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글쓰기 3강









작문 시간에 글쓰기 실습을 하다 보면, 학생들마다 글을 쓰는 스타일이나 과정이나 소요 시간이 다 제각각임을 볼 수 있다. 같은 주제로 똑같이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어떤 친구는 펜을 들자마자 일사천리로 술술 글을 풀어내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머리를 싸쥐고 끙끙 앓다가 겨우 펜을 들기도 한다. 어떤 친구는 시작한 지 삼십 분 만에 뚝딱 끝내고 나가버리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지정한 시간을 넘겨서까지 종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한다. 이들의 차이는 뭘까? 누가 더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
글쓰기의 스타일이나 과정을 놓고 글을 잘 쓰니 못 쓰니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빨리 뚝딱 끝낸다고 해서 무조건 잘 쓴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발동이 늦게 걸린다고 해서 못 쓴다고 할 수도 없다. 어떤 형태로 글을 썼든 최종적인 결론은 글쓰기의 결과물, 즉 글이 말해준다. 그렇다면 과정과 결과 사이에는 상관성이 없는 걸까?

유독 글쓰기에 능숙하고 빠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읽고 써보는 노력을 많이 해보아서건 아니면 원래 글 쓰는 솜씨가 있어서건. 마찬가지로, 읽고 쓰기를 등한시해서건 글쓰기와는 별로 인연이 없어서건, 글쓰기라면 겁부터 나고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과정과 결과 사이의 상관성을 문제 삼을 필요가 별로 없다. 당연히 그러려니 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누구보다도 빨리 척척 글을 써내는데 결과물이 영 시원치 않은 경우. 시작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써내려갔는데 글이 미진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거침없는 필력을 자랑하는가 싶었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 그 아쉬움은 전체적인 글의 모양새와 관계가 있다. 그런 글은 흔히 일관성이나 통일성이 갖춰지지 않았거나 또는 깊이가 없는 글이기 십상이다. 이유가 뭘까? 주어진 과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글에 대한 구상 없이 ‘되는 대로’ 썼기 때문이다. 펜 가는 대로 술술 써내려갔으니 막힘없이 쉽게 빨리 끝낼 수 있었지만 짜임새나 깊이를 갖추지는 못한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그 차이는 더 분명히 드러난다. 숙고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느라 시작도 늦고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그 결과물을 살펴보면 훨씬 짜임새가 있고 내용도 훌륭한 경우. 바로 여기서 우리는 준비 과정, 워밍업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된다. 워밍업이 잘 되었다고 본 게임이 항상 성공적이라는 법은 없지만, 준비 과정 없이 시작한다면 그만큼 실패할 확률은 높아지지 않겠는가. 충분한 고민이나 준비 없이 쉽게 시작했다가는 돌이키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럼 어떤 단계와 순서를 거쳐 글쓰기의 순간이 무르익도록 또는 달아오르도록(warm-up) 해야 할까.
서평이든 논문이든 리포트를 쓸 때 가장 먼저 고심해야 할 것은 주제를 설정하는 일이다. 어떤 포인트로 어떻게 핵심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 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알맹이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내가 이 글에서 승부를 걸 수 있는 지점은 어떤 부분인가. 주제를 잡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글의 창의성과 독창성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여기에는 또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첫째는 내가 쓰고 싶고 흥미 있는 것을 찾는 것이고 둘째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별로 관심도 없는데 중압감으로 시작한 주제는 결국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기 마련이고, 남들이 해놓은 이야기를 답습하게 된다면 쓰나마나 한 글이 되기 십상이다. 셋째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넷째는 의미 있는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거창한 주제를 잡게 되면 하나마나 한 일반론이 되거나 지지부진한 글이 되기 쉽다. 주제는 작을수록, 구체적일수록 좋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목소리, 나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읽어낼 때 내 글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리포트를 단지 해결해야 할 귀찮은 과제 정도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펼쳐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면, 글쓰기가 좀더 멋진 작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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