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본 사회]제7강 뇌의 신비,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열쇠

 

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간의 비밀이 속속 베일을 벗고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진 DNA의 구조를 밝혀냈는데, 놀랍게도 인간은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초파리의 유전자 수는 인간의 절반 정도나 되고, 침팬지와 인간은 유전자를 무려 98%나 공유한다니! 그러니까 말하자면 “2%가 부족할 때” 침팬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2%가 장난이 아니다. 그로 인해 침팬지들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무엇이 그 결정적인 차이를 유발했는가? 다름 아닌 두뇌다. 게놈 프로젝트에 이어 야심 찬 도전을 기다리고 있는 광활한 미개척지가 바로 인간의 두뇌다. 1000억 개 이상의 뉴런이 서로 연결되어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그 신비한 메커니즘은 이제 어렴풋한 윤곽만이 드러났을 뿐이다.
그렇다면 뇌의 어떤 점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크기다. 침팬지 뇌의 평균 용량이 500cc인데 비해 인간의 뇌는 1500cc 가까이 된다. 이 양적인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이렇듯 하드웨어에서부터 인간은 엄청난 우위를 갖고 태어난다. 그를 위해 인간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산고(産苦)다. 아기는 몸집에 비해 유난히 큰 머리를 갖고 산도(産道)를 통과해야 하기에 산모의 고통은 다른 어느 동물에 비할 바 못 된다. ‘귀 빠진 날’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출산의 고비는 머리가 빠져나오는 것이다. 결국 여성들의 고생을 기반으로 인류는 거대한 두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뇌의 양적인 크기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을 구성하는 다양한 뇌의 기능들과 그 작동 원리들이 지금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전두엽이라고 하는 영역이다. 사람의 두뇌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0%나 되는데, 이는 영장류의 12%에 비해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고 영장류 이외의 다른 포유류들에게서는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전두엽이 뭐길래? 한 마디로 하자면 그것은 뇌의 전체적 작동을 총지휘하는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비유하면 적절할 것이다. 그 구체적인 기능은 삶의 방향 설정, 동기 부여, 기력, 자발성, 감정의 조절, 계획성, 주의능력, 적극성 등이다.
전두엽은 사춘기 때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는데, 그 프로그램이 적절하게 채워지지 않으면 혼란과 방황을 피할 수 없다. 정체성의 위기에서 오는 불안이나 어른에 대한 반항이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뇌 구조를 살펴보면 전두엽이 작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인과 관계를 쉽게 추론할 수 있을 듯하다. 또한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심한 무기력증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전두엽이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두엽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의 이미지를 미리 떠올리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 그러한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도대체 의욕이 솟아오르지 않는 것이다.
정보 사회에서는 인간의 사고 기능이 결정적이다. 폭증하는 지식과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자기 나름의 명료한 판단을 내리고 스스로 동기 부여할 줄 아는 능력이 점점 요구된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그러한 두뇌의 작용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 볼거리가 홍수처럼 넘쳐 나는 환경 속에서 인류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은 물론 현실 공간에서도 온갖 변화무쌍하고 현란한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과연 그 이미지들은 우리의 미래를 기획하는 실마리가 되고 있는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암시하는 창조성의 재료가 되는가.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문화 환경은 우리의 정서를 정교하게 연마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둔화시키는 것 같다. 미디어는 점점 선정적인 내용으로 승부를 건다. 그래서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까지도 권태를 달래는 자극으로 상품화되어 대량 유통된다. 이러한 정보 현실에서 타인의 정황에 자신을 세울 수 있는 공감 능력(empathy)이 점점 쇠퇴하는 것이다. 전쟁과 굶주림을 피해 지구촌 곳곳을 유랑하는 난민 행렬, 테러나 불운의 사고로 졸지에 죽음에 경계에 내몰린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인의 매체 환경에서 자연스러운 풍경(mediascape)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경은 어떤가.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공감 능력이 거세된 문화에서 의미를 생산하는 원천은 점점 고갈되어 간다. 보이는 것들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보이지 않는 것을 생성해낼 수 있는 상상력과 실천 의지가 박약해지는 것이다. 그 결과 이미 존재하는 것, 눈에 보이는 것에 과도한 부하가 걸린다. 한국의 도시 경관을 흉물스럽게 만드는 간판 문화를 생각해 보자.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발길을 끌기 위해 벌이는 무분별한 경쟁은 극에 달했다.
뇌 과학이라는 첨단 학문은 전문가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을 흥미진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수십만 년의 진화를 통해 형성된 그 복잡한 코드와 그물망 속에 ‘나’의 본질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컴퓨터 기술을 위한 토대가 되고 있다. 인간의 두뇌를 복제한 인공 지능의 꿈이 수많은 과학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뤄졌듯이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더욱 가혹하게 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런 비극이 연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 고유의 정신 영역을 건강하게 보존하고 아름다운 생활 세계를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뇌 과학은 그에 대한 소중한 지침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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