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현미경]제7강 안중근에게서 찾는 화해와 평화의 이미지

 

영화에서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도마 안중근’이라는 제목이었다. 세례명인 ‘도마’를 제목으로 내세운 데서 알 수 있듯이, 안중근이 천주교도였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 이 영화의 한가지 컨셉이었던 셈이다. 천주교도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영화는 우리에게 안중근의 어떤 이미지를 전해주려고 한 것일까?
그런데 사실 천주교도로서 안중근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생활 주변에서 ‘안중근’과 관련하여 가장 쉽게 접하는 것 중 하나는 왼쪽 약지의 한 마디가 잘려나가 새끼손가락과 길이가 같아진 손의 모습일 것이다. 이는 안중근이 1909년 다른 동지 11명과 ‘단지회(斷指會)를 결성하고, 손가락을 잘라 구국 투쟁을 맹세하였기 때문으로 길을 가다 보면 ‘大韓國人’이라는 글자와 그런 손 모습이 드러나는 안중근의 손도장을 새긴 자동차를 가끔 볼 수 있다. 이 모습을 한 자동차를 보면 우리는 강한 민족주의적 정서를 느낀다. 그런 자동차의 주인은 천주교도가 아니라 민족계 종교를 믿고 있으며, ‘민족’이라는 말이면 껌뻑 죽을 것 같은 국수주의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영화 <도마 안중근>에 나타난 안중근도 강한 민족적 정서를 가진 인물이었으며,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도 민족의 영웅적 행위로 그리고 있다.

안중근은 한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책방에 가보면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하는 아동용 책들이 수십 권씩 널려 있다. 확인을 해본 적은 없지만, 가장 많은 전기가 출간된 것이 이순신이 아니라 안중근이라는 말도 있다. 이러한 안중근의 인기는 그가 순국한 직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었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 이듬해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안중근의 재판은 전적으로 일본인에 의해 진행되었다. 검사도, 판사도, 변호사도, 통역관도 모두 일본인이었다. 방청객마저도 일본인이었다. 1주일의 짧은 심리 끝에 2월 14일 안중근은 마침내 사형언도를 받았으며, 1달 남짓 지난 3월 26일 여순 형무소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안중근이 순국한 지 불과 3주 만에 「근세역사」라는 거짓 제목을 붙인 안중근 전기가 나와서 사람들 사이에 은밀히 읽혀졌다. 이어 대한제국 시기 여러 권의 역사 교과서를 쓴 바 있는 김택영도 「안중근전」을 펴냈다. 이런 움직임은 일제 통치하에서도 계속되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박은식이 1914년 민족정신을 드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안중근전」을 펴낸 것을 비롯하여, ‘대동(大東)위인 안중근’, ‘만고(萬古)의사 안중근’과 같은 이름이 붙은 안중근의 전기가 여러 권 일제하에서도 나왔다. 또한 양계초, 손문, 원세개 등 중국의 지도자들까지 안중근을 칭송하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안중근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많지 않은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은 남한으로 돌아온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있을 때 만든 영화 중 하나가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을 좋아하고 떠받들지만 그 목적은 서로 다르며, 떠올리는 안중근의 모습 또한 제각각이다. 안중근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의외로 많은데 안중근을 취조하였던 일본인 검사는 그 인품에 감복하여 안중근의 유물을 간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본의 극우 세력에서 안중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중근의 모습을 강렬하고 스마트하며, 굽힐 줄 모르는 이미지와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안중근은 ‘고독한 테러리스트’인 것이다.
이처럼 안중근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재단하여 이용하는 일은 국내에서도 흔히 있었다. 독재정치 시절의 통치자들에게도 안중근은 인기였다. 단호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주저하지 않고 이를 무력 실천에 옮긴 인물이 바로 안중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있었던 시절에 안중근이 떠받들어진 것에서는 아무래도 씁쓸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박정희의 5ㆍ16 쿠데타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1963년 ‘안중근 의사 숭모회’를 만들어 추모 사업을 하였다. 남산에 있는 안중근 동상을 세운 것은 친일 조각가인 김경승이었다. 이처럼 안중근이 극복하려던 사람들이 안중근을 떠받드는 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기도 한다.
‘안중근 의사 숭모회’에서는 작년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 안중근 전시회를 연 바 있다. 아마도 안중근을 적군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은 군인으로 생각한 듯하다. 그런 이미지가 행사를 주최한 사람들이 보는 안중근의 모습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안중근이 우리에게 주는 더욱 커다란 의미는 오히려 전쟁이나 무력이 아니라 평화에 있다. 사형언도를 받은 직후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한 채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썼다. 이 책에서 안중근은 러ㆍ일전쟁을 동양과 서양의 전쟁으로 보고, 동양평화를 지키고 국권을 튼튼히 하기 위해 한국은 일본을 도왔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중근의 사회 인식도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안중근이 원했던 것은 동아시아의 평화였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일본이 약속과는 달리 을사조약을 강요하여 한국의 국권을 빼앗고 동양평화를 깨뜨렸으며, 그 우두머리가 이토였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침략에 희생당하는 한국에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세계 사람들에게 평화를 호소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저격을 택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안중근은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기보다는 한국ㆍ청국ㆍ일본이 힘을 합해 평화를 지키고 화합하여 개혁을 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화해와 평화가 있을 때 안중근의 거사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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