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날 우리 음악에 대한 이해> 제3강 21세기를 주도할 아시아 음악










산등성이에 떠오르던 보름달이 꾸부정한 모습으로 서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렸다. 산등성이는 태고 적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소나무도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에 있었다. 달 역시 이들과는 무관하게 영원히 뜨고 진다. 이들은 서로에게 무심하다. 그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아름답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냥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명상적이고 동양적인 이미지에 찬사를 보낸다.
‘덩-’하고 한참 있다가 ‘…기덕’해야 장고의 한 장단이 끝난다. 우리는 그 사이의 침묵에서 많은 의미를 되새긴다. 여백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본다. 회화에 있어서도 여백을 중시한다. 소리 혹은 선이나 색은 여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다.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젠 스타일(Zen style)은 장식 없는 담백한 공간을 추구한다. 이 모두 동양적 이미지들이다. 무심하고 허허롭다. 여백이 있고, 자연적이다.
서구음악은 앙상블을 기본으로 한다.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전개를 위해 오차가 용인되지 않는다. 지휘자의 통제에 따라 일사분란 한 움직임을 보인다. ‘잘 맞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다. 화음, 리듬은 물론 끝날 때도 모두 함께 끝난다. 맞지 않으면 틀리는 음악이다.
동양에 와서는 이런 틀이 깨지고, 새로운 미학이 드러난다. 여기서 잠깐 우리의 마당놀이를 엿보자. 연주 도중 남의 말참견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휴대폰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 호흡은 이어진다. 하나의 커다란 에너지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이다. 연주자들은 물론 청중들까지 하나의 호흡으로 연계된다. 연주에 있어서도 틀리는 것이 없다.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을 뿐.
정악(正樂)의 경우, 지휘자는 박을 두 번 치는 것으로 시작을 알리고 연주 내내 침묵한다, 이 때 연주자들은 자신의 호흡을 따라 연주한다. 서구적 리듬관념이 ‘물리적 시간’에 따르는 반면, 동양에 와서는 ‘연주자의 호흡’이라는 ‘생체적 리듬’에 따른다. 이는 음악을 바라보는 근본적 사고의 차이를 의미한다. 이런 예는 어떨까. ‘한 가족이 시골길을 간다. 앞서가는 사람도 있고 뒤따라가는 사람도 있다. 노모는 아버지가 부축하고 꼬마는 아장 아장…. 그들은 서로의 보폭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전체는 조화를 이루며 흘러간다.’ 이는 군인들이 절도 있게 행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진행이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 인류에게 기여한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형식미의 발견이다. 형식미는 구조의 미학이다. 장엄한 건축물은 역학과 구조적으로 완벽해야 하는 데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이 클래식 음악이다. 우리는 서양음악을 통해 장엄한 건축물을 본다. 서양의 예술사조가 건축양식을 따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동양은 ‘만중삭(萬中數)’ 형식을 따르고 있다. 느리게 시작해서 서서히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명상적인 다스림(인도에서는 ‘알라프’라고 한다)으로 시작해서 에너지를 증폭시켜가는 과정을 다룬다. 이 만중삭(萬中數) 형식은 우리나라에서 인도, 아랍까지 전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음악 형식이다.
동양권의 악기가 서양악기에 비해 과학적으로 훨씬 발달된 음향구조를 지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인도 아랍권의 현악기에는 ‘배음현(倍音絃)’이 있다. 이는 직접 연주하는 현이 아니다. 연주하는 음에 따라 공명하는 현이다. 인도의 ‘사로드(Sarod)’는 모두 열 세 개의 현이 있는데 이 가운데 여섯 현은 연주하는 데 쓰고, 나머지 일곱 현은 공명현이다. 시타르나 비나 등의 악기에도 공명현이 있다. 이로 인해 그들의 음악은 음향적으로 풍부한 모습을 보인다. 서양사람들은 아직 공명현이라는 개념에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 대금의 경우, 지구촌에 산재한 수많은 관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청공이 있어 대나무 속껍질을 활용한 청소리를 낸다.
이러한 동양의 음악방식이 서구에 비해 우월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서양이 스스로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많은 과오를 범한 사실을 기억한다. 아무도 빨간 색이 파란색 보다 좋은 색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른 색일 뿐, 색은 우월을 가릴 수 없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는 없다.
1960년대 말, 인기그룹 ‘트윈폴리오’의 윤형주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공개방송에서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룹을 하나 짰지요. 가야금 두 대에 거문고 하나, 드럼 대신 장고로….’ 청중들은 ‘와!’하고 웃었다. 국악기는 촌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된 시기였기에 모든 사람들이 웃을 수 있었다. 이는 우리들의 사고가 서구지향 적이었던 시기의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그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었다. 앞으로의 음악은 서구의 영향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사회상을 반영하며 전개될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서양음악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 아름다움과 진지함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우리의 아름다움을 나누어줄 때이다. 서양사람들에게는 모성애나 효(孝)를 주제로 한 노래가 없다. 우리의 끈끈한 가족애가 담긴 노래들을 그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이글을 보는 대학생들에게 부탁한다. 법대생의 경우, 지구촌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사는 곳에는 갈등이 있고, 이를 해결하려는 지혜가 있게 마련이다. 서구의 법 제도만을 탐구하는 편협한 관념에서 탈피하고 오래된 동양의 지혜를 연구해 보기 권한다. 경영학도나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 역시 서구적 관습에서 비롯된 학문을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습득하고 있지 않은지 둘러보기 바란다. 이는 신학, 미학, 경제학, 사회학 등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지구촌의 헤게모니가 동양으로 이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준비할 것이 많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