품에 대한 이름을 짓는 일은 별명을 짓는 것처럼 가볍지 않다. 단순하게 착안되는 모습에서 이름 짓기를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네이미스트라는 말은 국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일종의 예명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브랜드 메이커, 브랜드 마스터, 브랜드 디렉터, 브랜드 메이트 등의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브랜드의 전반적인 기획과 마케팅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바탕으로 경쟁사와의 가치도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 이름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른바 BI(Brand Identity)와 CI(Corporate Identity)가 국내 브랜드 시스템에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짓는 일은 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이미스트에겐 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전반적인 전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디자인에 대한 안목도 필요하다. 또한 상표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로 제정된 상표법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다. 즉, 한 상품이 태어나기까지 기획되는 대부분의 분야에 이르러 참여하고 그 끝에 수렴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다.

네이미스트의 현주소와 미래

현재 국내에는 네이미스트를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없다. 네이미스트라고 불리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직업군에도 몇 사람 되지 않아 손에 꼽을 정도다. 국내 네이미스트의 작업 경로는, 디자인 회사 및 광고회사에서 기업 클라이언트의 기획을 바탕으로 작명이 필요한 부분을 네이미스트에게 의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디자인은 디자인 회사에 맡기자.’ 식의 인식에 비해 브랜드 이름을 짓는 것은 소비자에게 공모하거나 기업 내에서 자체적으로 수렴하여 정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에 네이미스트 역할을 맡고 있는 브랜드 회사는 약 100여 개 정도. 통계적으로 네이미스트의 현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광고, 마케팅, 디자인 등의 기업에게 필요한 프로세서에서 네이밍의 역할이 세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네이미스트의 숙제이자 외부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네이미스트에 관련된 조직 형성이 확대되진 않았지만, 머지않아 다양한 시스템을 통해 이름 짓기뿐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그들의 역할이 넓어질 것이다.

1세대 네이미스트로 산다는 것

태양초 고추장의 ‘해찬들’, 츄잉캔디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이쮸’ 등 국민적인 상품의 이름을 지은 1세대 네이미스트 이미림 대표를 만났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삶엔 자식처럼 태어난 수많은 이름이 있었다. 그녀에게 네이미스트에 대한 현장감 있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아직 국내에는 네이미스트와 관련된 조직 형성과 시스템 구축이 필요해요. 시장이 형성되어야 하는 첫 관문에서 네이미스트를 꿈꾸는 후배들과 같이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이지요. 사실 이름 자체가 전부를 대변하기 때문에 이름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들 때 책임감도 크고요. 부르다 보면 닮아가는 것이 이름이잖아요.”

그녀는 현재 ‘브랜드 숲’이라는 네이미스트 브랜드를 창립해 네이미스트의 실무적인 경험을 지도하고 양성하는 소규모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수강료 대신에 그녀는 네이미스트라는 이름에 보다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후배들을 만난다. 재능기부로 후배를 돕는다는 그녀는 1세대 네이미스트로 새로운 네이미스트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었다.

“삼원식품이라는 기업이 종합식품 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그 기업의 대표 상품이었던 태양초 고추장에 이름이 필요했어요. 태양초의 태양이 갖는 따뜻하고 풍성한 햇살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시골집에서 바라보는 서쪽 들녘에서는 늘 풍성한 빛을 가진 태양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죠. 해가 찬 들녘이라고 해서 ‘해찬들’이라는 이름이 태어났어요.”

