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이거룡 교수의 인도 이야기 – 불평등의 평등, 카스트









아마 고대 사회에 계급제도가 없었던 나라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 시대까지 양반 쌍놈의 구분이 엄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이 제도가 지금도 여전히 통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하나의 지구라는 말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이다. ‘법 앞에 평등’이든 ‘신 앞에 평등’이든 만인 평등이라는 말은 이미 세계적으로 통하는 윤리 기준이 된지 오랜데, 아직도 계급제도로 사람을 얽어매고, 나는 바라문인데 너는 슈드라니까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세계가 다 변하는데도 유독 인도의 카스트 제도만 그대로인 것은, 이 제도의 밑바닥에 깔린 업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어떤 사람은 부유한 가문의 바라문으로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은 길거리의 슈드라로 태어나는 것은 모두 전생의 업 때문이라는 것이다. 업설은 힌두교의 근간이다. 업설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카스트 제도는 여전히 건재할 것이다. 다시 말하여 힌두교가 흔들리지 않는 한 카스트 제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힌두교는 곧 카스트제도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카스트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학자의 수만큼 기원설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리그베다>(Rig-veda) 제10장의 뿌루샤(Purusa, 原人)찬가에서는 아득한 옛날 신들이 모여 사람들의 조상인 원인을 제물로 제사를 지낼 때, “머리는 바라문이 되었고, 두 팔은 끄샤뜨리야가 되었으며, 그의 다리는 바이샤가 되었으며, 두 발에서는 슈드라가 나왔다”고 노래한다. 또한 18세기말 30여 년 동안 남인도에서 포교활동을 했던 아베 듀보아(Abbe J.A. Dubois)는 카스트제도를 바라문 법률제정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제도라고 말하지만, 이 복잡하고도 유기적인 사회제도가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일시에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힌두교가 그런 것처럼, 카스트제도 또한 수 세기를 통하여 다수 대중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형성된 제도로 봐야 할 것이다.

원래 ‘caste’라는 말은 인도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다. 처음에 인도에 들어왔던 포르투갈 사람들이 인도사회에 결혼과 관련하여 배타적인 내혼(內婚)집단이 있는 것을 보고 자기네 말로 ‘카스타'(casta)라고 부르던 것이, 나중에 영어로 카스트가 된 것이다. 포르투갈어로 카스타는 ‘끼리끼리 집단’이라는 의미다.

인도사람들은 바라문, 끄샤뜨리야, 바이샤, 슈드라의 사성계급을 바르나(varna)라고 불렀다. 바르나라는 말은 본래 ‘색깔’을 뜻하며, 이것은 인도의 사성제도가 피부색과 관련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시 말하여 사성제도는 기본적으로 흰색 피부의 정복민과 검은색 피부의 피정복민에 대한 구분이라는 것이다. 카스트제도가 엄격한 사회규범으로 확립된 것은 <마누>(Manu)법전 이후(기원전 2세기 전후)이다.






현실적으로 인도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바르나라기보다는 그것이 좀 더 세분된 자띠(jati)이다. 자띠를 가르는 핵심적인 요소는 같은 혈통(common origin)과 공동 직업(common occupation)이다. 같은 혈통이면서 또한 같은 직업에 종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나의 자띠를 이룬다는 말이다. 결혼도 동일한 자띠 안의 사람들끼리 한다. 고대 인도사회에서 자띠는 사회의 유기적인 통합을 위한 기능적인 분류였던 것 같다. 사회 구성원들을 각자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분류한 것이 곧 바르나 혹은 자띠라는 말이다. 그러던 것이 차츰 세습화되면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을 지니게 되었다.

자업자득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카스트에 따른 계급의 차별은 전혀 불평등이 아니다. 오히려 평등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하여 전생에 아주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이나 선한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이나 이생에서 마찬가지로 잘 먹고 잘산다면 오히려 그것이 불평등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역설적이게도 불평등이 평등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생과 내생에 대한 믿음이 전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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