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현미경]제8강 장보고, 해신인가 해적인가?

 



‘바다’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종족이 바이킹이다. 그런데 우리는 바이킹하면 해적이라는 이미지도 함께 떠올린다. 항해에 능숙하고 싸움을 잘 하면서 난폭하고, 침략적이고 약탈을 일삼는 것이 해적이다. 바이킹을 해적의 이미지로 그린 것은 서유럽 사람들이다. 바이킹의 여러 종족은 8세기말~11세기 생존을 위해 비옥한 땅을 찾아 유럽 여러 지역으로 이동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끔 해안의 다른 종족이나 마을을 공격하기도 하고, 바다 위에서 다른 배를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서유럽 사람들에게 그런 바이킹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파괴나 약탈을 한 것은 바이킹만이 아니다. 결국 해적이란 바이킹을 두려워하는 서유럽 사람들의 이미지인 셈이다.

바이킹은 서유럽 사람들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배를 타고 우수한 항해술로 유럽 전역을 누비며 아메리카까지도 자유롭게 왕래했다. 10세기 레이프 에릭슨이라는 바이킹의 대장은 무리를 이끌고 아메리카에 건너갔다. 콜럼부스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한 것이 1492년이므로 무려 500년이 빠른 셈이다. 이후에도 여러 바이킹 종족이 아메리카를 오가며 생활하였다. 이처럼 바이킹은 뛰어난 바다의 종족이었다.
그렇다면 바이킹은 ‘해적’인가 ‘바다의 왕자’인가? ‘소리없이 강한’ 스웨덴 축구단을 가리켜 ‘바이킹 군단’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바이킹 군단’에서 더 이상 해적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강하다는 이미지만을 느낄 뿐이다. 역사의 이미지는 그렇게 바뀌어간다. 그렇다면 장보고가 가지는 이미지는 어떠한 것일까?

장보고는 고향과 가문의 내력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천한 집안의 출신이었다. 일찍이 당나라에 가서 무령군 소장을 하다가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왕에게 신라 사람들이 중국에 끌려가 노예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자신이 이를 막겠다고 제안해서 1만 명의 군사를 얻어 지금의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을 근거지로 장보고는 군사를 키우고 배를 만들어 바다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다. 신라인을 대상으로 한 해적의 횡포는 사라졌다. 장보고는 중국에도 세력을 뻗쳐 산둥반도에 법화원이라는 절을 세우고 신라인을 도왔다. 중국에 10년간이나 거주하던 엔닌이라는 유명한 일본 승려가 귀국할 방도가 없자 장보고에게 도움을 청해 결국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질만큼 그의 위세는 대단했다.
당시 신라에서는 진골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현재의 국왕이나 태자를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보고의 군사력은 이들에게는 커다란 유혹이었다. 마침내 장보고는 왕위 다툼에 휘말리게 되었다. 김우징이라는 사람의 편을 들어 군사를 동원하여 민애왕을 제거하였던 것이다. 거사가 성공하면 자기 딸을 왕비로 삼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김우징이 신무왕이 되었으나 곧 죽고, 그 아들이 문성왕이 되었다. 문성왕은 즉위 즉시 장보고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예복을 내렸다. 문성왕 7년 왕이 장보고의 딸을 두 번째 왕비로 맞아들이려고 하자 신하들이 반대하였다. 미천한 섬사람의 딸을 왕실의 배필로 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왕은 이 말을 들어서 결혼을 포기하였다.
장보고는 이에 불만을 품고 청해진에서 반역을 꾀했다. 조정은 장보고를 정벌하려고 하기보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때 염장이라는 장수가 나타났다. 자신이 거짓으로 장보고에게 투항한 다음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염장은 날래고 힘이 셌다. 장보고는 그런 염장이 마음에 들어 아무런 의심 없이 같이 술을 마시다 취하였고, 이 틈을 타서 염장이 장보고의 칼을 빼앗아 찔러 죽이고 목을 베었다. 장보고는 이렇게 삶을 마감하였다. 청해진도 함께 사라졌다.
역사 기록에서 장보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도 장보고의 성격이나 살아가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미천한 집안 출신인 장보고가 당나라에 간 것은 다른 사람처럼 노예로 끌려간 것일 수도 있다. 드라마 <해신>도 그렇게 그릴 예정이라고 한다. 당나라에서 장보고는 벼슬을 하였다. 얼마나 높은 벼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당시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일이다. 이는 자신의 능력이나 사회 상황에 대한 뛰어난 판단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당과 신라의 교류가 활발한 가운데,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을 떨칠 수 있는 길인지 장보고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삶의 무대로 자신에게 익숙한 바다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바다는 장보고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무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출신이 미천하다는 것은 장보고에게는 두고두고 짐이었을 것이다. 딸을 왕비로 앉히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딸이 왕비가 되면 장보고 가문은 수직상승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미천한 가문 출신이라는 자신의 꼬리표를 단숨에 떼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장보고는 대담하고 호탕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장보고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정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정년은 나이 때문에 장보고를 형님이라고 불렀으나, 용맹과 힘에서는 오히려 장보고보다 나았다. 이 때문에 서로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당나라에 함께 가서 벼슬을 하였다. 이후 장보고는 귀국을 하여 성공하였으나, 정년은 당에 남아 고생을 하였다. 마침내 정년은 귀국하여 장보고에게 의탁하려고 하였다. 현지 사람들이 말렸다. 장보고가 지난날의 갈등 때문에 정년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년은 죽더라도 고향에서 죽겠다고 귀국하였다. 그러나 장보고는 정년을 흔쾌히 맞아들였다. 그리고 민애왕을 제거하는 거사를 정년에게 맡겼다. “자네가 아니면 이 환란을 평정할 수 없다.”는 굳은 신뢰도 함께 하였다. 강자의 여유이기도 하였지만, 지난날의 갈등 따위는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 장보고였다. 염장의 꾐에 넘어간 것도 장보고의 이런 성격 때문이었다.

장보고를 바다의 영웅으로 볼 수도 있고, 신분 상승이라는 욕망을 좇아 살다 간 인물로 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장보고를 해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보고가 한 시기의 바다를 장악하고 세력을 크게 떨쳤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보고는 바다의 영웅이다. 시대는 영웅을 낳고, 영웅은 시대를 바꾼다고 한다. 신라 후기의 어지러운 사회는 장보고라는 영웅을 낳았다. 그러나 장보고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장보고가 죽은 다음에도 신라의 궁궐에서는 계속해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피가 튀고,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과 수탈에 시달렸다. 이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점차 도적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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