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본 사회]제4강 광장의 희열에 깃든 문화적 욕망

 

월드컵과 함께 지구촌이 함께 하는 스포츠 제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올림픽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인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종목은 역시 축구였다. 2002년의 짜릿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지금, 58년 만에 올림픽 8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해 많은 이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아쉽게도 승전보는 거기에서 멈추었지만, 축구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전혀 식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도 광화문이나 방송사 공개홀 등 도시의 곳곳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응원의 함성을 질렀다. 2년 전의 현란한 붉은 티셔츠의 물결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 축구사에 진기한 흐름을 만들어내었고 2년 후 월드컵 때도 틀림없이 그 ‘전통’은 이어질 것이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한국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뜨거운 유럽이나 남미 그 어느 나라에서도 펼쳐지지 않은 풍경을 우리는 연출하고 있다.
축구를 둘러싼 응원 열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감정이 <공간>을 매개로 해서 더욱 강렬한 체험으로 증폭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광장이다. 서울의 시청 앞과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수십만의 인파, 그것은 87년의 민주화 운동 당시 모여있던 시민들의 모습과 함께 서울의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장면이 되었다. 우리는 너도나도 도시에 몰려들어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도시 문화를 제대로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지만 만남과 소통은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광장이 없는 것이다. 그대신 폐쇄적인 밀실들만 자꾸 늘어난다. 피씨방, 노래방, 전화방, 찜질방, 러브호텔….
2002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우리는 광장을 다시 발견했다. 자동차들로만 빼곡했던 시청 앞을 시민 축제의 장으로 되돌려 받았다. 감시와 통제로 규율화 된 도시를 자유로움과 환희의 공간으로 바꿨다. 되찾은 해방구에서 우리의 몸은 육중한 힘을 얻는다. 선수들의 몸 동작 하나하나에 격렬한 탄성을 지르며 광분하는 군중들, 붉은 티셔츠를 입고 도시를 누비는 사람들 사이에 이뤄지는 무언의 커뮤니케이션, 그 발랄한 몸의 문화에 우리는 매료되었다. 그 뿌듯함 속에서 우리는 밀실의 음산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감격에 겨워 전혀 모르는 남녀가 얼싸안기도 하지만, 그러한 행위에 성희롱 같은 것이 끼어들 틈은 많지 않았다.
우리의 몸은 뒤틀려 있었다. 한편으로 권위주의와 위계서열의 억압 속에서 경직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비교와 과시에 대한 강박증으로 어색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응원하면서 드러내는 다채로운 몸짓들은 그처럼 갇혀 있고 꼬여 있던 생명의 에너지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해방의 제전이었다. 이번에 새삼 발견한 축제에 대한 열망, 그것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것이다. 자기를 넘어서, 그리고 주어진 현실을 벗어나 어떤 커다란 것에 온전히 자기를 몰입시키고자 하는 초월 의지, 비일상으로의 탈출, 그 환타지에서 일상을 다시 바라보는 기쁨….
광장을 시민의 마당으로 복원시키면서 자기의 존재를 선언하는 젊은이들의 몸짓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이분법을 넘어서 있다. 훗날 역사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변환을 어떻게 설명할까. 월드컵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를 예감할 수 있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젊은이들 스스로도 자기 안에서 이러한 집단 에너지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광장>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불연속적’ 전개, 전혀 이질적인 단층으로 읽힐 수도 있다. 사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의 유산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른바 문화적인 사생아인지도 모른다. 과연 이들은 역사의 돌연변이인 것인가.
그러나 역사에 비약은 없다. 지금의 정황은 뜬금없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대중매체와 소비적 허영에 매몰되어 있는 듯 했지만, 그들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었다. 골방과 사이버공간에 갇혀 정보의 유희에 휩쓸려 다니는 듯 했지만, 거기에는 보다 원대한 소통에 대한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공동의 경험을 만들고 그 의미를 나누어 가는 기쁨, 개체와 전체 사이의 모순을 사뿐하게 뛰어넘는 연대를 통해 그들의 열정은 사회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형성의 역동적인 과정에 젊은이들이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의 미래에는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점점 짙게 드리운다. 일상은 답답하고 마음은 두렵다. 만사를 제치고 거리로 뛰어나온 것은 그런 우울한 굴레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반작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냄비 근성을 재현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일시적인 격정(激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탁 트인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손뼉을 마주치면서 교감하는 광장의 희열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초대형 이벤트가 아니라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한 달에 한두 번씩 동네 야외 적당한 공간에 스크린을 걸어놓고 영화를 상영한다든지, 지역의 문화꾼들이 공연을 벌이면 어떨까. 공연만이 아니라 다채로운 전시들을 통해 시민들이 자기를 표현하고 느낌을 나누면 어떨까. 특히 이번에 엄청난 기력을 과시한 십대들의 잠재력을 계속 살려갈 수 있는 문화 전략이 절실하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벌이는 판에 박힌 축제는 이제 시민들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작은 이벤트들로 채워져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배양되는 문화는 지방 자치의 발전에 비옥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뜨거움이 국가주의를 매개로 한 단발성 흥분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와 삶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새로운 판을 벌여야 한다. 눈치 보지 않고 자기를 마음껏 표출하면서도 놀라운 질서를 이뤄낸 저력, 드높은 일체감에 온전히 젖어 들면서도 천박한 전체주의나 획일주의로 빠지지 않은 성숙함이 일상에서도 체험될 수 있는 교류의 마당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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