그녀는 ‘해찬들 아주머니’라는 애칭도 얻게 되었다. 고생해서 만든 이름들이 승승장구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기업 사정에 사라진 이름도 많다고 한다. 마이쮸, 참ing, 삼성플라자 등 그녀가 빚어낸 이름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 권의 책을 내는 것이 목표예요. 하나는 브랜드 또는 네이미스트라는 직업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 두 번째는 소소한 글과 사진이 곁들여진 에세이, 마지막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첫 번째 책은 네이미스트를 꿈꾸는 사람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여성부가 선정한 미래의 직업 TOP100’에서 네이미스트를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다양하고 많은 지망생이 여러 방편으로 문의를 하고 있어요. 네이미스트 1세대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녀는 단순한 이름이 아닌 ‘의미’와 ‘미래’를 작명하고 있었다. 새로운 직업에 대한 기반을 만들며 다양한 후배를 육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면서 말이다. 실제로 그녀가 운영하는 ‘브랜드 숲’ (http://blog.naver.com/brandsoop)에서는 네이밍 스쿨 1기가 수료하고 현재 2기 모집을 준비 중이다. 육성을 위한 기관이나 단체가 없는 국내 시점에서 그녀의 재능기부는 많은 사람을 꿈꾸게 할 것이다.

“숲을 못보고 나무만 보면 발상에 실패해요. 넓게 바라보며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브랜드를 짓는 것이 중요하죠. 틀을 가져서는 안 돼요. 열린 마인드로 재래시장의 가치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이름 있는 브랜드의 가치도 만날 수 있어야 해요.”

그녀가 있기에 네이미스트라는 직업의 미래는 유망하다. 불모지의 땅으로부터 네이미스트로 살기 시작한 이미림 대표의 노력과 직업에 대한 프로페셔널 한 모습. 어쩌면 네이미스트를 꿈꾸는 수많은 사람에겐 ‘해찬들 아주머니’보단 ‘네이미스트의 어머니’ 같은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1세대 네이미스트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녀의 행보에 ‘이름’의 가치가 더 반짝이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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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ing!! 이 이름 참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해찬들과 마이쮸를 만드신 분이었군요 ..차밍...차밍하시다 직접 재능기부를 통해 후배를 양성하고 계신다니 따뜻한 마음과 더불어 직업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
  • 작년에 브랜드 네이밍 분야에서 인턴을 했었는데.... 정말 매력적인 업이예요!!
    하루 하루, 나를 스쳐가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좀 더 세심하게, 좀 더 논리적으로, 보다 완성도 높은 네임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_*)
  • 민성근

    감사히 잘봤습니다! ㅋㅋ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더 힘든 것 같아요. 항상 고민하고, 또 고민할 네이미스트의 모습이 그려집니당. 어쩌면 그들은 정말 마케팅의 신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ㅎㅎ
  • 우와~직업이 따로 있었군요... 생소한 직업인데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늘 접했었네요..
    앞으로도 많은 이름들 지어주세용ㅎㅎ
  • 고은혜

    청정원, 풀무원, 해찬들. 문득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정말 이름 잘 지었다는 생각에 감탄하면서요. 제대로 청정하고 푸르른 느낌bb 저 이름 하나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 지 상상이 안 가네요. 하지만 무언가 이름을 내 놓는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 같아요. 이름을 부르면 꽃이 된다는 어느 구절이 떠올라요. 이름을 지어 준다는 건 마치 꽃 한 송이 전해주며 축복해주는 느낌이에요ㅎㅎ 좋은 기사 감사하므니다 :)
  • 유이정

    평소엔 잘 몰랐던, 그렇지만 알고보니 우리 곁에 언제나 친숙하게 있어왔던 네이미스트의 존재...!!! 마음을 확 끌어당길수 있는 이름을 짓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_* 요즘은 강아지 이름 하나 짓는 것도 중요해서 페이스북에 투표도 많이 하는 시대인데! 브랜드 숲 이미림 대표님이 계셔서 네이미스트의 미래는 해가 찬 들녘처럼 맑음!!^^
  • 이미선

    해찬들이나 마이쮸는 정말 입에 착착 감기는 상품 이름들이었죠 :D 기업 홍보팀에서 정했을 것만 같은 이름들을 직접 지은 네이미스트가 따로 있었다니! 럽젠을 통해 정말 새로운 직업들을 많이 알아갑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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